배우 차인표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대 필독서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집필하게 된 배경을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교차하던 [슬픔, 분노,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들]이 오랜 기간 진정되지 않아서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초보 소설가로서 10년 간의 탈고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소설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사명감과 책임감이었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는 단 9명뿐인데 '다음 세대한테는 누가 이야기를 해주지' 싶었다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내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위안부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썼다고 했다.
차인표의 인터뷰를 보며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소용돌이치는 부정적 감정이 어떻게 창조의 원천이 되어 예술의 분야로 탈바꿈하는가였다.
스페인에서 오면서부터 종종 느끼던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한 감정]에 대해 글을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망설이고 의심했던 것은 내가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두려워서가 아니라 누군가 읽어봤자 기운 빠지는 글을 쓰는 것 같아서였다.
그저 내 마음을 토해내고 닫아버리면 끝인 일기가 아닌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글, 그것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래서 독자들이 내 글을 읽었을 때 그들의 삶과 연결 지어 공감하며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공존한다는데, 불안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이 상황에는 어떤 기회와 메시지가 있을지, 그것들을 글쓰기라는 활동을 통해 찾아본 것이다.
며칠 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레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저는 한국에서는 회계사로 일했었는데 스페인에 온 이후로 그 일을 계속 이어서 할지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어요. 회계사로 일할 때 '일과 삶의 불일치'에서 오는 괴리감이 싫었거든요, 그래서 일과 삶이 일치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고민 중이에요. 아, 그나저나 스페인에 온 이후로는 글을 써서 개인 공간에 올리고 있어요.
라고 세세히 설명한 What do you do에 대한 대답에 그는 진지하게 글을 쓰는 건 정말 깊은 작업이라며 호응했고 나는 "그렇죠? 작가가 된다면 삶이 끝날 때까지 일이 끝나지 않을 텐데... 제 직업이 갑자기 극에서 극으로 가버렸네요?"라는 농담으로 웃으며 대화의 단락을 마무리했다.
어려운 과정을 지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손에 쥐고서도, 대형회계법인에서 일하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회계사"라고 소개한 적이 없는 이유는 그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도통 누가 읽는지...(지금 읽고 있다면 복 받으실 거예요. 사랑합니다..)도 모르는 글들을 인터넷 세상에 올리면서 작가가 되는 중이라고 소개하다니?
그 변화에는 '세상’이 있다. 계속 [나]의 자격을 의심하고 그 자격을 채우기 위할 고민만 하던 [내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런 나를 밖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니 모순적으로 나의 존재를 느낀다. 글을 쓰는 목적을 공감과 메시지로 잡고 나니, 머릿속에 [나]뿐이었던 나는 세상의 한 일부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개념이 명확해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인용구이다. 우울함의 반대말은 즐거움이 아니라 외부로의 표출이라는 인용구처럼 부정적인 감정에 자꾸 내 안으로 빠져들 때면 그 반대에는 언제나 세상이 나를 품어주고 있음을 기억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겸손과 배려 속에서 살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유약한 마음을 치유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