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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Nov 04. 2024

마라톤 풀코스 도전기

42K가 아닌 31K에서 돌아가야 할 때의 마음

마침내 JTBC 마라톤 풀코스의 전날이 되어버렸다.

지난달에 하프마라톤을 뛰고 난 후

단 한 번을 연습을 못했기 때문에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정말 피하고 싶었다.

대회는 일요일인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날 때쯤

콧물이 조금 나는 거 같고 코가 막히길래

아 아파서 못 뛰겠다 생각도 하다가

낮이 되니 멀쩡해져서 실망 아닌 실망도 했다.


또 하필이면 1학년 두찌 아들이

친구와 우리 집 와서 놀다 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어갔고

간절하게 친구랑 우리 집에서 자면 안 되냐고

고양이 눈망울로 읍소해서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연습도 못한 거 될 대로 돼라

친구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하고

12시까지 애들 수발을 들다가

새벽 한 시에야 겨우 잠에 들었다.




대회 당일 아침,

짐 맡기는 곳도 헤매며 겨우 맡기고

출발점에 서서 애플워치 스트라바를 켜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방전되었던 워치를 켜니

얘도 버벅거린다.

힘 좀 내라 힘 좀! 하며 나와 워치에게 외쳐본다.


출발하세요!! 하는 소리에

옆 사람들의 즐거운 환호성에

나도 후우~~~~ 하면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출발했다.


딱 작년 2023 JTBC 10K 참여했던 게

내 인생 처음 마라톤이었다.

그때는 워치도 없고 뭣도 모르고

사람들이 빠르게 뛰어갈 때

어머 큰일이다 하면서 무작정 따라갔었는데,

2K 지났을 때부터 이거 포기해야 되나 생각을

심각하게 하면서 지나갔었다.


5K까지만 뛰자, 하고 5K를 지났었고,

그러다 6K 7K를 고비처럼 지나면서

겨우겨우 10K를 완주했었다.


지난 1년간 경험이라 봤자

10K 한번 더, 그리고 하프마라톤 한번 더.

그리고 가을 무렵에 윤우랑 손잡고 뛰었던

10번 남짓의 연습들 뿐이었는데


참 노력은 어딘가엔 남아있는 건지

1년 만에 나간 같은 대회의 풀코스는

훨씬 더 여유로웠다.





우선 내가 몇 킬로 왔을까,

그게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제치고 앞서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가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내가 뛰어야 할 내 페이스를 알고 있으니

나는 내 속력대로 가면 되었다.


작년에는 뭘 챙겨 와야 되는지 몰라서

아몬드초콜릿이랑 사탕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뛰었는데

이번에는 아미노바이탈 먹으면

사탕 따위 필요 없음을 알고

7K마다 먹을 젤만 5개 챙겼다.


사람 마음이 참 희한한 게

10K를 목표로 잡고 뛸 때는 5K가 고역이었는데

42K를 목표로 두니

10K는 금방 지나간다.


10K에서 20K 까지도 지나가는 사람 보랴

처음 가보는 동네 식당들 보랴

또 반가운 나의 회사가 있는 광화문 차도로 뛰랴,

브루노 마스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뛰었다.


그러나 나의 기존 최장 기록이 딱 하프인걸

몸이 어떻게 귀신같이 아는지

하프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속력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포즈는 뛰는 폼인데

속력은 걷는 속력이다.

조금씩 불안해지는 것이 그 많던 사람들이

매우 한적해졌다.


그 5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분명

나의 그룹에 2명이 있을 거라 했는데

풍선이 어디 있을까 계속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망한 건가 생각이 들었다.


25K쯤 왔을까,


갑자기 어디서 '지연아!'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배번호에 있는 이름을 보고

모르는 사람들이 '배지연 파이팅!!

배지연 힘내라!!' 해주는 건

너무 고맙게 많이 들어왔는데

지연아? 뭐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정말 놀랍게도 애 옆에 엄마가 뿅 하고 나타나 있었다.

아니 엄마가? 진짜 꿈같이 이상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엄마를 얼싸안았다.


도로통제는 진즉에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이 길 저 길 달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참 대단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길을 보고


그 망망대해 같은 긴 마라톤 코스에서 GPS도 없이

전화 한 통화한 적 없이

쏙 하니 나를 찾아내서 응원하러 온 것이다.


헝 엄마!! 하고 껴안는데

갑자기 첫째를 낳을 때 진통할 때가 너무 겹쳐졌다.

그 당시 당직근무가 연속으로 있던 남편은

내가 진통을 시작했다고 연락을 받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어서

초반 진통에는 보호자로 엄마가 들어와 주었고

나는 엄마를 허리를 안고 나 죽네~~~ 소리 지르며 진통을 견뎠었다.


울컥했는데 힘이 났다.

그리고 갑자기 대회 나온 게 아니고

엄마랑 마실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옆에서 걷는데 내가 뛰고 있던 속력이랑 거의 비슷했다.

반가움도 잠시, 엄마 만난 김에 밀렸던 수다를 막 떨었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경보처럼 파워 워킹으로 모드를 바꿨다.


그 무렵 잠실대교를 건너게 되었는데

잠실대교가 꽤나 길고, 중간에 마치 수력발전소처럼

물을 가두었다가 내보내는 멋진 풍경도 감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30K가 드디어 나왔다.




내가 느리게 뛰는 바람에 중간에 원래 있어야 할

급수대와 스펀지/ 바나나/ 초코파이 주는 곳이 다 없어졌었는데

30K에 가니까 잔뜩 있어서 신나게 와구와구 먹었다.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라고 응원도 듣고

고마웠던 엄마도 보내고


이어폰을 딱! 귀에 꼽고!

신나게 속력을 올리는데!


아....


저 멀리서 아저씨가 이리 오라고 한다.


"이거 계속 가면 지금 도로통제가 다 풀려서

차도로만 가야 되는 코스가 있는데 오도 가도 못해요. 버스 타세요"


진짜 청천벽력 같았다.

나는 도로통제가 있어도 5시간까지는

계속 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은 겨우 4 시간 좀 지났고, 31.8K나 왔으면

10K 정도는 한 시간~ 한 시간 반 내로

뛰어낼 심산이었다.


내가 비록 느렸지만

더 뛸 수 있었다.


"아저씨 저 그냥 뛰면 안돼요?"


처절하게 애원하듯 물어본다.


"아니 열심히 하신 거는 정말 알겠는데

계속 절로 가면 코스가 없어요~"


"그래도 그냥 인도로 뛰면 안돼요? ㅠㅠ"


"아니 인도가 없는 차도로만 가야 될 코스인데

글로 가면 갈 길이 없어서 어차피 지하철 타고 돌아오셔야 돼~~!!"


하아.....





딱 속도 올려서 뛰기 시작했는데.

진짜 더 잘해볼 수 있는데.

진심으로 너무 속상했다.

그렇지만 길이 더 이상 없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쉬고 계시면 바로 좌회전해서 내려드릴게요~"


아저씨가 진짜 야속하다.


나 진짜 이제 첫 초코파이 먹고

거의 10킬로만 더 뛰면 완주인데.

시간도 다섯 시간 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진짜 속상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니

사람들이 이미 한가득 타있다.

나보다 앞선 그룹사람들도 있고

다들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그리고 버스는 속상한 공기로 가득 차고 고요하다.


다 나와 같은 맘이겠지.


얼굴에서 말라붙은 소금들은 후두두 떨어지고,

다리는 아프고,

완주는 못했다.


안 뛰면 안 뛰었지,

32K나 뛰었는데 기록도 못 받을 생각 하니

마음이 무겁다.


조용한 버스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정차해 있다가

조용히 좌회전을 해서

금세 우리를 내려주었다.





맡겨둔 짐을 찾으려면

마라톤 코스를 끝내는 피니시 라인으로 들어가야

줄줄이 간식도 받고 메달도 받고 짐도 찾는 동선인데


갑자기 관광버스에서 내려주니 응원온 사람들 틈에

내가 있다. 짐을 찾아야 하니 꾸역꾸역 바리케이드 사이로 들어가야 될 틈을

찾아서 들어갔다.


완주도 못했는데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면서

진행자들이 손에 간식도 들려주고

배 번호에 체크를 하고는 목에 메달도 걸어준다.


피니셔들이 가득한 그 공간은 진정 뜨거운 열기의 축제 분위기다.

각자의 기록이 바로 나오는 공간 앞에서 모두가 인증샷을 찍고 있다.

맘껏 끝까지 뛴 러너들이 바닥에 널브러져서 누워있다.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뛰어냈는데

나만 완주 못했어.

진짜 더욱 속상했다.




"여보 나 31K 쫌 지나서 도로 통제 끊겨서

버스 타고 도착점에 왔어"

시무룩하게 전화하자 남편이 엄청 신나 해 한다.


아우 진짜 잘했어!!

너무너무 잘했어!!


남편은 신이 났다.

남편은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나가기로 한 순간부터

열심히 해봐! 파이팅! 이런 말 대신,

'제발 무리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뛰다가

조금이라도 힘들면 바로 포기하라고'

신신당부하던 그런 낭만 없는 안전 제일주의인 사람이었다.


 성취에는 관심 없고

내 안전에만 관심이 많은 남편의 이런 스텐스가

뛰기 전에는 솔직히 힘 빠지고 별로였는데


내가 완주를 안한걸

이토록 기뻐하는 걸 보니

그렇게 좋아? 오히려 좋은데? 싶어졌다.


피니시라인에 남편과 같이 마중 나온

아들 두 놈도 역시나 내가 버스를 타고 내렸는지 피니시라인으로 들어왔는지

내 성취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나 다리 아파 죽겠어 너무 오래 서있었어~

 엄마! 나 아빠 때문에 머리 미용실에서 너무 짧게 잘라서 너무 맘에 안 들어!"

본인들의 민원 해결 하기 바쁘다.


야 내가 31K 뛰었는데 엄마 다리가 더 아프거든?

내가 웃으며 핀잔을 줘도 오전 한나절 엄마 안 봤다고 마냥 반가워서

내 품에 얼굴을 비벼대는 아들들을 보자

속상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연습도 제대로 안 하고

풀을 애초에 뛰어보려고 한 것이

욕심이었다.


연습 없이 마라톤 완주하는 법

시리즈는,

10K 나 하프마라톤 수준에서나

운 좋게 가능한 것이었고

마라톤 풀 코스는 연습 없이는

안될 일이었다.


안될 거 안되었다고 속상해말고

처음으로 30K 넘게 뛰어본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했다.


훌륭한 기록으로 완주를 해낸 우리 회사 동료들도

내 기록을 보고 열렬하게 잘했다고 대단하다고

응원해 주니

참 사람 마음이 희한하게 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하루에

2,191Kcal를 태웠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좋았다.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완주를 하지 못해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동료들 틈에서


날씨 좋은 날

풀코스 대회에서 뛰어볼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년에는 기필코 도로통제 풀리기 전에

풀코스를 뛰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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