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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Jan 03. 2023

할머니의 들창코

할머니의 얼굴에 대한 고찰


할머니의 들창코. 할머니의 고집이 저기서 나오는 것 같다. 왜냐면 나도 저 들창코를 가졌기 때문. 다른 사람들이 찍어준 사진 속, 무방비하게 찍힌 내 얼굴에서 완고한 고집을 들켜버릴 때가 있다. 순해 보이는 얼굴 가운데 찍힌 동그란 콧구멍 두 개. 은근히 성깔이 더러운 자라의 콧구멍 같기도 하다. 높지도 크지도 않은 동그란 코, 웃으면 웃는 대로 푹 퍼지는 코.


할머니의 얼굴은 생생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저 콧구멍으로 많이 울었다. 할머니가 울음은 언제나 콧구멍에서부터 시작됐다. 으레 어디서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콧구멍에서 시작된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못했고, 할머니의 언니를 보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유머는 입꼬리에서 나온다. 할머니는 극과 극의 표정을 지을 줄 안다. 뭔가에 집중한 사람처럼 모인 미간의 주름 때문인지 평상시의 할머니는 늘상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덕에 할머니의 웃는 얼굴은 유난히 '해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통유리 건물의 모든 커튼을 일제히 열어젖히듯, 어둠을 쫓는 웃음이다. 할머니의 눈과 입꼬리가 기다랗게 접힐 땐 늙어 아픈 설움일랑 농담 한 마디로 가뿐히 튕겨버릴 수 있을 듯하다.

 

할머니는 살아온 삶을 기록하듯 지금의 얼굴이 되었을까. 누구의 마음도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깜장 눈동자를, 고집 있어 보이다가도 곧 울어버릴 것 같은 들창코와 나란한 콧구멍 두 개를, 깊게 파인 뒤집은 괄호 모양의 미간 주름을, 주변인들을 안심시키는 기다란 입꼬리를, 그저 잘 지켜온 것인지 아니면 언제나 예상을 빗겨나갔던 세월이 눈코입의 인상과 주름의 자리를 정해준 것인지.


모든 걸 고사하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웃기기만 하면 해사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베네핏이 아닌가 싶다. 별로 웃을 일이 없다는 건 나이 들어 생긴 핸디캡이긴 해도.


나더러 넌 왜 그렇게 고집이 세냐는 할머니의 들창코를 들여다본다. 어딘가 고집이 묻어 있는 내 들창코. 후천적인 사건이 얼굴 안에 자리하기엔 아직 너무 젊은 나에게서 꼭 할머니의 모습이 읽히는 걸 보면, 최소한 할머니의 들창코는 너무했던 세월 가운데 변치 않고 잘 지켜낸 할머니다움인지도.


아, 역시 나도 고집쟁이 할머니가  운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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