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제 Jan 17. 2023

안 소망하기를 소망

기꺼이 할머니의 '귀'가 되는 것



요즘 할머니와 있을 때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기꺼이 '귀'가 되는 것이다.


귀가 되는 것. 기꺼이.


할머니는 토요일인 오늘, 일요일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며  이틀 전이 일요일인  같았는데 벌써 내일  일요일이라고 말했다. 빠르긴 빨라도  정돈 아닌데. 할머니의 시간은  시간의   정도 빨리 감기 중인  같다. 누군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욱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으니.  시간의  , 정도면 얼추 맞을 테다.


할머니의 하루는 아주 정확하다. 아침 일곱 시 무렵, 어둠 속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내게 '뜨신 물이라도 먹고 가', 또는 '바나나 먹고 가' 잠긴 목소리로 적막을 깬다. 집을 나설 즈음엔 눈부신 시츄처럼 부스스한 모습으로 현관에 서서 '다 챙겼어? 핸드폰. 카드는?' 확인하는 할머니.


저녁이 훌쩍 지나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언제나 하늘색 솜이불을 덮고 모로 누워 <나는 자연인이다> 또는 <TV 특종 놀라운 세상>을 보고 있다. 자연인을 보는 할머니는 자연인의 집에 멧돼지가 내려올 것을 걱정하고("멧돼지 내려올까 무서워서 어떻게 살까"), TV 특종 놀라운 세상을 보는 할머니는 사람보다 나은 개를 보며 대견해 기가 막혀한다("야, 저 개 봐라 사람보다 낫다").


적어보니 정말. 할머니와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하루 10분이 채 되지 않겠단 생각도 든다. 그 10분이 채 되지 않는 대화 모음 속, 나는 기꺼이 귀가 되기를 힘들어한다.


같은 프로그램의 거의 같은 레퍼토리를 보며 매번 진심으로 걱정하고, 진심으로 기가 막혀하는 할머니는 놓치지 않고 나를 동참시키나, 철저한 제삼자인 나는 할머니의 감상에 공감이 가질 않을뿐더러 그저 의무감에 짤막한 대답만을 내놓을 뿐이다. 누군가 할머니의 감상에 공감을 하나 보태면 할머니가 좀 더 신명이 날 텐데, 그 잠시 잠깐 곁에 앉아 똑같이 반복되는 감상에 대해 똑같은 공감을 내어주기가 그렇게 힘이 든다.


할머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세 배 빨리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도. 삶에 재미라곤, 그리 평온하지 않은 마음을 달래주는 편안한 TV 프로그램뿐임을 아는데도. 그래도 기꺼이 '귀'가 되어주기란. 속이 뒤틀리도록 어렵다. 매일 듣는 잔소리를 자청해 듣는 기분이랄까?


때로는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인지 알아도,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아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마음과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 있다. 회사에 있는 내내 그렇게 마음이 애달픈데. 가끔은 할머니와 함께할 시간을 맞바꾼 듯 그렇게 애통한데. 막상 집에 오면 또 그것대로 견디기 어려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간절히 소망한다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가 아주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쓰는 나의 소망은 할머니의 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전 10화 할머니의 들창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