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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여행 Oct 03. 2022

하늘과 땅의 경계인가,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인가.

볼리비아 우유니

승객들이 탑승하자 승무원이 비행기 문을 닫는다. 승무원은 두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온몸의 힘을 실어 문을 오른쪽으로 밀어 닫은 후 손잡이를 돌려 문을 잠근다. 여자 혼자 힘으로 버거워 보인다. 그나저나 비행기 문을 수동으로 닫다니! 승무원은 벽에 걸려있는 헤드폰에 부착된 마이크를 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에스파뇰로 빠르게 말을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몸동작을 섞은 안전 교육을 마친 뒤, 승객과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비행기가 안전궤도에 들어서자 승무원은 음료 카트 기를 밀며 다가온다.

저가 항공에 많지 않은 승객이라 이해가 되긴 하지만, 수동으로 닫는 문에, 승무원도 한 명뿐이라니.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다행이다. 세 식구가 함께 있어……, 다행이다. 누구라도 혼자 남겨지면 그것이 더 힘들 것 같다.

우유니로 우리를 데려다 줄 비행기.


두 달여 전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에 있을 때 볼리비아에 유혈 사태가 났었다. 결국, 볼리비아 대통령은 멕시코로 망명을 했고, 볼리비아 여행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연일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우유니를 못 보면 어쩌지? 우유니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남미를 떠나지 않을 거야!’

이제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우유니 공항엔 바람만 가득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대기실로 걸어간다. 제복(군복인가?)을 입은 이들이 비행기에서 짐을 내리더니 직접 가져다준다. 자동 시스템에 익숙해진 탓인지, 무언가를 사람이 직접 한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들이 특별해 보인다.

우유니는 여행자 입장에서 볼거리가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이다. 우유니에 사는 현지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유니의 존재 이유는 소금호수인 듯하다. 소금호수를 보기 위해 온 여행자들을 위한 마을이다.

우유니의 미끄럼틀 좀 보소!

우유니 소금호수는 건조한 기후에 호수의 물이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서 소금 사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금호수는 건기보다 우기가 더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왔으나, 현지에 와서 듣는 정보는 약간 다르다. 우기가 살짝 지나고 난 뒤 오면, 물이 있는 소금호수도 볼 수 있고,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한밤의 별빛 투어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소금호수 투어의 시작은 기차 무덤부터이다. 볼리비아와 칠레를 오가던 기찻길이 끊기면서 갈 곳을 잃어버린 기차들이 멈추어 선 곳이다.

갈 곳이 없어진 길은 허허벌판이 되어버렸고, 멈추어버린 기차들은 사람들의 ‘돌보지 않음’과 비와 바람, 태양의 지칠 줄 모르는 치근댐으로 녹슬고 병이 들었나 보다. 아름다울 것 하나 없는 풍경 일터인데, 사람들이 기차 무덤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 자연과 부대끼며 사라져야 할 모든 것은 다 사라져 버리고 뼈대만 남은 기차는 이제, 사람의 물건이 아니다.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린, 자연의 모습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누워 있는 녹슨 기차는 왠지 비장한 아름다움이 있다.



물이 증발해 버린 호수, 소금 사막이다. 눈 닿는 모든 곳이 하얗다. 선글라스를 통해 본 하얀색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파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여버린다. 나의 시선이 하얀 소금에 가 닿기도 전에 빛의 무차별 공격이 쏟아진다. 선글라스를 벗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시선을 멀리 두고 바라본 소금 사막은 눈밭 같다. 시선을 조금 가까이 당겨 보면 육각형의 벌집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쪼그리고 앉아 가까이 들여다보면 굵은소금 결정체가 빛나고 있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광활한 소금 사막 곳곳에 여행자들의 사진 찍기 놀이가 한창이다. 대부분 원근감을 이용한 사진이다. 다양한 소품을 이용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딸아이는 모처럼 언니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즐겁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또 다른 재미다.



소금호수에 도착했다는 말에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모두 ‘얼음’이 되어버린다. 대체 이 지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온 거야? 분명히 잠들지 않고, 눈을 뜨고 있었는데.

발을 딛기가 조심스럽다. 세상에서 제일 큰 거울이라는 말 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큰 거울이다. 내 눈이 닿는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반사하여 보여주는 세상에서 제일 큰 거울. 발을 디디면 거울이 깨질 것 같다.

어떤 감탄사를 써야 하나! 예쁘다고 하려니 그 말이 한없이 가볍다.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그 표현이 너무 평범하다. 뭔가 특별하고 우유니에게만 보낼 수 있는 찬사의 말이 필요하다. 어떤 말도 쏟아내지 못한 채, 찡해 오는 코끝을 추스르느라 훌쩍인다.

아이가 하늘과 땅이 맞붙은 곳으로 걸어간다. 아이가 걸어가는 저곳은 하늘과 땅의 경계인가,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인가.

숨 막힐 듯 어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진짜 숨이 막히는 줄..가쁜 숨을 쉬어야 하는 고산의 고통이다




우유니는 우리 모두의 영혼을 빼앗아 가버렸다. 일행 중 한 명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한국에 있는 나의 언니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살짝 들어서 이곳에 세워놓고 싶다. 나 혼자만 이 풍경 속에 있자니 너무 벅차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매번 드는 생각은 ‘이곳에 내가 다시 올 수 있을까?’였다. 여행의 초점이 오롯이 나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극한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나의 감정이 낯설어 어색하다.


소금호수에서 돌아온 우리는 소금물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다. 몸은 늘어지는데 가슴은 감동으로 빵빵해지는 느낌이다. 내 가슴속 감동의 농도가 우유니 풍경보다 진했나 보다.

다시 우유니다. 해 질 녘 우유니는 아쉽다. 노을에 한껏 젖어 들 듯하더니, 어느새 어둠이 내린다. 실컷 취하지 못해 더 간절한 풍경이다.



또다시 우유니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새벽 2시 30분이다. 소금호수에 쏟아지는 별을 보기 위해서다. 곤히 자던 아이를 흔들자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벌떡 일어난다. 아이도 별을 가슴에 품고 잤나 보다. 한낮의 더위가 무색하게 한 밤의 우유니는 겨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옷을 겹겹이 입고, 털모자에 장갑을 끼고 숙소를 나선다. 아직 비가 오지는 않지만, 하늘이 흐리다.

우유니에서 쏟아지는 별 아래 서고 싶었으나, 별빛처럼 흩날리는 빗속에 서 있다. 우리의 가이드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설치한 뒤 조리개를 열어놓은 채, 한밤의 우유니를 스케치북 삼아 핸드폰으로 멋진 그림을 그린다.

딸아이는 우유니에서 별 대신 별만큼 반짝이는 언니들과 비를 맞으며 놀고 있다. 내 눈에는 저 아이들이 스스로 빛을 내는 별처럼 눈부시다.

어둠 속에 묻힌 우유니는 때 묻은 거울처럼 거뭇거뭇한 그림자를 보여준다. 잔잔한 바람에 그림자가 흔들린다. 빛을 잃은 거울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닌가 보다.

우리는 파타고니아를 여행한 뒤, 우유니를 한 번 더 들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쏟아지는 별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아서다.


13년 전 인도에 갔을 때 알았다. 내가 여태껏 본 인도에 관련된 책들과 수많은 영상물 속에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숨이 휘감길 정도의 더위와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냄새.

여태껏 보아온 우유니의 풍경 속에도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을 우유니에 와서 알았다. 우유니는 해발 3700m에 있다. 코로 숨을 쉬다 숨이 막혀 입으로 숨을 몰아쉬며 잠이 깨고, 양치질하다 숨이 막혀 칫솔을 빼고 숨을 내뱉는다. 몇 발자국 걷지를 못하고 숨이 가빠,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건조한 날씨에 입안과 코안이 바짝 마르고, 머리카락과 피부가 푸석하다. 사진 속 우유니에는 고산의 고통은 고스란히 빠진 채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만 보인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고산의 고통을 견뎌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에 더 아름다운 우유니다.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모두 우유니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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