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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여행 Sep 28. 2022

이구아수 폭포에는 국경이 없다

브라질 포즈 두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구아수

비옷 대신 수영복을 입기로 했다. 폭포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물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젖어 보자는 마음이다. 아이는 보트를 타고 이구아수 폭포로 간다는 말에 기분이 좋다. 더운 날씨에 힘든 점프 샷 요구에도 흔쾌히 응한다.

보트를 타는 곳까지 전기차를 타고 밀림 투어를 한다. 폭포를 보기 위해 가는 길에 열대 밀림 체험은 덤이다. 여러 종류의 새소리가 들리고 동물 소리도 들린다. 처음 보는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가지를 뻗어간 나무들은 오픈카를 타고 가는 우리를 위협한다. 이곳의 주인들이다. 폭포는 잠시 잊고 정글의 법칙 주인공이 된 양 낯설지만 흥미로운 밀림을 잠시 즐겨본다.

보트가 폭포 가까이에 가기도 전에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에 온몸이 젖는다. 수영복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선장은 보트를 놀이기구 운전하듯 한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보트가 폭포 밑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무게의 물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깜짝 놀라 아이를 품에 안는다. 잘못 맞으면 목 디스크 걸릴 것 같다.


브라질에서 만난 이구아수 폭포, 보트를 터고 이구아수 폭포를 만나는 중이다.

30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진짜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폭포 위로 프테라노돈이 날아올 것 같다. 브라키오사우루스 가족이 폭포 옆 밀림에서 머리를 내밀 것 같다. 물보라로 내 몸이 젖지만 않았다면 영화 속에 나오는 쥐라기 시대의 풍경을 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포즈두이구아수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웅장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폭포는 외줄기 폭포만 보아온 우리를 압도한다. 거세게 쏟아지는 물기둥이 만들어낸 물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신비롭기까지 하다. 폭포로 이어지는 다리 위로 걸어가니 물안개가 바람을 타고 와 나를 감싼다. 거친 소리를 내며 무섭게 부서지는 물과 달리 물안개는 분무기에서 분사되는 물처럼 부드럽게 나의 볼을 간지럽힌다. 온몸이 젖었는데 여전히 폭포가 아쉽고 목마르다. 눈으로 바라볼 뿐 뛰어들 수 없기에 헛헛하다.

폭포를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걷는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에 감탄하느라 걸음이 더디다. 하얀 천을 길게 널어놓은 것 같은 폭포는 아르헨티나라고 한다. 나는 지금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의 폭포를 보고 있다. 150여 년 전에는 이구아수가 파라과이의 폭포였다. 폭포는 주인이라 칭하는 이들이 바뀌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폭포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이다. 사람들은 겁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 위에 선을 긋는다. 신조차도 초월할 수 없는 자연을 가지려 한다. 폭포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들이 국경이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포즈두이구아수

포즈두이구아수에서 나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새 공원으로 간다. 포즈두이구아수가 브라질의 마지막 도시라 남은 헤알(브라질 화폐 단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숙소까지 갈 버스비를 제외하니, 두 사람 입장료뿐이다. 물을 살 돈도 없으니, 이젠 목이 말라도 참아야 한다.

새 공원에 함께 가지 못하는 남편의 얼굴에서 아쉬움은 1도 찾을 수 없다. 브라질 국조인 투칸이 보고 싶었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남편에게 양보한다. 여행을 떠나온 뒤 우리 셋은 24시간을 붙어 있다. 그 어떤 좋은 관계라도 24시간을 붙어 있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남편도 나도, 10살 아이조차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다.

새 공원에 들어서자 분홍빛 플라밍고 떼가 눈길을 끈다. 새뿐 아니라 거북이, 악어, 나비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다.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투칸은 정말 인형 같다. 까만 깃털에 주황색 긴 부리가 몸의 반 가까이 차지한다. 저런 외모의 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투칸아 좀 가까이 와 줘.” 브라질의 새들은 선명하고 화려한 깃털을 갖고 있다. 새마저도 이국의 냄새를 풍긴다. 새 공원 출구에 마련된 기념품 가게에서 투칸 인형을 살 생각이었는데, 우린 지금 물 사 먹을 돈도 없다. 혼자 기다리는 아빠에게 빨리 가자며 아이의 손을 끌고 나온다. 사실 인형은 아이보다 내가 더 사고 싶다.


폭포에는 국경이 없지만, 이구아수 폭포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푸에르토이구아수를 보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가야 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이구아수 강이 국경이다. 강만 건너면 된다. 택시로 30분 정도면 가능하다. 강을 연결하는 다리는 두 나라가 반씩 차지하고 있다. 다리를 지나갈 때, ‘노란색-초록색’이 번갈아 칠해진 난간이 ‘하얀색-하늘색’으로 바뀌면 아르헨티나에 들어선 것이다.

아르헨티나다. “올라!(안녕)” 인사부터 반가운 스페인어다. 숙소 체크인을 한 후, 제일 먼저 할 일은 환전이다.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전을 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국경 전망대로 갈 계획이다.

국경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가로지르는 이구아수 강과 파라과이에서 흘러나오는 파라나강이 만나 흘러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서서 보면, 오른쪽에 브라질이 왼쪽에 파라과이가 보인다. 국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비해 너무 가까이에 있다. 150년 전에는 모두 파라과이 사람이었을 텐데, 지금은 강의 어느 쪽에 사느냐에 따라 브라질리안, 아르헨티노, 파라과이안이 되는 것이다. 국경과 민족의 경계선은 어디쯤 있을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

아이는 아침부터 푸에르토이구아수의 보트 투어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더운 날씨에 더운 줄도 모르고 보트 투어 매표소를 향해 뛰어간다. 매표소 가까이 가자 직원이 아이에게 나이를 묻는다. 12세부터 보트 투어가 가능하다며, 아이에게 투어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입을 삐죽거리던 아이는 끝내 울기 시작한다. 포즈두이구아수 보다 푸에르토이구아수 보트 투어가 더 신나고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더 서럽게 운다. “딸아, 나이가 많아서 못 타는 것보다 나이가 어려서 못 타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냐. 너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는 말이야.”

푸에르토이구아수 국립공원 내 이동 수단은 기차다. 보트 투어로 상한 마음을 기차가 조금 풀어 줄까? 기차를 타고 이구아수 폭포의 랜드마크, 악마의 목구멍까지 가는 동안 우리 모두의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를......

기차에서 내려 그늘도 없는 길을 걷는다. 뜨거운 태양과 생각보다 긴 도보 길이 보트 투어로 상한 마음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더위에 지친 아이는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아이를 달래던 남편의 표정도 점점 굳어진다. 오늘따라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진다. 소리가 점점 커진다. 천둥소리는 어느새 포효하듯 내지르는 함성 소리로 바뀌어 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군인이 창으로 방패를 긁어대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함성 소리에 빨려 들 것 같다. 볼륨을 최대로 올린 소리는 귀가 아닌 온몸을 뚫고 들어온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은 흐르는데, 털끝이 서며 소름이 돋는다.

몸을 뚫고 들어온 소리는 나를 그 실체 앞으로 끌고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내리 꽂히는 엄청난 양의 물기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오 마이 갓!’

잔잔하게 흐르던 물은 절벽에 다다르자 서로 먼저 뛰어내리겠다며 몸싸움을 한다.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물안개를 만들고, 물안개는 무지개를 만든다.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내던지는 물에 혼이 빼앗긴 우리는 비가 되어 내리는 물안개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선글라스를 벗고 물을 바라본다.

경외감이란 이런 것일까. 벅차오르는 감정 끝에 눈물이 흐른다. 하루 종일 폭포만 보고 있고 싶다. 악마의 목구멍이 나를 삼키려 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저 목구멍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더 이상 화난 얼굴이 아니다. 악마의 목구멍이 딸아이의 영혼까지 빼앗은 게 분명하다.

오늘 하루 치의 감동과 감정을 악마의 목구멍에 다 쏟아부었나 보다. 기진맥진이다.

어서 가서 캐비닛 같은 내 침대에 눕고 싶다. 조용히 오늘의 이 감동을 마음속 캐비닛에 보관하고 싶다.

악마의 목구멍,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김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갈 듯 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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