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구할게
예지야. 오늘 하루도 시작했으며 지나가고 있구나. 너는 어제만 해도 플래너를 세우며 오늘 하루를 희망차게 보내려 했지. 그런데 막상 아침에 잠깐 눈을 떴을 때, 그동안의 습관 때문인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너는 계속해서 잠을 선택했어. 오후에 일어났을 때, 병원에 가야 함을 알면서도 너는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단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행복은 오로지 너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지. 터진 웅덩이에 빠져서 끝없는 위로만 계속 받을 것인지, 웅덩이로부터 나와 세상으로 나올 것인지는 전적으로 너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지.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의 질문에 "Yes. I am"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26년간 베어버린 어둠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것이지. 이 어둠의 깊이와 익숙함으로부터 결별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야. 하루하루 다짐을 하다가도 금방 무너져버렸어. 사실은 포기하는 것이 너에게 익숙하고 안락한 것일지도 몰라.
그래. 나는 이제 너를 다그치기보다 너를 이해해보려고 해. 잘하고 싶었지? 누구보다도.. 꿈을 찾아 떠나고 싶었고 열망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지. 그러나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바꾸기란 쉽지 않았던 거야. 상처투성이의 얼룩진 나 자신, 욕망과 안락함. 나를 받아들이기보다 부정을 해왔던 지난날들의 선택. 쉬운 길이 뻔히 보이는데 왜 가지를 못 하는 거냐고, 왜 고장 난 자동차처럼 제자리에만 있느냐고 참 많은 상처를 스스로에게 주었던 나날들.
사실 넌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움츠러있는 14살 소녀에 불과했던 거란걸 아니? 약하디 약한 너에게 앞으로 가라고 했던 것은 너무나 가혹했던 거야. 많은 이들에게 이해를 요구하면서 정작 너에게는 조금의 이해도 해주지 못했던 거야. 네가 왜 그러는지 알려하기보다는 짜여 있는 인생이라는 틀에 너를 맞추려고만 했어. 예지 너도 한 인격체이고 감정과 의지와 생각이 있는데 말이야.
그거 알아? 너는 사랑의 그릇이 정말이지 크단다. 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애정이 넘치지. 그런데 있잖아. 사실은 너도 사랑의 양분을 먹어야 자랄 수 있었어. 네가 충분히 양분을 먹고 자라면 그때 너는 더 이상 네가 아프면서까지 사랑하지 않아도 돼. 자연스럽게 될 거야.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 알고 있잖아?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면 모든 것이 따라온다는 것을. 네가 사라져 가면서 까지 사랑하고 내어줬던 것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야. 너는 그만한 사랑을 줄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 사랑의 가치를 몰랐던 거지 네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던 너. 하지만 네가 한 행동들에 대해 그 무엇도 버릴 게 없어. 너는 네가 받고 싶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해준 것이었고 진심이 아닌 게 하나도 없었던 것뿐이었는걸.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너의 마음이 어떻게 잘 못 된 거니. 작은 것들마저 너무 사랑한 게 죄일 수는 없는 거야. 오히려 너는 누구보다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서 내가 미안해. 있잖아, 나에게는 너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그러니 이제 우리는 모든 표상과 겉표지들을 버리고 같이 네 속의 알맹이. 누군가 사랑해 줘서 건져내주길 바라는 14살 소녀에 대해 알아가보지 않을래?
이제는 다른 이가 아닌 지금의 내가 말할게. 기다려. 내가 너를 건져낼게. 두려워서 세상을 등지고 있는 너에게 내가 다가갈게. 네가 나를 믿지 않고 밀어내려 해도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가갈게. 네가 할퀴며 상처 내며 이런 너 자신을 떠나라고 해도 나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게. 오히려 너에게 더더욱 다가갈게. 네가 믿을 때까지 말이야. 너의 소용돌이가 멈출 때까지. 네가 원하는 사랑을 내가 줄게.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네가 사랑을 믿지 못하면서 사랑을 바라지만 사랑을 받을 줄 모르더라도 내가 알려줄게.
사실 나, 잘 모르지만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사랑할게. 내가 건져낼게. 내가 너를 책임질게.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게. 약속해. 온몸이 부서지더라도 세상이 무너져도 너만큼은 내가 구할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나와 대화를 나눠보지 않을래? 마치 소개팅에 나온 것처럼 서로 처음부터 알아가는 거야. 그렇게 서로 알아가며 잘못 맞춰진 퍼즐들을 제자리에 끼워놓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너를 찾아 나도 그 어둠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어. 오직 나만이 너에게 갈 수 있어. 그러니 내 손을 잡기를 바라. 네가 받고 싶었던 사랑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주었던 사랑들, 모두 이제 알아. 받고 싶었기 때문에 주었던 사랑. 그 사랑을 이제는 내가 줄게. 너를 알아갈게.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2020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