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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스트 Oct 04. 2024

파도에 삼킴을 당하지 않도록

바다로 떠난 너에게 쓰는 편지




  예지야, 어제 많이 힘들었지. 병원에 가기 전까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가서도 나아지지 않아 무너진 마음을 토로했지.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입원을 권유하셨고 너는 원치 않았어. 월요일까지 상황을 버티어 보겠다 했어. 선생님은 너무 걱정이 되셨는지 그때까지 안 좋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새끼손가락 약속까지 하셨어. 돌아가서도 마음이 진정 안되어 그저 시체처럼 있을 수밖에 없었어. 엄마가 옆에서 조심스레 말을 걸어도 말할 힘도 움직일 힘도 나지 않았던 너. 힘들 수 있어. 그런 날도 있는 거야. 그런데 있잖아. 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 생각들이 진짜가 아닐 수 있대. 우울증에 속는 거래. 우울 성향이라는 것이 있어서 너는 네가 그런 사람이라고 난 원래 우울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 자체가 오류일 수 있대. 네가 날아다녔던 날들을 기억해. 자신감 넘치며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열정적이던 너를.


  언젠가 말이야. 너는 갑자기 바다로 떠난 적이 있지. 멀리서 찰랑거리는 바다와 끝없이 펼쳐져있는 어두운 하늘을 보며 생각했어. 


  아 세상은 정말 넓다. 

  우주도 있지. 

  나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내 괴로움들은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때만큼은 너는 조금 평온해졌을까. 갑작스러운 여행 속 밤바다를 보며 너는 너무 아파서 입에서 시가 나왔지. 너는 스스로 너를 위로했어.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며 시를 토해냈어. 하얀 장미와 같은 너의 아픈 노래. 슬프지만 순결하고 창백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고귀하게 얼굴을 꼿꼿이 들고야 마는 너의 꽃봉오리. 하늘을 향해 온 마음을 열어 너의 모습을 잃지 않고 당당히 나아가길 바라.



  2020년 4월 25일.



속초 밤바다에서


파도 1

날쌘 바람
흠뻑 젖는 바닷물
나를 향해 파도가 밀려온다
하지만 닿을 수 없다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보고자 하면 하염없이 다가오지만
닿지 못하는 너와 나
그 거리로도 우린 충분했다

문득 생각이 날 때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한 번쯤 울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 안으로 들어가
너에게 삼켜버림을 당하는 짓을 하지는 않겠지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거리가 딱 정당하니까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본연의 가치로 빛날 거니까


파도 2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오니까
깊이를 알 수 있는 것 같아
역동적인 너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냄새도 맡을 수 있어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서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서
가까이 가야만 알 수 있는 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야
멀리서 보아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 운걸
출렁거림도
몸부림도
다 멋지고 훌륭한걸
그렇게 그렇게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
있는 그대로 나아가렴
난 너를 그렇게 바라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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