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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스트 Sep 28. 2024

엄마, 마지막으로 약속해

소원





  2023년 3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시체와 다름없이 굳어가는 몸. 하루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배설물만 만들어내는 몸뚱이를 원망하고 원망하고.. 원망했다. 그마저 일어나기 싫었기에 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내 몸은 살아 숨 쉬는 것을 거부하듯 신체화 증상이 나날이 심해졌고 그렇게 인간의 욕구를 잃어갔다. 수면도 식욕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 그저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과 같은 시한부 인생. 언제가 좋을까. 내가 떠나는 날은 어느 날이 가장 마땅할지 흐르는 시간만 세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은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큰 슬픔을 줄 거야. 엄마는? 엄마는 모든 게 무너질 거야. 엄마는 너무 힘들었잖아. 세 남매를 키우려고 엄마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나 마저 인사도 없이 가버리면 엄마는 어떡해.  


  엄마, 나는 그래. 나는 예전부터 이랬어.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고 항상 이런 숨 막히는 기분으로 살았어.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아. 알잖아. 나 병원도 너무 잘 다녔고 오래 다녔어. 약도 잘 먹었고 진료도 잘 받았어. 그런데도 난 이렇네. 아직도 내 세상은 너무 어두워. 너무 아파. 아프고 힘들어. 엄마, 나는 이제 그만 아프고 싶어.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팠던 것 같아. 내가 세상을 인지했을 때부터 계속 아팠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런 나라가 있대. 정말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나아질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지독한 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 나아질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어떠한 좋은 선택을 할 수 없고 계속 최악의 굴레에 처해있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그런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 있대. 엄마,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 나는 정말 그만 아프고 싶어. 엄만 알잖아 내가 너무 노력했다는 걸. 나는.. 이제 그만 노력하고 싶어.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일까.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상 그 정답은 평생 알지 못하겠지.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속으로는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지고 문드러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지울 수 없는 대못을 박는 딸 앞에서 그녀는 단단한 모습으로 한 가지 소원을 말하였다. 예지가 올해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 엄마가 아직 퇴직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서포트해 줄 수 있어. 그러니 예지가 올해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봐. 그러고 나서도 안 좋으면 엄마랑 그렇다는 나라를 가보자. 엄마랑 약속하자. 엄마는 예지가 행복해지는 게 소원이야.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무너졌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거야. 딸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던 거야. 엄마도 나같이 누군가의 딸이었으면서 나를 살리고 싶어서 버티고 있었던 거야. 


  그 해, 나는 포기하려 했던 공부를 마저 마치고 직업을 삼아 일을 시작했다.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하니 한결 편했다. 막상 시작하니 보람을 느끼는 일들이 많았다. 좋은 반응들이 겹겹이 쌓였다.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 나로 인해 많은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통해 난 열정을 느꼈다. 더 알고 싶었다. 더 살아보고 싶었다. 나란 사람을 통해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치유가 된다니. 오히려 내가 그 사람들을 통해 치유가 된 적이 많았다. 기대감이 생겼다. 이 일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면 더 좋은 감정들, 더 좋은 변화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세상을 향해 닫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온 마음을 열어 햇살을 가득히 받아들인다. 지난날들을 회상한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때 엄마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난 이 빛을 보지 못했을 거야. 그 당시에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아팠으니까. 엄마에게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불효를 하면서까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니 내게 같은 딸이 있었더라면 나도 엄마처럼 똑같이 해주었을 거다. 네가 지금 많이 아프구나. 네가 조금 나아질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게. 괜찮아지면 같이 걷자. 




  어제 엄마의 옷을 골라주러 강아지와 함께 아울렛에 갔다가 강아지 산책 겸 집까지 40분이 넘는 거리를 엄마와 함께 걸어왔다. 엄마는 그렇다. 내가 어떻든 간에 나와 함께 걸어주는 동반자. 언젠가 몸이 굳어서 5분도 채 걷지 못했던 나를 지금까지 기다려준 엄마.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강아지와 함께 걸어오는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엄마의 한 없이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나 꼭 약속 지킬게. 엄마의 소원처럼 나 행복해질게. 지금도 나 너무 행복해. 엄마가 내 엄마여서 말이야. 그런데 더 행복해질게. 더더욱 행복해져서 내가 엄마를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엄마로 만들어줄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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