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2025년 6월 30일
사회정서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단 직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항 분석부터 정답 체크까지 뭐 하나 명확하게 풀어내기 힘든 아이의 학교 생활.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의 관계 문제는 우리 집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정서교육의 개념에 따르면,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김윤경 선생님의 책에서 재인용한 사회정서학습의 소개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사회정서학습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은 어린이와 성인이...(후략)'
나는 현재 중등교육에 몸담고 있지만, 평생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구체적인 비전을 그려보고 있다. 성인을 위한 디지털교육이나 생태교육 등이 그 예인데, 이런 교육은 죽을 때까지 필요한 역량과 관계된 것들로서 실천적으로 배우고 힘써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오늘 또 하나의 교육을 내 평생교육 커리큘럼에 넣기로 했다. 바로 사회정서교육이다.
그제야, 아이로 인해 걱정이 많아지면서 우울감까지 찾아왔다는 아내가 빌렸다는 책이 기억났다.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전에는 보고도 그냥 지나쳐 갔는데, 이번에는 대충 훑어보기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맙소사! 내가 한 학기 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청소년을 위한 비폭력대화'의 느낌말 목록이 더욱 세분화되어 수록되어 있었다. 이름만 달랐을 뿐, 사회정서학습은 어린이와 성인의 구별 없이 현재 진행 중이었다. 비교적 괜찮은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삶이었던 것도 같은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물론 전보다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사회정서학습에 대한 지식은 실천에까지 이르러야 했고 그래서 사회정서학습의 완성이야말로 죽는 날까지 이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버릇도 결국 사회정서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서 속담을 이렇게 바꾸어 보았다.
'세 살 사회정서 백 살까지 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는 날까지 사회정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백 살이 또 다른 세 살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