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2025년 8월 18일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어질어질한 노란색이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으면서 나조차도 어질어질해질 지경이 된다. '중국인 거리'에 담긴 정서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슬픔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의 정서를 어질어질한 노란색으로만 기억한다. 다른 꽃에 비해 비교적 값이 싸고, 탐스러운 봉오리가 여럿이 줄줄이 피어 좋아하는 프리지어의 노란색과는 분명 다른 정서의 다른 색이다. 이런 점에서 색은 사회정서교육에 있어 중요한 장치임에 틀림없다. 김윤경 선생님의 책에도 '룰러'라는 이름으로 색을 사용하여 감정을 체크하는 사회정서교육 프로그램이 소개된다.
'룰러 기술은 정서에 대한 인식Recognizing, 이해Understanding, 명명Labeling, 표현Expressing을 통해 정서를 조절Regulating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만약 감정 코칭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독자가 이 프로그램을 살펴본다면 감정체크판을 발견하고 반길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정서교육 연구팀도 이 룰러 기술의 적용을 위하여 '무드미터'라고도 하는 감정체크판을 사기로 했다. 100개의 색깔이 있는 색상자 안에 100개의 감정이 적혀 있는데, 활력과 쾌적함의 높고 낮음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 유쾌하고 에너지가 높은 감정(노랑)
- 유쾌하고 에너지가 낮은 감정(초록)
- 불쾌하고 에너지가 높은 감정(빨강)
- 불쾌하고 에너지가 낮은 감정(파랑)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를 보고 느낀 어질어질한 노란색의 정서는 25개의 노란색 부분 어디에서도 비슷한 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참고로, 노란색에 적힌 감정들은 다음과 같다.
놀란 / 긍정적인 / 흥겨운 / 아주 신나는 / 황홀한
들뜬 / 쾌활한 / 동기 부여된 / 영감을 받은 / 의기양양한
기운이 넘치는 / 활발한 / 흥분한 / 낙관적인 / 열광하는
만족스러운 / 집중하는 / 행복한 / 자랑스러운 / 짜릿한
유쾌한 / 기쁜 / 희망찬 / 재미있는 / 더없이 행복한
그러고 보니, 온라인으로 감정일기를 쓸 수 있는 '심스페이스'에서도 나의 일기에 대해 색으로 감정을 분석해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마음 명상을 알려주신 강사님께서는, '아이들 감정을 빨노초로 구분하는 지점에서 너무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어서, 그렇게 분석된 감정에 오히려 빠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말씀 주시기도 하셨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운데, 확실히 함께 사회정서교육을 연구하는 것이 좋은 것은 그래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팀의 팀장님께서 직접 '심스페이스'에 이와 관련한 문의를 용기 있게 해 주셨고, 이에 대해 얻은 답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미 고민했던 부분이며,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겠다.
- 초기의 '감정점수'라는 표현을 '감정온도'로 변경했다.
- 마이너스에 대한 거북스러움이 있을 수 있어, 개별 일기에서는 감정 온도를 표시하지 않도록 변경했다.
- 월별 보고서인 마음관리 통계에서는 그래프로 점수처럼 표기를 하여 수치에 대해 해석할 수 있게 했다.
- 우울, 불안, 스트레스, 열등감은 감정과는 별개로 신호등(빨/노/초) 색깔을 이용하여 표현한다.
-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점에서는 유용한 부분이 있다.
논란과 고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회정서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 분들의 거룩한 논란이자 고민임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된다. 나는 일단 이렇게 결론지었다.
1. 룰러 기술이 적용된 것이 나의 정서를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대로 따라 이용한다.
2. 룰러 기술이 적용된 것이 나의 정서를 부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왜 그런지와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눈다.
3. 룰러 기술은 기계적인 적용의 결과보다 매우 다채로울 수 있는 과정의 나눔에 주안을 둔다.
비록 '중국인 거리'의 정서를 색으로 표현하기는 완벽하게 빗나갔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죽음을 떠올릴 때 드는 마음과 그 색은 완벽히 표현했다. 무드 미터의 가장 오른쪽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색. 가장 짙은 초록색이며, 그러니까 가장 활력은 낮지만 가장 쾌적함은 높은 색. 그 공간에는 '안온한'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에 자살 명소로 유명한 후지산 일대의 '주카이(樹海) 숲'이 있다. 매년 1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사라진다고 추측되면서, 무척이나 공포스럽고 악명 높은 최악의 장소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곳에 대한 나의 정서는 완전히 다르다. 가끔은, 이름 그대로 짙은 초록의 바다 안에서 활력이 가장 낮아지는 가운데 가장 쾌적한 정서인 상태의 나를 그려보게 된다. 나에게 있어 주카이 숲은 내가 늘 선망하게 되는 안온한 죽음의 장소이다.
물론 나의 초록빛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또 더 자세히 나누어져야 할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