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식당을 찾아다녔다.

by 구자룡

다 멕시칸 식당이라 알고 있었다.


아침을 햇반과 라면, 포장 만두로 먹는 날들이 이어지고, 때론 점심과 저녁도 같은 걸로 먹는 날이 늘어나면서, 집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직 가족들이 멕시코에 들어오질 않아서, 주말에 부법인장님과 차장은 멕시코시티로 가족들을 보러 가고, 나는 대부분 주말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밥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결국 주말에도 라면으로 때우는 날이 이어졌다. 한 한 달 정도 지나서는 단지 밖으로 나와서 가까이에 있는 따꼬 (Taco)를 사서 먹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야채 샌드위치를 사기도 하고. 그러다 한 번 멕시코시티에 갈 일이 생기면 정말 신이 났다. 솔직하게 멕시코시티에서의 일보다도 한국 식당엘 갈 수 있다는 것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늦게까지 야근이 생겼다. 부법인장께서는 먼저 퇴근을 하시고, 차장과 같이 판매팀 야근을 하게 된 것이다. 야근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오면서 또다시 저녁식사로 라면을 먹을 생각을 하니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부법인장께서는 먼저 식사를 하셨을 것이고 해서 차장에게 근처 식당이 있으면 거기에서 저녁을 하고 가자고 했다. 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통상 처음 멕시코에 들어오는 한국사람, 일본 사람과 같은 아시아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라체라 (Arrachera, 치마살)를 주문하였다. 그때는 한국 식당이 아니면 다 멕시칸 식당이라 알고 있었다. 막상 멕시코에 살면서 멕시코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거의 가본 적이 없다. 대부분 가는 곳이 고기를 위주로 하는 아르헨티나 식당이었다.


해외에서 오랜동안 살면서 우리나라의 음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음식은 맛에 대한 느낌, 다양함,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음식으로만 맞출 수 있는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음식값이 고가인 고급 식당 (물론 맛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과 맛집을 구분할 수 있다. 나는 멕시코 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으나, 살아가면서 표면적으로 느낌을 보자면 멕시코 대표 음식인 따꼬 (Taco)를 제외하고는 맛집은 곧 비싼 고급 식당을 의미하는 것 같다. 멕시코 음식은 따꼬, 또르따 등의 음식과 아르헨티나 식이라는 고기, 유럽의 음식, 파스타 (이탈리아식)으로 섞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고급 식당가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가면 멕시코 식당이라기보다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식 음식점들이 줄지어 위치하고 있다.


멕시코는 치즈로도 유명하다. 지역별로 나오는 치즈는 그 맛이 다 다른데, 치즈가 멕시코 음식의 근간을 이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치즈가 발달해 왔을 거다. 그래도 치즈를 멕시코 음식으로 매겨야 할 정도로 멕시코에서 치즈는 없어서도 안되지만, 맛과 다양함에서도 유럽 치즈에 뒤지지 않는다. 나는 복귀를 한 후에 제일 생각나는 멕시코 음식이 살사(Salsa, 소스)다. 식당에서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서 갈아주는 살사가 제일 생각이 난다. 빵과 같이 먹던, 비스킷과 같이 먹던, 어느 음식과 같이 먹더라도 미각을 자극하는 멕시코 살사가 그립다. 집사람은 멕시코의 치즈가 제일 생각난다고 한다.


좋은 식당을 찾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퇴근하면서 들렀던 아르헨티나 식당에서 아라체라를 먹고 나서, 주변에 좋은 식당을 찾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사에서 출장 손님이 와도 그렇고, 직원들과의 회식, 고객사가 방문할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식당을 알아 놓아야 했다. 주변 식당들을 하나하나 들러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가본 곳이 일본 식당이다. 본사에서 출장 오시는 분이나, 멕시코에 투자한 한국기업 (우리 고객사)에서 오실 경우에 서양 음식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을 위해서라도 아시아계 음식점부터 수배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 깨끗하고, 손님들이 많다는 일본 식당을 찾아서 직원 몇몇과 같이 갔다. 한국에서 일본 식당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아마 다들 그런 이미지는 가지고 있을 거다. 그걸 다 무시하면 된다. 완전히 다른 일본 식당이다. 초밥에도 치즈가 들어가고, 소스도 다르다. 얼마 정도 지나서 맛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일식당으로 보기엔 어렵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몇 번 가다 보면 그 맛은 익숙해진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게 된다. 나중에 이야기가 또 나오겠지만, 깐꾼 (Cancun)의 고급 호텔에 속해 있는 일식당 예약을 어렵게 하고, 기대를 잔뜩 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한다 해서 챙겨 입고 갔었는데, 중간에 나와서 고기를 주로 하는 식당으로 다시 가서 먹은 기억이 있다. 그 일식당이 맛이 없고 잘 못한다기보다는 우리 가족이 생각했던 일식과는 너무나 달랐던 거다.


일식당에서의 실망감을 안고, 다행히 그 식당에서 마셨던 맥주 맛이 너무나 좋아서 첫 기억은 좋다. 어느 정도 기간이 경과해서 멕시코의 맥주 맛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멕시코 맥주는 꼬로나(Corona)였는데, 막상 멕시코에 와서 보니 꼬로나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보기 어렵다. 물론 마시긴 하지만, 주로 모델로 (Modelo) 브랜드를 마시는 경우가 무난하다. 이외에도 많은 맥주들이 많다. 빅또리아 (Victoria)라는 맥주도 괜찮고, 이외에도 멕시코 브랜드의 맥주는 종류가 너무나 많고, 맛이 있다. 술을 마시는 성인이라면, 멕시코에서 한 1년쯤 경과되면, 맥주와 데낄라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 확실하다. 맥주와 데낄라, 치즈, 살사는 멕시코를 잊지 못하게 하는 대단히 큰 요인이다. 지금의 나는 술을 안 하니, 나에겐 살사가 너무나 그립다.


일식당에서의 실망을 안고, 다른 식당을 찾아서 가보았다.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지금까지 생각나는 식당은 네 군데다. 네 군데 중 3군데의 이름은 산루이스포토시를 떠난 지 6년 이상이 되었음에도 기억이 난다. 그만큼 좋았던 기억들이 많은 식당이다. 그중 한 식당은 역시나 내가 아구아스깔리엔떼스로 전근을 했을 때 얼마 있다가, 그곳에도 분점이 생겼었다. 그 집은 자체에서 만든 맥주도 팔았었는데, 와인잔 비슷한 잔에다가 가득 부어서 잔으로 파는 맥주였다. 그 맛이란 정말 멋있었다. 그 집은 파스타도 잘했는데, 정말 기억이 많다. 멕시코에서는 고기를 주로 하는 식당들이 많은데, 같은 식당이라고 해도 그날 들어오는 고기의 상태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운이 좋아서 좋은 고기들이 들어오는 날은 정말이지 맛있다. 또 어떤 날은 같은 음식을 시켜도 맛이 정말 안 좋을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추후 멕시코시티로 와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당시 산루이스포토시에서는 가는 날마다 고기 맛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짜다. 아주 짜다. 한국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다해서 말은 안 하지만, 아주 고급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켰는데 너무 짜서 거의 안 먹고 나온 적도 있다. 한 3년 산후에는 소금을 적게 넣어달라고 이야기도 하고, 정말 짜게 나온 경우엔 다시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좋은 것은 완전히 다시 해 달라고 해도 식당에서 얼굴을 붉히는 경우는 없었다. 웃으면서 다시 해준다 하고, 다시 해서 가져와 어떠냐고 묻는다. 다시 해온 음식이 짠 경우도 많은데, 숙성을 해 놓은 고기라 그럴 수 있다. 다시 해왔을 경우엔 그냥 괜찮고, 고맙다 하면서 먹는다. 한 번 더 하기엔 마음이 여리다. 이렇게 식당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에서 언급한 네 군데의 식당을 정해 놓고, 손님들이 오시면 그곳들 중 한 곳으로 모시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한 식당을 갔었는데 그때 시간이 10시가 가까이 된 시간이었다. 네 명이라 하니 잠깐 기다리라 한다. 예약을 안 하고, 시간이 늦어서 당연히 자리가 있을 줄 알았다. 잠깐 기다리니 한 일행이 나가고 우리 자리가 만들어졌다. 들어가면서 여기가 멕시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의 90%가 백인들이었다. 10시가 넘어서 까지도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찼고,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던 거다. 살면서 보니까 지역별로 특징이 있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백인들이 많은 듯했다. 그 소수의 백인들이 멕시코의 경제권도 쥐고 있는 것이다. 철강 쪽만 본다면, 일반 건자재용 철강 사업에서는 이제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젊은 사장들이 많다.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거의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아버지 세대에서 창업을 하고, 자식들은 미국, 영국, 스페인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멕시코로 돌아와서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는 중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계속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이들이 내가 하는 장사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빼고는 멕시코에서 내가 경험한 철강 장사를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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