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건설이 지속되고, 판매를 위한 사전 작업, 고객사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는 와중에 가족들이 멕시코로 들어왔다. 가족들이 멕시코에 들어오기 전,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야 하는데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아내가 이사 준비를 다했다. 이상하게 우리가 이사를 하는 날이면 나는 출장 중이거나, 근무지를 옮겨 부임하게 되어 가족들보다 일찍 이동을 하게 되는 사유로 언제나 이사 준비는 아내의 몫이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 이사뿐이 아니다. 미안한 걸로 치면 리스트로만 적어 내려 가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온다. 무사히 들어와야 할 텐데. 들어오면 살 집이 준비되어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집이 여의치 않을까 봐 서둘러 집을 구했다. 문제는 가구도 없고, 조만간 들어와야 하는데 이불 조차도 준비되지 않았다. 급한 대로 빵, 음료수, 스낵 등 도착하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얼마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6명이 같이 보내기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근무지는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이동하면 4시간 정도 걸리는 산루이스포토시다. 주말부부인 셈이다. 주말에만 같이 지내야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평일에는 차도 없고, 전화도 없으니 연락도 어렵고, 생각해보면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언어도 안되고, 그야말로 낯설기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이 답답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정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때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가족들이 멕시코에 도착하기로 한 날 당연하지만, 바쁜 공사 현장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입국장에서 불안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 짐 찾는 곳에서 언뜻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비쳤다. 짐 찾는 곳에 있다는 건 입국심사는 마쳤다는 뜻이다. 짐 검사대만 통과하면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애들 넷을 데리고 짐을 여러 개 들고 왔으니 검사대를 그냥 통과할리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 검사하다가 통과될 수 없는 물품이 나오면 그냥 주고 오면 되는 거니 말이다.
5명의 가족들이 무사히 멕시코에 도착했다. 만세! 그동안 걱정했던 많은 것들은 소위 말하는 기우였다. 무사히 멕시코 땅을 밟았다. 짐 검사대에서 올망졸망 아이들이 보였고, 역시나 큰애가 짐을 검사대에 올렸다 내리는 등 엄마를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짐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가족들이 나왔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얼마간 아내와 아이들을 포옹하고 공항 밖으로 이동을 하면서 물어보니 짐 검사대에서 금지 품목은 없었다고 한다. 그것도 다행이다.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아는 척을 했다. 돌아보니 나와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주재원 분이셨는데, 얼마 뒤에 서로가 동갑인 걸 알고 친구가 되었다. 그분이 공항에서 아는 척을 하길래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니, 우리 가족들이 멕시코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왔다는 거다. 놀라서 어떻게 아시고 오셨냐고 하니까, 우연히 들었다고 하시면서, 가족들이 처음에 들어오면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고 불안하기도 할 텐데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 하시면서, 오늘 가족들이 들어오고 첫날이니 저녁을 사겠다고 하셨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가족들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공항을 나와서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이동을 하였다. 한국 식당에서 가족들과 우리 마중을 나와주신 그 분과 같이 식사를 했다.
가족들이 들어오면서 첫날은 멕시코시티의 식당도 잘 알지 못하고, 치안도 안 좋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불안했고 해서 임차한 집으로 가서 빵과 음료수로 때우려 했는데, 다행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 집으로 이동을 하였다. 살아가기에 준비된 것이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막상 가족들과 같이 집에 도착하니 의외로 가족들이 괜찮다 하는 것이었다. 침대는 아니지만 매트와 담요가 있고, 냄비, 라면 등도 있었고 하니 괜찮다는 거다. 오히려 아이들은 재미있어라 했다. 가족들의 반응을 보니 걱정했던 내가 이상해졌다. 기쁘다고 할까.
이번에 가족들이 멕시코에 들어오면서 역시 사람은 혼자만 살아가는 건 아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웃이 있는 거다. 먼저 오신 주재원분들도 있고, 그 가족분들도 있는 거다. 다들 뭐하나 더 도와줄 일 없는지 물어오시고, 임시로 지낼 매트와 담요도 준비해 주시고, 우리가 멕시코에 처음 와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내가 건설현장으로 출근을 하면 주중엔 가족들만 있어야 하고 해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그것도 주변 분들이 같이 이동해 주시고, 나에게 연락하거나 내가 연락을 해야 할 때도 연락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등 많은 도움들을 주셨다. 그러니 내가 그동안 걱정했던 것들은 소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애들 학교도 결정되어 다니게 되었고, 아내에게 전화도 만들어 주었고,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하나하나 익히고 준비해 가고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을 설치를 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애들 숙제도 해야 하고, 국제전화비가 너무 비싸서 한국에 연락을 하려 해도 인터넷이 되어야 하는데 인터넷 설치가 지지 부진한 것이다. 어느 분이 나에게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려면 한 달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하길래 설마 그렇게까지 걸리겠나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현실이었다. 전화해서 왜 안되냐고 하면, 선을 끌어와야 한다고 하고, 더 황당한 것은 담당자가 바뀌어서 다시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속이 터진다. 하도 안돼서 내가 회사에서 휴가를 내서 평일에 멕시코시티에 와서 인터넷 설치하는 사무실엘 갔다. 가서 들은 담당자의 말이 더 나를 화나게 했다. 그렇게 급하면 스타벅스에 가서 인터넷을 하라는 거다. 뭐 이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한 달 여가 지나서 설치가 되었다.
이를 주변 여기저기 이야기하니,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다들 그런 에피소드 몇 가지는 가지고 있었다. 아주 몇 년 뒤의 일이지만, 나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은 인터넷 설치에 두 달 이상 걸렸다. 2019년 현재 지금의 멕시코는 많은 외국자본의 투자와 외국 회사들의 진입으로 많이 달라져 있다. 위로부터의 의식변화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초기 진출 시에는 어느 정도의 적응 기간은 감수를 해야 한다. 어디나 국가 리스크라는 게 있다. 국가 리스크라는 건 어디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그들 입장에서는 국가 리스크라는 게 있는 거다. 미국도 마찬가지고, 영국도 마찬가지고,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국가 리스크는 다 있다. 그러니 현지 경험이 중요하다. 현지 경험과 현지 문화에 대한 분석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
인터넷, 전화, 한국에서 출발한 이삿짐 일도 해결이 되어가면서, 애들 학교도 입학 허가가 나서 학교 등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언어나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이 잘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영어도 외국어 수업을 들을 정도로 잘하지도 못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잘 지낼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걱정에 덮여서 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걱정을 10개를 하면 1개 정도가 걱정할 정도나 될까 말까 하는 것 같다. 등교 첫날 오후 늦게 건설 현장에 있었던 나는 애들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결과는 애들이 좋아하고 괜찮다는 거다. 특히 막내는 신나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학교에서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수업 중이라도 화장실에 갈 수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아이들과의 말하는데 문제없느냐 하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외국인이라고 해도 또래만이 알 수 있는 공통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나 다행이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들의 멕시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와 우리 가족들이 11년을 멕시코에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