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진행되고, 설비가 들어오고 하면서 준공식 준비를 해야만 했다. 본사와 협의하여 날짜를 확정하고, 예산, 참석인원을 포함한 세부 내역을 결정하였다. 이벤트사도 수배하여야 한다. 멕시코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도 철제 접이 의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도 당연하다는 듯이 철제의자에 격의 없이 앉는다. 때론 다리도 꼬고. 철제의자까지는 좋다 해도 우리 같으면 천으로 덮어서 보기 좋게라도 할 텐데 그냥 까맣게 칠한 철제 접이 의자 그대로 사용한다. 그리고, 대부분 - 거의 전부 - 행사에 VIP는 연단 위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있고, VIP 이외의 참석자들과 마주 보게 된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차질 없이 준비를 해야만 했다.
최우선으로 주지사 및 시장, 주경제부 장관의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주정부와는 이런저런 일로 담당자와 안면을 터 놓아서 연락은 어렵지 않았다. 전화나 메일보다는 만나서 이야길 하길 좋아하는 멕시코 사람들 특성대로 주정부 사무실로 담당자를 찾아갔다. 사전에 유선으로 연락을 해 놓은 터라 도착과 동시에 방문 등록을 하고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방문해서 만나면 좋은 점 중에 또 하나는 생각지 않게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주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무슨 일이냐 묻길래 우리 공장 준공식을 하는데, 장관님 일정을 확인하러 왔다고 하니, 언제냐고 물으면서 바로 확인을 해 주셨다. 그런데 착공한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착공식은 언제 했던가라고 물으셔서 답변을 하니, 아니! 벌써 준공식을 한다는 건가라고 놀라시며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대단하다고 하셨다. 이후 담당자를 만나니 역시나 놀랍다는 반응이었고, 주지사님 일정을 확인해서 알려주겠다 한다. 참석 가능하시다 하면 정식 초청장을 드리러 한번 더 오겠다 하고 주정부 건물을 나왔다.
주변 이벤트 회사를 다 뒤졌다. 통상 준공식을 하게 되면, 예산, 상세 디자인, 배치도, 행사 순서 등이 담긴 문서를 작성한다. 작성된 문서를 가지고 이벤트사에 가능 여부와 견적을 확인하게 된다. 불안했다. 멕시코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멕시코 이벤트 회사들이 그걸 맞추어 줄 수 있는지 불안했다. 이 준공식은 우리 공장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고객사와 멕시코 정부에 보여주는 행사이다. 고객사에서 우리 공장을 처음 보게 되는 행사인 것이다. 중요한 행사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 나름의 몇 가지 기준을 정해서 이벤트 회사를 찾아다녔다. 첫째는 언어였다. 통상 멕시코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한다. 언어는 영어로 통일해야 한다. 견적, 디자인, 오찬메뉴 등을 담은 모든 문서는 영어로 되어야 하고, 나와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므로 영어로 통일해서 진행을 해야 했다. 다음으로는 경험이다. 큰 행사를 진행해본 경험이 중요했다. 특히나 멕시코에 진출해 있는 한국이나 일본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대한 경험이 필요했다. 우리 공장 주변에 위치한 이벤트 회사는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다.
산루이스포토시 공장 주변에 있는 이벤트사에서부터 멕시코 시티에 소재한 여러 이벤트사를 대상으로 견적도 받고, 찾아가서 보기도 했고 했는데, 대통령이 나오시는 행사에서도 접이 의자로 진행하는 멕시코 행사 진행 특성상 한국 대기업의 준공식을 맞춰 줄 수 있는 이벤트사를 찾기는 어려 웠다. 고민 끝에 450여 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타미라 우리 생산기지 착공식을 거행한 이벤트 회사를 수배하기로 하였다. 결국 알타미라 근처에 있는 탐피코라는 도시에 위치한 이벤트사를 수배하고, 방문해서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이후 준공식 등의 레이아웃을 전달하고, 나는 판매활동에 다시 집중을 하였다. 우리 영업부 차장과 같이 고객사들을 방문하고, 인근 철강 수요 업체들에 연락을 하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판매활동을 진행하였다. 전화번호부를 보면서 철강 관련 인근 모든 업체에 연락을 취했고, 자동차강판 공급을 위해 인근 완성차사는 물론이고 부품사 리스트도 만들어서 하나하나 컨택을 진행하였다. 판매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준공식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왔다. 어느 정도 준공식을 남겨두고 중간 점검을 하기 위해 계약된 이벤트사 컨택을 해서 만남을 가지려 했다.
그런데 이 이벤트 회사가 연락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날짜는 다가오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있는지 확인도 안 되고, 정작 이벤트사도 연락이 안 되니 마음은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탐피코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가기 전날 푸에블라에 계시던 법인장님이 산루이스포토시에 오셨기에 저녁을 같이 했다. 저녁을 마치고 호텔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벤트사가 연락이 안 되어 탐피코엘 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법인장님께서 그렇게 애쓰지 말라고 하시면서, 책임은 본인(사장님)이 지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말씀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지던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준공식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다음날 운전기사와 먼길을 떠났다. 연락이 안 되었으니 그저 무작정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탐피코에 도착을 했다.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사무실로 가서 사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로비에 있었던 직원이 다들 여기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이벤트사가 문 닫고 도망을 갔다는 상황도 머릿속에 넣어 두었었다. 멕시코 계약 관행상 50%는 선금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 기억으로 당시에 50%는 아니고, 30% 정도 지급을 하고 계약을 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일부를 지급했었다.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빅토리아라는 도시로 갔다고 했다. 빅토리아는 탐피코로부터 2, 3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다. 치안이 위험하다고 하는 도시인데, 그건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다. 일단 이벤트사 건물을 나와서 운전기사에게 빅토리아로 가자고 했다. 이벤트사 직원이 알려준 장소로 가니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이벤트사를 찾아다니는데 한쪽에 이벤트사 사장이 보이는 것이었다. 가서 막 뭐라 하니, 미안하다 하면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정부에서 의뢰한 행사를 진행했는데 자금이 들어오질 않아서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연해서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하면서, 내가 사장을 데리고 산루이스포토시를 가야겠다고 하니, 지금은 못 간다 하면서 정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산루이스포토시 방문 일자, 시간 등을 정하고 행사장을 나오니 밤늦은 시간이었다. 밤에 이동하기엔 너무 위험하기도 한 것 같아서 인근 호텔에 가서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행사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곳) 때문에 방이 없다고 했다. 다른 호텔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밤에 산루이스포토시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라고 기사에게 물어보니 4, 5시간 걸리고 길이 좋질 않아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밤에 이동을 하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지 몰랐었다. 그럼 호텔 다른 데를 더 가보자고 하고, 호텔이라 써진 곳은 다 들어가 보았다.
한 곳에 가니 방이 있다고 하는데, 건물 등이 영 내키진 않았지만, 주변 호텔엔 방이 없으니 할 수 없이 그 호텔에 묵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방에 들어가니 지저분하기도 하고, 화장실 변기는 물이 안 내려가는 것이었다. 로비에 전화를 하니 다른 방이 없고 수리하려면 며칠 걸린다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을 닫고 잠만 자고 가자라는 생각에 일단 잠을 잤다. 이 일로 해서 나는 직원들의 호텔 숙박비 한도를 높여 주었다. 다음날 아침 도저히 그 호텔에서는 식사도 할 수 없어서 운전기사와 같이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산루이스포토시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산루이스포토시로 가는 길은 기사의 말대로 험했다. 옆에는 낭떠러지가 심한 길도 있었다. 밤에 이동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기사에게 고맙다 했다.
얼마 후 준공식 전날 오전에 이벤트팀이 도착을 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막상 이벤트 회사가 와서 작업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한 걱정들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프로였다. 이 일로 그 이벤트사 사장하고는 친해졌다.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곤 했다. 준공식 최종 준비를 마치고 점검을 하는 자리에 있는데, 다른 것은 다 마음에 들었고, 이벤트사에서 설치한 내용 들이 내가 요구한 것과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단,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VIP 줄에 VIP들이 앉아야 되는 의자가 마음에 안 들었다. 조그마한 의자였는데 의자들이 앉아보니 삐걱거리고 흔들렸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벤트사에서는 지금 교체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살아가다 보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 나의 이 믿음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옆에 계시던 한분, 이분이 우리한테 명함을 공급하던 회사의 사장님이셨다. 여자분이셨는데, 이분은 지금까지도 소식을 전해 듣고 있다. 이분이 본인이 구해 보겠다 하시면서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여기저기 연락을 한 후에 한 곳에 있다는 연락이 있었다 했다. 그래서 우선 그곳에 가서 의자를 가져오기로 하고 그 사장님과 내가 그곳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며 그 밤에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엄두가 안 났을 거다. 지금이라면 의자에 목재를 덧 붙여 수리했거나, 공장 건설 후 남은 자재로 의자를 만들었을 것 같다. 그땐 모르기도 했고, 급하기도 한 그런 상황이었다. 의자를 구해서 가져다 놓았다. 준공식 준비는 마무리되었다.
주지사, 시장, 주경제부장관 일정 및 참석여부도 확인되어 진즉에 초청장은 발송이 되었고, 잠재 고객사에도 초청장이 발송되어 참석여부를 확인했고, 오찬 음식도 사전 시식을 마치고, 짠 음식이 일상인 멕시코에서 소금의 양도 주방장님과 이야길 마쳤고, 사전에 모든 준비사항들이 몇 번이고 다시 확인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 한 건, 우리가 상당히 까다롭게 준비를 이어 갔고, 이벤트사가 거의 학을 띠었을 것인데, 추후 이벤트사 사장이 준공식이 끝난 후에 이어진 만남에서 이 건으로 해서 정말 많이 배웠다는 거다. 이게 계기가 되었는지, 아니면 사장님의 사업수완으로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벤트 회사는 지방에 위치해 있음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사장님께 감사한다.
준공식 당일 주지사님은 당연하게도 30분 정도 지연된 시간에 도착을 하셨다. 여기서 시간을 정의하는데 우리와 멕시코 사람들과의 차이를 이야기 한 번 해보자. 기록된 근거는 없다. 그저 멕시칸 친구에게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리했다. 예를 들어 보자. 저녁 7시에 파티를 하기로 하고, 초청장에 7시라고 명기되어 있다. 한국사람들은 6시 50분 이전이면 이미 다 모여 있다. 그리고 시작은 7시에 한다. 멕시코 사람이라면 도착은 7시 30분 이후부터 8시 30분 사이에 대부분 도착한다. 어느 나라 사람이 틀렸을까? 틀린 거 없다. 그저 차이일 뿐이다. 둘 다 파티의 호스트를 배려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호스트가 7시 정각에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예의다. 멕시코에서는 7시라고 하면 7시부터 준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호스트에게 파티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예의다. 그러니 7시 이전이나, 30분이 경과되기도 전에 도착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실제로 7시에 시작한다는 파티에 7시에 가보면 막상 시작은 8시 30분인 경우가 많다. 당황할 거 없다. 그게 멕시코에서는 배려다.
주지사님도 이런 배려를 잊지 않으신 거다. VIP분들의 축사가 이어지고, 주지사님도 신속하게 건설을 마친 공장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셨다. 고객사들도 공장의 배치나 준공식에 대해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주었다. 고객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다.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명함을 교환했고, 즉석에서 다음 미팅 약속을 잡기도 했다. 고객사들에게 첫인상을 좋게 보여 주었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장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신호탄이었다. 어쩌면 준공식 준비하고, 그 이전 건설하고 할 때가 더 좋은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준공식을 마치고 막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는 초기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속이 타는 정도가 아니라 피가 말랐다. 그건 다음에 이야길 해 보려 한다. 오늘은 준공식만 다루어 보자.
이 준공식 이후에 나는 멕시코 땅에서 다시 준공식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에 한 번 더 하게 되었지만, 당시엔 이제 장사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걸 보면 준공식은 성공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준공식은 성공적이었다. 성공적이란 판단의 기준이 나름 있다. 그날 참석하신 본사 임원분이 준공식을 마친 후 수고들 많았다라 말씀을 하시면 그 준공식은 성공했다 보면 된다. 우린 그 말씀을 들었고, 그래서 우리가 준공식을 잘 마쳤다고 자찬을 했고, 이어서 물론 조촐하게 법인장님을 모시고 뒤풀이를 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마치 혼자서 북 치고 장고치고 한 것 같은데, 결단코 그건 아니다. 당시 법인장님 이하 부법인장님, 우리 직원들 다들 뛰어다녔다. 내가 주경제부에 방문했을 때 우리 직원들을 테이프 커팅에 사용할 가위 찾으러 온갖 군데를 돌아다니곤 했다. 이상하게 다른 가위는 있는데, 테이프 커팅용 가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못 찾았다. 한참 지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테이프 커팅 행사용 가위는 찾질 못했다. 막상 당시에 테이프 커팅을 하신 VIP분들은 가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으셨을 거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내가 이벤트사 찾아다닐 때 부법인장님은 막바지 공사를 확인하고 계셨고, 판매팀은 고객사 만나서 사전 판매활동하면서 준공식 초청장도 전달하고 하는 활동들을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조직에서 혼자서 하는 일은 없다. 뭔가가 잘되고 있다면,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고 있다. 특히나 철강업계에서는 혼자서 하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