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돌아온 멕시코 시티

버스 티켓 끊다가 뒷목 잡을 뻔......

by 문간방 박씨

8년 전 과달라하라에 출장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땐 내가 지구 반대편을 다시 오는 것은 살아생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이상 마지막이라는 것은 없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지구 반대편이라도 여행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다. 과거에는 2달 이상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야 겨우 도착했지만 지금은 하루 정도 시간만 투자하면 어디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으니 언제든 불가능이나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가고 싶으면 가면 된다.


2022년 과달라하라를 떠날 때 내 마음은 이번에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눈물은커녕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해결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도 이 정도 각오도 없이 멕시코에 그냥 온 것은 아니었다. 조만간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Omar와 하고 나는 과달라하라에서 멕시코 시티로 향했다.




과달라하라에서 멕시코 시티로 가는 비행시간은 55분이다. 잠깐 졸다가 물 마시니 내리라고 하더라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한국은 주말이니 나도 멕시코 시티는 관광할 목적이었다.

멕시코 시티로 놀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Omar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멕시코 시티는 5년 전에 이미 놀러 온 적이 있었고, 그때 기억을 더듬어서 리마인드 여행을 이틀간 계획했다.


숙소는 멕시코 시티 공항 제2 터미널에 있는 호텔로 잡았다.

호텔에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나는 짐을 맡겨두고 멕시코 시티 광장으로 나가기 위해 버스 티켓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기계가 복잡하게 생겼다.

영어로 바꿔서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이해가 잘 안 가고 내 지폐를 자꾸 기계가 뱉어냈다.


이때 내 뒤에 서 있던 프랑스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말을 건넸다.


문제의 버스 티켓을 살 수 있는 기계다


도와주겠다고 자신 있게 나선 프랑스 할아버지는 말을 할 때마다 자꾸 본인의 비말 마스크를 내리는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잘 몰랐다. 결국 내가 넣은 10페소 (600원) 짜리 동전을 기계가 먹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나는 이 사람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졌다.


프랑스 할아버지 : 내가 해결해 줄게. 기다려봐

Sorita : 아니 괜찮아. 내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게

프랑스 할아버지 : 네가 가진 돈이 신권이라 이 기계가 먹지 않는 것 같아. 내가 구권으로 바꿔줄게


이때까지는 호의를 생각해서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멕시코 경찰까지 불러서 물어봤지만 정작 경찰도 버스 타본 적은 없는지 전혀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지 못했다.


Sorita : 버스 티켓을 사려면 먼저 카드 보증금을 내고 카드를 사야 해. 내가 알아서 할게

프랑스 할아버지 : 얼마를 충전하고 싶은데?

Sorita : 호텔에서 이틀 지낼 거라서 왕복권 2장 요금만 충전하면 돼


편도 요금은 30페소로 나는 시내에서 카드 충전이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미리 카드에 금액을 넣어 두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 할아버지가 30페소 * 4= 120페소를 계산기로 두드리는 순간부터 이 인간과 상종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프랑스 할아버지 : (내가 가지고 있던 100페소를 뺏으며) 돈 줘봐. 내가 도와줄게

Sorita : 아니. 일단 카드 먼저 충전해야 하는데 카드 충전 값이 45페소야. 네가 100페소를 넣으면 잔돈이 안 나와서 내가 55페소를 잃게 돼. 여기 "No da cambio" 보이지?

프랑스 할아버지 : 일단 믿고 맡겨봐

Sorita : 아니라니까!

프랑스 할아버지 : 기다려봐

Sorita : 싫어! 내 돈 내놔!


프랑스 할아버지가 나에게서 가져간 100페소 (6천 원)을 돌려받으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내 100페소를 움켜쥐고는 끝까지 본인에게 맡기라고 했다. 다행히 멕시코 지폐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찢어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인간은 무슨 생각인지 내가 도움 필요 없다고 해도 내 돈을 움켜쥐고 내어줄 생각을 안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지폐 양쪽을 잡고 팽팽이 맞서고 있었다.


나는 순간 4가지 이유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1) 10페소짜리 동전이 필요한데 10페소를 기계가 먹었다. 직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직원은 올 생각을 안 한다.

2) 신권이 나온 지가 언젠데 공항에 있는 버스 티켓 기계는 구권만 사용할 수 있다

3) 물을 마지막으로 언제 마셨는지 모를 프랑스 할아버지는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기며 말을 할 때마다 비말 마스크를 내려서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4) 내 돈 100페소를 내가 돌려달라는데 자기가 뭔데 내 돈을 주지 않겠다는 건가?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소매치기나 강도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오지랖 넓은 프랑스 할아버지였다. 마음속으로 혼자 경고를 세면서 참고 있다가 멕시코 시티에서 외국인을 한 대 때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말 이 인간을 어찌해버릴까 고민을 하던 그 순간!


그때 목소리 좋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스튜어디스가 나를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어느새 현지인들도 몰려와서 내가 얼마를 충전해야 하는지 물었고, 어느 아기 엄마는 나에게 새 카드를 (45페소) 손에 쥐어줘서 나는 120페소 (30페소 * 편도 4번)의 금액만 충전해도 됐다.


예상치 않게 최악의 인간을 만났다 싶었는데 멕시코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나는 버스 티켓을 무사히 끊었다.

프랑스 할아버지의 간섭 때문에 자주 오지도 않는 버스를 2번이나 놓쳤고, 나는 기계가 먹어버린 10페소 동전을 마련하기 위해 공항 안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때 또 프랑스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프랑스 할아버지 : 여기서 버스 타는 거야

나 : 알아. 나 화장실 가는 거야. 따라오지 마


이 할아버지는 바로 옆에 와이프도 있는데 쓸데없는 관심을 나에게 너무 보이고 있었고, 내가 편의점에서 10페소 동전을 구해올 동안에도 버스를 기다리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행히 나를 도와준 남자 스튜어디스가 내 옆에 서 있다가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묻고, 같은 버스의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하필 또 내가 탄 버스가 고장이 나서 중간에 전부 내려야 할 때도 중저음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던 그 남자는 내가 환승해서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가르쳐줬다. 이 사람도 마스크를 입만 가려서 100점짜리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랑 대화를 할 때마다 윙크를 하는 신비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옛말에 '인물값 한다'라고 하더니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목적지에서 무사히 내렸고, 5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멕시코 시티 중심가를 구경했다.


무료로 구경할 수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한국 전시관도 있었는데 거의 다 복제품이었다


이 길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괜히 경찰들이 길을 막아둔 것이 아니다. 5년 전에 생각 없이 나갔다가 내가 와서는 안될 곳을 왔구나 라는 느낌을 받고 서둘러 도망 나왔다


국립박물관에는 유명한 벽화가 있다.


칼로 내려치기 직전의 그림인데 그 이후의 장면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5년 전에 묵었던 호텔을 지나 큰길로 나서자 마스크를 하지 않은 수많은 현지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멕시코는 코로나 확산세가 줄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제대로 확진자 수를 세고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마스크를 다시 한번 단단히 착용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 한 성당을 찾아갔다.


금으로 뒤덮인 성당이다. 이 정도 되니 스페인에서 눈독을 들이고 탐을 내지 않았을까 싶다
성당의 구조는 십자가 모양이었는데 작은 방에는 또 다른 금으로 된 기도실이 있었다. 성당 내에 그림도 정말 크다


성당 바로 건너편에는 멕시코 시티에서 정말 유명한 식당이 있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역사적이고 유명한 곳이라 과거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으러 이곳에 왔었다.


5년 전에는 다음번에 다시 멕시코 시티에 오면 이 식당에서 꼭 밥을 먹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 코시국이라 여기서 마스크를 벗고 밥을 절대 먹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입구에 타말요의 벽화가 있다. 3층에서 내려다 본 식당이다. 식당 벽면에는 동양적인 느낌의 벽화가 사방에 그려져 있다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 건물도 많이 낡았구나 싶다
멕시코의 상징, 보라색 꽃을 가진 나무다. 이 나무가 참 그리웠는데 여기 와서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다


혹시나 누가 따라붙을까 봐 가게 창에 비친 나를 수시로 보면서 뒤를 살폈다.

수상한 소년 두 명이 있다 싶으면 먼저 보내고, 경찰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중간중간 사진을 찍었다.


멕시코 시티를 대표하는 광장이다. 과거 지진으로 건물이 살짝 기울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템플로 마요르인데 이곳은 발굴하면 할수록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다. 내일은 이곳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시 공항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공항 가는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경찰과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버스를 한번 같이 갈아탄 다음에 내 호텔이 있는 제2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했다.


버스에도 경찰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릴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 있으니 정말 든든해서 언니라고 부르고 싶더라


멕시코 시내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은 돈 내라고 하면서 와이파이는 무료라니 조금 의외였다. 나는 몰카를 찍어서 Y군한테 보냈다.


[Sorita] [오전 10:27] 멕시코 여경이야

[Y군] [오전 10:29] 팔 두께가 저랑 비슷해 보이네요..ㅎㅎ

[Sorita] [오전 10:33] 여기는 여경이 훨씬 무서울 거 같아

[Y군] [오전 10:39] 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Y군] [오전 10:39] 동등하게 강하다니 멋있네요

[Sorita] [오전 11:13] 근데 여경들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길 물어볼 때나 버스 탈 때 전부 남경한테 묻게 되네 ㅋㅋㅋ

[Y군] [오전 11:39] 아이고 ㅋㅋㅋㅋㅋㅋ


멕시코 친구들은 경찰도 믿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경험상 가장 친절하고 열심히 도와준 사람들은 멕시코 경찰이었다.


밤이 되자 거의 모든 거리에 경찰차와 트럭에 타서 기다란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들이 순찰을 돌았다.

이걸 안전하다고 여겨야 하나, 아니면 저녁 6시 이후로는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 건가?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날이 밝을 때 호텔에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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