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네, 정미소를 지으려구요.”
“농사는 지어본적 있습니까?”
“네, 지금 벼농사 짓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의령 분이신가요?”
“아니요.”
“그럼, 의령에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연고가 있으신가요?”
“아니요.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령에 정미소를 지을 생각을 하셨어요?”
“함안으로 귀농했는데, 정미소를 지을 땅을 찾다 의령에 마음에 드는 땅이 있어서 지으려구요.”
“정미소라......
기존에 하시던 분들도 문을 닫는데, 지금 새로 정미소를 지어도 괜찮을까요?
왠만하면 안하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
...
“네? 저희는 정미소 꼭 지을 생각입니다. 꼭 해야합니다.”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해 보시고 다시 오세요.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괜히 대출해서 안되면 어떡합니까? 젊으니깐 다른 일도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무조건 정미소를 지을 것이라 우리의 각오를 단단히 이야기했는데도 계장님은 단호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기로 하고 남편과 나는 담당부서에서 힘없이 나왔다.
그때, 뒤에서 처음 우리를 담당했던 담당자가 뒤따라나왔다.
“이야기 잘 하셨어요?”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오라고 하네요. 저희는 꼭 정미소 지을 계획인데......
오늘은 돌아가고 며칠 뒤에 다시 와야겠어요.”
“젊은 사람이 사업을 한다고하니 걱정되서 그러실 거에요. 주소는 여기로 되어 있나요?”
“아니요. 아직 이사를 못해서 정미소 지으면서 이사할 곳 찾아보려구요.”
“귀농귀촌정책자금은 의령으로 귀농하신 분들에 한해서 신청가능합니다. 돌아가셔서 생각해보시고 다시 오세요. 의령에서 정미소를 하시려면 이사부터 하셔야겠네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적당한 땅만 찾고 대출 가능한 금액을 알고 모자란 돈은 어떻게든 마련하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다.
귀농귀촌정책자금이라는 것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서류도 제출하기 전에 무딪히다니...
축 쳐진 어깨 너머로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어디 내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귀농귀촌정책자금이 있다는 것을 안 우리는 함안에도 그런 정책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함안이 아닌 옆동네 의령에서 정미소를 지을 계획이다.
그럼 의령에서 정책자금을 받아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려려면 이사부터 해야했다.
당장 다섯 가족이 이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집이 구해질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만도 없었다.
우리는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의령에 아는 지인이 있는지 수소문을 해보았다.
그러다, 한명을 소개받게 되었다.
의령에서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시는 분을 소개 받았다. 그분은 집이 빌때가 많으니 이사할 집을 구할때까지 남편이 와서 지내도 된다고했다.
우리는 좀더 구체적으로 정미소 지을 계획을 했다.
최대 3억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3억원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보았다.
다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은 우리는 계장님과 다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계장님은 생각이 바뀌었냐고 물으셨고, 우리는 정미소를 꼭 지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계장님은 다시 한번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도 우리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거라고 말했다.
비슷한 대화가 여러번 오고 가는 동안 우리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계장님은 “알겠습니다.” 라고 대화를 마치며 우리를 처음 만난 담당자에게 안내해 주었다.
담당자는 아주 자세하게 우리가 귀농귀촌을정책자금을 받으려면 준비해야 하는 서류와 적성해야하는 사업계획서등을 설명해 주었다.
최대 3억이지만 3억이 다 대출되기는 어려우니 금액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기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서류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옅은 안도감을 느끼면서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그 시작은 서류와의 싸움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