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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Sep 23. 2019

돌아다니는 개는 위험하다(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1

2018년 8월 7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저녁, 나는 그 개를 처음 봤다. 일을 마치고 짝꿍을 만나러 간 혁신파크, 상상청 건물 앞에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한 달 전, ‘이 근처에서 하얀 개를 봤다’고 했던 짝꿍의 말이 떠올랐다. ‘그 개가 이 개인가?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여기에 계속 있었던 건가?’ 처음 짝꿍에게 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인이 근처에 있었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터라 그 개를 처음 본 순간 무척 놀랐다.  


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를 힐끔힐끔 보며 건물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나도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고, 또 멀어지지도 않으며 개를 지켜봤다. 그러다가 문득 길에서 사는 동물들에게 깨끗한 물이 가장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얼른 분리수거통에서 플라스틱 덮개 같은 것을 찾아 깨끗이 씻고 물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것을 바닥 한쪽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개는 조금 경계를 하는 듯했지만 곧바로 다가와 물을 할짝할짝 마시고는 계단을 뛰어올라 건물 뒤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다음에 그 개를 만나면 줄 생각으로 습식 캔사료를 사서 가지고 다녔다. 며칠 후 비슷한 시간, 같은 곳에서 그 개를 다시 만났다. 나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캔사료의 뚜껑을 따서 바닥에 내려놓고 물러났다. 개는 경계하는 낌새도 없이 냄새를 맡고 다가와 한두 입 맛을 보고는 이내 캔을 통째로 물고 건물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다. 꾸준히 먹을 것을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료 한 봉지를 샀다. 그런데 사료를 주자니 고민이 생겼다. 그 개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사료를 줄 곳을 정하기 어려웠다. 주변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보니 건물 한 쪽 구석에 놓여 있는 밥그릇과 물그릇이 보였다. 개에게 밥을 주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수시로 그곳에 가서 밥그릇이 비어 있으면 사료를 채워 놓고, 물이 더러우면 갈아주었다.


‘배가 고프면 여기에 와서 밥을 먹겠지. 목이 마르면 여기에 와서 물을 마시겠지.’ 사료와 물을 놓고 떠날 때면 그래도 굶주리지는 않을 거라고 안심했고, 가득 채워져 있는 밥그릇을 볼 때면 나 말고도 이 개를 돌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하루 또 하루,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신경이 쓰였고 걱정이 늘어 갔다. ‘그 개는 정말 주인이 없는 걸까? 밤에는 어디에서 자는 걸까? 이제 날씨가 추워질 텐데 괜찮을까?’


밥과 물이 있으니 그래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


혁구는 사람과 하는 산책이, 나는 개와 하는 산책이 어색했던 시절.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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