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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Sep 30. 2019

돌아다니는 개는 위험하다(2)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2

개는 혁신파크의 이곳저곳을 제 집처럼 누볐다. 발길 가는 대로 공터와 풀숲과 건물 주변을 돌아다녔고, 통행이 제한된 공사장까지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여름에는 한낮의 땡볕을 피해 상상청 건물의 그늘 아래에서, 가을에는 한낮의 햇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야외계단에서 낮잠을 즐겼다. 주로 나타나는 곳은 상상청 앞마당이었는데 그곳에서 큰 행사가 있던 어느 날에는 혁신파크 밖으로 나와서 차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개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차도를 건너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을 혁신파크에서 지내니 그 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특히 혁신파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동네 사람들은 다 그 개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책을 하다가 그 개를 만나면 간식을 주었고, 그것을 얻어 먹는 것이 그 개의 주요 일과였다. 그 개는 불리는 이름도 많았다. 흰둥이, 누렁이, 혁신이, 파댕이(파크 댕댕이), 상상이, 뒷산이, 초복이(초복날이면 안 보일 거라는 뜻), ...


그리고 그 많은 이름만큼이나 소문도 다양했다. 북한산에서 먹을 것이 없어 내려온 개라는 등, 원래 네 마리가 함께 다녔는데 지금은 그 개 한 마리만 있다는 등, 주인이 풀어놓고 키우는 개인데 가끔씩만 와서 돌본다는 등, 하도 도망을 다녀서 주인이 포기했다는 등... 개에 대한 민원과 신고가 수차례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작지 않은 개가 목줄 없이 돌아다니니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개는 혁신파크뿐 아니라 근처 아파트 놀이터까지 돌아다녀서 아파트 주민들의 눈에도 많이 띄었던 모양이다. 특히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짖는 바람에 위협을 느껴 부모가 신고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밥과 물을 주고 돌아서며 안도했고 간식까지 얻어 먹는 걸 보고 잘 살아갈 줄 알았지만, 여러 소문을 들을수록 그렇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조금씩 밀려 왔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그 개에게, 또 누구에게 어떤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개를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개에 대해서 잘 아는 누가 나서 주지 않을까?’ 짝꿍과 내가 그 개에 대해 걱정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 고민 끝에 10월 10일, ‘혁신견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하고, 혁신파크 기관과 입주단체 대표가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지했다. 관심있는 열세 명이 채팅방에 들어왔고 대화를 시작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강아지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이 방을 만든 건 일단 관심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지 알고 싶었고, 그런 분들끼리 서로 알고 있어야 강아지에 대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밥을 주는 것부터 추워지는 날씨까지 다들 저마다 애정이 있고 걱정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방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크로 산책 나오시면서 파댕이 살펴봐 주시는 주민분들에 의하면,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파댕이의 활동반경이 너무 넓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종종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이 된다고 하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목줄이나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아요.”


“바자회나 후원회 같은 행사를 해서 기금을 모으고 메이커하시는 분들이 집을 지어주시면 어떨까요?”


“유기견 딱지는 떼도록 최소한 목걸이를 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민원과 안전을 위해 묶어두었다가 산책, 조깅으로 파크 한 바퀴 씩 돌면 좋을 거 같아요.”



짧게 서로를 확인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눈 사람들은 17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만나서 논의하기로 했다.




모임 전날인 16일 출근길에 지인(개를 잘 아는 분으로 내가 혁신파크 개에 대해 상담을 했다)으로부터 뉴스기사 링크를 받았다.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주변에서 주민들의 돌봄으로 살던 개 ‘상암이’가 포획되는 과정에서 마취총에 의한 쇼크로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구조할 계획과 함께 입양처까지 마련해 둔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암이 기사를 보니 어제 네가 말한 그 강아지가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갑자기. 거의 네가 말한 애랑 상황이 비슷해. 사람은 잘 안 따르지만 강아지는 엄청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키웠던 아이야. 한 번 기사 내용 보고 국민청원도 좀 하고. 좀 더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자.”



세상을 떠난 상암이와 주민들이 느꼈을 슬픔과 절망이 전해져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개에게 밥과 물을 주며 ‘먹을 것이 있으니 그래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라고 생각한 건 큰 착각이었다. 도시를 떠도는 개는 먹을 것만으로 절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 개도 상암이처럼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날 수 있겠구나’ 싶어 심란하다가도 ‘최근에 이런 논란이 있었으니 오히려 별일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을 덜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3시, 그 연락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혁신파크 연결동 옥상에서 해를 쬐는 혁구. ⓒ bichum



참고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864489.html (한겨레 애니멀피플 기사)

https://blog.naver.com/animalkawa/221373202984 (동물자유연대 블로그)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92398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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