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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Apr 07. 2020

동물들의 배웅

닫는말

나는 봉준호를 만난 적이 없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유명한 사람이기에 그를 알고 있을 뿐, 당연히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하는 게 하나 있다. 봉준호는 동물을 사랑한다. 만약 그가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영화에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동물을 넣었을 리 없다. 게다가 앞선 글에서 다뤘듯 봉준호는 영화에 등장시킨 동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있지 않은가? 영화 외적으로도 나의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들은 많다. 그는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고 있고,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다른 손에는 동물보호를 외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자신의 영화에서, 봉준호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어떤 계기를 통해 한 장소에 있게 하고, 그때 발생하는 사건 전후로 달라지는 인물들의 삶을 솔직하게 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봉준호는 사건의 현장에 있는 인물들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마음 속에 내재되어 쌓여왔던 인물들의 감정은 사건의 현장에서 터져버리며 특정 행동으로 나타난다. 봉준호는 사건과 감정이 만나서 터져버리는 순간의 에너지로 영화의 모든 것을 흔들고 뒤집고 섞는다. 그 지점은 기점이 되어 반전을 맞기도 하고, 종점이 되어 결말을 맺기도 한다. 감독은 폭발하는 순간의 에너지를 온전히 감당하는 주요 인물들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폭발의 진동이 영향을 미치는 주변과 환경까지 보여 준다.


동물을 사랑하는 봉준호의 연출이 빛나는 장면이 있다. <기생충>에서 비가 많이 내려 갑자기 박 사장네 가족들이 돌아오자 기택, 기우, 기정은 저택에서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세 사람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홀딱 젖은 채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정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부잣집에서 주인 행세를 하다가 폭우로 인해 반지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기택네 가족의 초라한 현실과 가난함을 더 궁지로 몰아붙이는 물난리라는 설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씬의 마지막 컷, 부감숏으로 촬영한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어머니와 아이가 판자 위에 앉아 있고 아버지가 판자를 밀며 가고 있는데, 동물 하나가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헤엄을 쳐서 지나간다. 몸집이 어느 정도 큰 걸로 봐서 아마 개일 것이다. 누군가 키우던 아니면 동네를 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도 듣도 보고 못한 물난리에 자신의 살길을 찾는 모습이다. 만약 봉준호가 평소에 동물에 대해서, 그들의 생명과 권리와 인간 중심 사회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굳이 없어도 되는 개를 넣지 않았을 것이다.


봉준호는 어느 영화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배우들을 최대한 편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살아서 날뛰는 물고기처럼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 말처럼 봉준호는 때로 동물들의 행동, 그들의 모습에서 기운을 받고 영감을 얻는 것 같다. 살아있는 물고기에서 날 것의 활력을, 개들에게서 다양한 감정 표현과 교감을, ... 그리고 고기가 된 동물들에게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과 생존의 에너지를... 나는 [봉준호의 동물들]이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통해 개와 물고기를 중심으로 봉준호의 영화에서 그가 동물들을 영화적 요소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봤다. 다음으로 밥상에 오른 동물들(고기)에게서 보이는 연출에 대해서 알아봤고, 마지막으로 우리사회에서 동물이 살아가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에 대해 봉준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봤다. 봉준호는 분명히 동물을 사랑한다. 살아있는 생명이든 죽어서 고기가 됐든 그의 영화에서 동물에 대한 애정과 존경과 감사함이 묻어난다. 봉준호는 동물들의 몸짓과 목소리까지 들여다 보고 들을 줄 아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고,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동물들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 주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동물을 보면서 귀엽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고, 만져 보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없다. (세상일을 알 수 없듯이, 어쩌다 보니 동물을 키워보기도 했고, 돌본 적도 있기는 하다.) 나는 솔직히 인간이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아보려고 할수록 더 복잡해지기만 하고, 그럴수록 내가 정말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분명해졌다. 그러나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나는 여전히 동물을 보며 귀엽다고 느끼지 않고 만지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동물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나는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지만 동물들이 나름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평생 채소만 먹을 자신은 없지만 고기를 덜 먹으며 양을 줄여가는 노력이 내 몸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과 자연을 살리는 가장 좋은 개인적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듯이 동물을 향한 사랑의 모양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나는 봉준호를 좋아한다. 이번에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의 영화는 몇 번을 다시 돌려봐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찾아야 하는데 영화에 빠져서 지나쳐 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봉준호가 더 좋아졌다. 그가 얼마나 동물을 사랑하는지 알게 됐고, 그의 사랑이 나의 그것과 조금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말하면, 그렇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러면 ‘동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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