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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Feb 03. 2020

전염병 속에 갇혀 버린 어느 날

병을 생각하다가

 감금 아닌 감금이 시작됐다. 아프지 않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방콕을 선택했다. 전염병 때문에 하루 종일 기사가 쏟아지고 거리는 텅 비고 사람들은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사건이 나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노래다. 조선시대 역병이 도는 것처럼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절 이런 느낌이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큰 일이다.


 처음엔 공항에 가서 환자를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는 이상 걸리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환자가 있었다니 신기한 기분이다. 조금만 밑으로 조금만 더 활동적으로 다녔다면 만날 수 있었겠구나. 생각보다 환자가 쉽게 돌아다니는구나. 같은 공간에 있었을 사람들이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들에게 옮았다면 이젠 옛날 옛날에 역병이 돌던 시절처럼 마을이 쑥대밭이 되겠구나. 그런저런 생각에 미치다 기사 댓글 중에 감기로 죽는 전 세계의 인구가 코로나 사망자 수보다 많다는 댓글이 있었다. 논점이 좀 다른 댓글이지만 그 댓글을 읽고 내게 제일 무서운 병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 전 회춘이란 웹툰을 보았다. 나이 들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젊어진다. 청춘을 다시 겪고 아이가 되어 죽는다. 가만 보다 치매가 떠올랐다.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고 주변에 계속 그 순간의 자신이 되어 묻고 그때의 모습으로 지낸다. 그러다 점점 아이처럼 자제력도 잃고 하고 싶은데로 행동하여 주변을 힘들게 한다. 아이가 자신의 고집을 대화로 내려놓지 않고 마냥 떼쓸 때처럼.


 모습이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다 보니 그 상황은 더욱 힘겹다. 그동안 주변에 쌓아온 인생의 영향도 받게 된다. 말을 험하게 했던지, 행동을 험하게 했던지 이젠 상황이 바뀌어 상대방이 참아주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 동안 쌓아온 덕을 시험받는 것 같다. 치매는 치료방법이 없어 상태를 지연시킬 뿐, 점점 더 나를 잃게 된다. 정신을 유지한다는 건 바람에 몹시 흔들릴진 몰라도 뿌리는 튼튼한 나무다.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잃는다는 건 뿌리가 점점 녹아버리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회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아는 병 중에 치매가 젤 무섭다.


 새해 인사를 갔다가 이모 할머님이 치매로 나에게 계속 누구 딸인지, 아이들에게도 누구네 아들인지 계속 물었다.  누구의 딸이고 제 아들이에요. 닮았네. 또 조금 있다 누구의 딸이냐 아들이냐.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은 나는 할머니 기억 속에 남겨지지 못하겠지 싶다. 다음에 또 뵈면 같은 질문을 하시겠지.


 방에 갇혀 꼼짝도 못 하게 되니 온갖 생각만 늘어난다. 현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나를 잃지 않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역사상 역병은 흐르고 지나갔으니 이 역시 지나가지 않을까. 걱정 많은 친구가 염려된다. 조금 내려놓기를.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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