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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Feb 18. 2020

내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부족한 나를 글로 채웠다.

글을 쓴다는 사실 속에는 내게 부족해지기 시작하는 개인적 확신의 증거가 담겨 있다.

알베르 카뮈

 한참을 읽었다. 웹서핑을 하다 발견한 페이지에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설명하거나 변명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라고 이 글을 해석했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쭙잖은 자존심이 발동했나 보다. 그러다 자꾸 되새기게 되고 생각이 나서 다시 검색을 해서 퍼왔다. 자만심을 내려놓기 위해서.


 내 의견을 말로 전달하는데 서툴고 소심했다. 아빠 앞에서 심했다. 혼날 때, 이유를 말하라고 다그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혼나는 상황에 부모님께 말대답을 안 하는 게 맞는 걸 지도 모르지만, 난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말하지 못했다. 그때의 느낌은 내가 참 못난 느낌이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못할까. 말하고 싶다.


 계속 억누르다 성인이 된 후 난 편지를 써서 전했다. 내 입이 못하는 일을 손에게 시켰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답장 여부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고 내게 또렷이 남은 기억이라곤 내 억울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했던 것뿐. 그렇게 한번 저지르고 나니 입이 한결 편해졌다. 억눌러 참지 않고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배짱이 커진 걸 수도 있겠지만, 내 행동의 변명을 글로 전달했다.


 쓸 때는 호기롭게 술술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쌓인 게 많았으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래도 막상 부모님 앞에 대면하고 전달하려니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두 눈 감고 전달하고 도망갔다. 그 뒤의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전달할 때 내 의식은 그 아찔함에 기절했나 보다. 그렇게 난 부족한 말을 글로 써 채웠다.


 이제 벗어났나 싶었는데 애들이 왜 라며 날 자꾸 수렁에 넣으려 든다. 왜 이건 이렇고 저건 왜 안되고. 이번 논점은 왜 추운 날 길에서 붕어빵은 먹어도 되는데 닭꼬치는 먹으면 안 되는 이유는? "왜?" 끝도 없는 투덜거림에 지치면 만만한 애들에겐 화를 내게 된다. 엄마한테 말대답이야? 한번 안되면 안 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고, 엄마가 얘기하면 "네"라고 할 때가 있어야지 꼬박꼬박 대꾸하냐고. 적다 보니 전형적인 꼰대다.


내가 기죽었던 게 싫어서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봤는데 이건 이거대로 힘든 것 같다. 상황에 대해 조리 있게 얘기해 말싸움에 이겨야 될 텐데 아이들을 말싸움으로 이기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적어 전달하고 싶다. 엄마는 생각을 천천히 해서 말이  천천히 나오니깐 너희들도 천천히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고. 이제 한글 공부를 하는데... 몇 년은 더 고생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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