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는 지금,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by 신민철

몇 년 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샀어. 큰 기대 안 하고 고른 책이었는데, 이번 수상작이 너무 좋더라. 암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을 딸의 시선에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소설이었는데, 아버지 세대로부터 나의 세대까지 이어져 오는 혁명의 연대가 인상 깊었어.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서,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서술하는데도 그 감정이 전해져 오는 거야. 멋있더라고. 솔직히 질투가 많이 났고. 나도 그런 울림을 주는 글이 쓰고 싶더라.


그리고 수상작 뒷장에는 작가의 자서전이 실렸는데, 네게도 말해주고 싶었어. 이런 얘기야. 우리가 그냥 살아지듯이, 소설이 그냥 써지는 건 아니라고. 어느 순간 내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면 소설이 되는 때가 있다고. 그 사람은 그 순간을 몹시 사랑하고 그 순간을 위해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 글을 읽고서도 활활 타오르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운 마음이 더 앞섰어. 나는 글쓰기를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겠더라고.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마음이 더 앞서야 하는 감정인데. 나는 멀리서 바라보면서 감탄만 하거나 부러워하는 감정이 더 크더라고. 때로는 남들이 쓴 글을 보면서 속으로 비아냥거리거나, 그 사람의 노력을 그저 재능 차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했지. 어찌 보면 애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이 동경이나 단순한 질투심에 더 가까운 듯해.


물론 나도 글쓰기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때가 있어. 이제 막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그냥, 쓰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거든. 솔직히 잘 쓴다는 말 몇 마디에 으쓱하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써보니 알겠더라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자유롭게 쏟아내는 사람이 있고, 자꾸만 멈칫거리면서 시동을 꺼트려먹는 나 같은 부류가 있다는 걸. 당장의 글쓰기 실력과는 별개로, 나는 거기에서 안 된다고 지레 단정 지었던 거야. 그 뒤로부터 어차피 출판 시장은 불황이라느니, 어차피 취미로 끝날 게 분명하다느니. 온갖 핑계만 대면서 도망치느라, 정말 시작하기 좋은 때를 놓치고 만 거지.


생각해 보면 사랑도 그런 것 같아. 너무 좋아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 있잖아. 열렬히 사랑하거나 간절히 원할수록, 멈춰야 할 때는 더 아픈 순간이 오는 것처럼 말이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그런 감정 알아? 결국 포기하거나 모든 게 끝나고 나서 더 아플까 봐, 내 안의 방어막을 이중 삼중으로 덮는 거. 나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사랑과 동경이 섞인 마음.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할 때가 참 많다? 꼬일 대로 꼬여서 자꾸만 나의 마음을 의심하고, 뭐라도 탓해야만 할 것 같은 뾰족함에 상처 입는 거지.


어쩌면 나에게 글쓰기가 그런 감정이었는지 몰라. 멀리서 보면 너무 빛나고 아름다운데, 막상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초라해지고 말거든. 다른 사람의 글과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 그래서 더 먼 것처럼 느껴져서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야. 솔직히 말하면 이 편지를 쓰면서도 자꾸만 내 글의 안 좋은 점을 찾고 있어. 이 편지를 받는 네가 별로라고 생각할까 봐, 내 얘기에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고 느낄까 봐. 네 생각은 어때? 너는 지금 사랑하고 있어? 아니면 머뭇거리고 있어?

keyword
이전 01화잘 살고 싶어서 두려운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