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가면서, 누가 나이를 물어볼 때마다 출생연도를 말하게 되더라. 내가 빠른 년생이라 한 살 줄이고 싶어서는 아니고(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기에는 좀 찔리지만), 그냥 서른을 넘어서부터는 나이를 잘 안 세. 그래서 갑자기 질문을 받게 되면 내가 몇 살인지 기억이 잘 안 난 적도 많아.
나이에 무감각해진 데는 사실 부담감도 한몫하는 듯해. 다른 사람들이 내 나이에 매기는 기댓값들 있잖아. 그 쯤에는 연봉이 얼마는 되어야 하고, 회사에서 직급은 어느 정도 달아야 하고, 결혼에 대해서도 대강은 계획이 되어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 있잖아. 타인을 평가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잣대에 오르내리는 게 두렵거든. 어쩌면 내가 표준 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실에 예민해져서, 무의식적으로 나이에 무신경한 연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내 상품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된 것 같아 좀 슬프고, 때론 화가 나. 신선제품에 재라벨링 되듯이, 일률적인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된다는 사실이 말이야. 마치 내가 회코너에 있는 생선회가 된 것만 같아. 빨리 팔아치워야 해서 할인 세일 하는 모둠회 같은 거 있잖아. 그래서 요즘은 어떤 회사에 이직하려고 해도 주눅이 들고, 뭘 새로 배워보려고 해도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곤 해.
학원에서도 다른 수강생에 비해 나이가 좀 많은 편이라거나, 취업 목적으로 교육하는 거라면서 은근한 거부감을 내비치더라고. 그럴 거면 나이 제한을 걸던지. 재미로 배우러 온 사람 취급을 하잖아. 나도 시간 헛되이 쓰고 싶지 않고, 시간이 곧 돈이라는 걸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인데 말이야.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간절한 마음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철없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그 직원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취업률에 따른 학원의 평가 기준도 있을 테고.
그런데 취업이 아닌 배움까지도, 나이를 우선 기준으로 가능성을 판단하는 게 맞아? 열심히 사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볼 틈 없었던 사람들도 있잖아. 그리고 우리는 많이 넘어져봤기에 더 악착같이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 그러니 너도 좀 자신감을 가져. 나에게도 하는 말이야. 네 앞에 있는 많은 길을 두고, 고작 지금까지 살아온 길만 뒤돌아보지는 마. 앞으로 잘 살아가면 돼.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지금 한 걸음 내딛으려고 한다는 거야. 그 한 걸음 앞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거고.
하지만 남들보다 좀 느려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네 속도대로 잘 살아가면 된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뻔하고 재수 없게 들리거든. 우리 다들 잘 살고 싶은 건 같잖아. 느리게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도 내 속도가 늦고 답답하다는 걸 잘 알아. 그래서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앞질러나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도 고작 나이 때문에 앞으로의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나이가 어때서. 넌 네 생각보다 더 잘 달릴 수 있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