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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무기력한 나에게

by 신민철

나 오늘 별생각 없이 누워있었어. 그러다가 일어나서 몇 시간을 게임만 하고. 최근에는 거의 하지도 않던 게임을 눈이 침침할 때까지 잡고 있었던 거야. 너도 그런 날 있지 않아?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잠이 은근히 쏟아지고, 괜히 잔소리 한마디만 들어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뾰족이 세우는 날.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내버려 뒀으면 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외로움으로 가득 차서 투정 부리고 싶은 날. 런 날이면 누가 날 끄집어내 줬으면 하면서도,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기 싫은 거야.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자꾸만 미루게 되고, 주말이 되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취미 활동도 다 귀찮아져 버리는 거지. 이런 날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하루가 너무 아쉽고 후회되잖아? 그래서 푹 쉬어놓고도 기분이 좋지 않고. 일요일이 가고 나면 다시 5일을 버텨야 한다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


근데 나만 그런 건 아니더라. 다시 월요일이 와서 친구들과 몇 마디 안부를 나누다 보면, 그 애들도 침대에 파묻혀서 하루를 보냈더라고. 지나버린 주말을 어느 정도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다시 평일을 버텨야 하는 압박감에 한숨을 내쉬면서. 근데 그저 누워서 하루를 보냈다는 말이 내게는 은근히 위로가 되는 듯했어. 나만 이렇게 무너져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용히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거든. 우리는 다들 각자의 무기력증을 버티고 있던 거야. 생각해 보면, 이런 날을 어떻게든 지나온 것만으로도 잘한 게 아닐까 싶어. 꼭 무언가를 해내야 의미 있는 하루가 되는 건 아니거든. 가끔은 멈춰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네게도 해주고 싶었고,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것 같아.


나는 네가 잘 쉬었으면 좋겠어. 하루이틀 쉰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에게 자꾸 가혹해지지 않았으면 하거든. 어찌 보면 우리들은 성공해야 한다고, 당장 바뀌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이런 날은 그냥 '아픈 날'이라 생각하면 안 될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 아니라, 마음을 잘 회복했다고 생각해 보는 거야. 물론 이런 날이 오래 이어지면 안 되니까, 오늘은 잘 쉬고 내일부터는 무기력한 마음의 흐름을 잘 끊어내야겠지. 오늘처럼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운 너니까, 내일부터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거야. 대신 푹 쉬면서 내일 뭘 할지를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무기력한 날을 보내고 나면, 나는 다음날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해. 맛있는 음료 한 잔을 시켜두고 가볍게 책을 읽기도 하고, 평소에 쓰려던 글을 끄적여보기도 하거든. 꼭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밖에 나와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 그런데 이건 내 마음일 뿐이고, 네가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는 생각지 않아. 사실 너의 무기력과 우울, 상처가 어느 정도의 깊이일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는 거잖아.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다르니까.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를 적당히 버티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무 일 없는 듯이 가면을 쓰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들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하루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뭘 더 한다는 것이 충분히 부담될 수도 있다고 봐.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어. 지금 네가 느끼는 무기력함이, 어쩌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아직 네가 가고 싶은 방향을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이야. 길을 잃었을 때는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쉽지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하잖아. 그래서 자주 방향을 잃고 주저앉는 게 사람이고. 오늘은 네가 그렇게 헤매고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에는 우리가 다시 일어나서 나아갈 거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잖아? 그런 뜻에서 오늘의 하루는 충분히 의미 있어. 같이 천천히 고민해 보자. 아직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길이 많다는 사실이, 지금의 너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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