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잘 꾸는 편은 아니야. 그래서 가끔 꾸는 꿈에는 괜히 더 많은 의미를 두곤 해. 운세나 사주보다도 더. 인상 깊었던 꿈은 메모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굳이 쓰지 않아도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어. 오늘은 그중 하나를 네게 들려주고 싶어.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나는 건물 뒤편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는 꿈이야. 별다른 서사가 있지 않은데도, 나는 이 장면이 잊히지가 않더라고. 외로우면서도,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 틈에 끼고 싶지 않은 마음. 나라는 사람을 참 잘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거리를 두면서도, 혼자 남겨지는 건 무서운 사람. 어떤 날은 관계 속에서도 쓸쓸하고, 또 어떤 날은 혼자 있을 때 편안해지는 사람. 내 안의 감정을 먼저 꺼내놓고, 타인의 무심함 앞에서 조용히 마음을 닫는 사람. 사람들에 지치면서도 다시 그리워하는 사람. 그게 나라는 사람의 기질이 아닐까 싶어.
근데 원래부터 이런 성격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아마 상상이 잘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땐 많이 까불고 관심받고 싶은 애였어. 학원에서 개그맨 흉내도 많이 내고, 괜히 조용한 애들한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잘 노는 형들이 말 한마디 걸어주면 괜히 으쓱해지는 애였지. 하지만 그때를 되돌아보면 막상 마음을 열고 만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는 애가 되고 싶었고, 쉬는 시간에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모여드는 그런 애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상에 엎드려서 종일 자는 애가 되어버렸어. 학교에 자러 나오는 애들 있잖아.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게 다 싫증이 나있었던 것 같아. 괜히 주변에 짜증 내기나 하고. 얼른 집에 가서 게임 속에 빠져드는 것만이 해방의 시간이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기 많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아. 책상에 엎드려 자면서도 누가 먼저 말 걸어주지 않을까 기대했고, 몇몇 가까운 친구들이 다른 애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내심 서운했지. 아마 그게 나를 차츰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대학에서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진심으로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어. 이제 와서는 이 년 가까이 룸메이트를 하던 친구와도 연락하지 않게 된 걸 보면 말이야. 근데 늘 마음을 닫아두었던 건 나였던 것 같아. 주변에 사람들이 있든, 없든. 내 성향에 맞는 친구만 곁에 두려는 취사선택이, 작은 틀어짐에도 관계를 밀어내는 옹졸함이 스스로를 외롭게 했던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멀어질 사람이었다며 위안 삼고,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먼저 닫아버렸지.
이러한 이기적인 맺고 끊음이, 어느새 나를 더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더라. 난 나를 스스로 어려운 사람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그냥 모자란 사람이었던 것 같아.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먼저 선을 그어버린 적이 더 많았거든. 하지만 고맙게도 내가 그어놓은 선 너머로 성큼 발을 내딛고, 내 손을 먼저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어. 내가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멈춰 세워주고, 마음의 벽을 세울 때마다 그 벽을 가볍게 허물어버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다정함에 붙들려서, 다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네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니까, 내가 쉽게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 외로움은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기도 하고, 또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내가 나만의 외로운 기질을 키워왔듯이, 너도 너만의 어두운 부분을 차곡차곡 쌓아왔을 테니까. 몇 마디 말로 네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말하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가끔은 말이야. 그저 온기를 나누어 받는 것만으로도, 다시 잘 살아볼 수 있을 거란 마음이 들기도 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스르르 풀어지기도 하고. 힘내라거나 밥은 먹었냐는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에, 다시 또 살아보자는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의 외로웠던 기억들을 네게 주고 싶었던 거야. 어느 날 외롭다는 생각이 발작처럼 네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해도, 다정함이 곁에 남아있다면 너는 분명 잘 회복할 거라 믿거든. 그러니까 네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이 편지를 잘 가지고 있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