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를 계획하는 건 되게 좋아하는데, 막상 시작하면 며칠 못 가서 그만둔 적이 너무 많다? 헬스장에 가서 등록비만 내고 안 나오는 사람들 있잖아. 헬스장의 기부천사. 처음에는 혹독하게 살을 뺄 것처럼 다짐하고 갔다가, 일주일만 지나면 어느새 마음이 말랑하게 변해버리는 회원들 말이야. 나중에는 언제 기간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재등록하라는 문자를 받고서 캐비닛에 넣어둔 운동화 찾으러 간 적이 몇 번이나 있어. 그것뿐이게?
퇴근하고 글을 써보겠다고 모임에 가입했다가 어느새 조용히 그만두거나, 블로그를 관리해 보겠다고 시작했다가 유령 블로그를 만들어버리거나, 경제 공부를 좀 해본다면서 유튜브를 켰다가 이내 재밌는 영상을 찾아다니는 의지박약. 그게 바로 나야. 하지만 어쩌겠어. 퇴근하고 나면 몸이 지치고 마음이 병드는 걸. 솔직히 무언가 하다 보면 어느새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면 손이 멈추고 말더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서. 원래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려고 했던 건데, 어느새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곤 하거든. 이 일을 얼마나 반복해야 내 삶이 변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그저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또 허튼 일에 시간을 쏟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에 하던 일을 한동안 놓곤 해.
특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마음이 더 들잖아. 세상에는 이미 멋진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서 눈부시게 빛나는 것들, 광기 수준의 집요함으로 만들어낸 작품들. 그런 걸 보다 보면 내가 하는 건 너무 평범하고, 심지어 어디서 자꾸 본 것만 같고, 너무나 허술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나도 자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걸까?'라는 생각을 해.
그런데도 다시 글을 쓰는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잘 포기가 되지 않아서야. 이제 안 써야겠다고 내팽개쳤다가도, 어떤 때는 안 쓰면 답답해서 몸 안의 무언가가 터져버릴 거 같고, 또 어떤 때는 홀린 듯이 다시 시작하게 될 때도 있고.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돈이 되냐, 안 되냐. 남들이 인정하냐, 안 하냐. 관심을 갖냐, 안 갖냐. 이런 거 사실 다 필요 없고, 의미는 내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요즘은 많이 뻔뻔해졌어. 좀 거칠고 투박하면 뭐 어때. 이게 내 스타일이라고 우기면 되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이 없으면 뭐 어때. 남들 다 겪는 얘기 쓰면 안 되나. 대신 내 진심을 듬뿍 담아서 수다 한번 떨어보면 어떨까. 그게 이 편지를 쓰게 된 계기거든.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몇 편 안 썼는데도 내가 써야 할 방향이 대강은 보이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아님 말고.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야. 아직은 불완전한 시도들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너만의 감정이나 색깔들이 묻어 나오거든. 습작들 속에도 나만의 말투, 리듬, 시선, 작은 습관들이 남는 법이잖아. 그게 앞으로 너만의 강점이 될 거고. 아직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있어. 때로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가장 잘 알아야 할 내가 중요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때가 있더라고. 분명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네 무수한 가능성을 앞으로 이겨내야 할 실패들과 저울질하지 마. 그저 앞만 보고 가면 되는 거야. 그 과정이 험난하고 쓸쓸해도, 너는 불확실의 터널을 잘 뚫고 나올 수 있을 거야. 내가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