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풍성하고 따스한, 미국의 첫가을을 맞이하길 바라며
미국의 동부는 한국보다
유난히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여름에서 가을로 스치듯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오 년간 살던 중부도, 지금의 보스턴 동부도, 예상보다 빨리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온 듯싶지만, 또 겨울이 순식간에 매서운 속도로 다가온다.
(유난히 길고 긴 겨울!)
처음 미국에서 가을을 맞이했을 때를 떠올리면, 한국과는 또 다른 가을 단풍뷰에 설렘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내 독한 감기로 고생하며 온도, 습도 차이와 건조한 히터의 난방 방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올해는 보스턴에서의 두 번째 가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환절기의 홍역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언니네 가족이 같은 동부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언니 가족도 처음으로 이곳의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우려되는 마음에서인지, 가을이 깊어지면서 조카들에 대한 마음이 더 커져간다.
첫째 조카는 열네 살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고 수업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잘 해내는 모습이 기특하다. 그 속에 깊은 외로움이 있을까 걱정되지만, 잘 견뎌내고 있는 조카가 참 대견하다. 이번 겨울 아이에게 더 춥게 느껴지지 않길 바라며, 조카가 좋아하는 스누피 그림이 들어간 스웻셔츠를 고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첫째와는 달리, 10살짜리 둘째 조카는 조금 더 단단하고 씩씩한 성격이다. 어리지만 강단이 있어 미국 생활에도 금세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둘째 조카가 좋아하는 포차코 캐릭터 자수가 들어간 스웻셔츠를 고르며, 아이가 더 많이 호탕하게 웃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한 달 전, 언니네에서 5박 6일을 함께 보내며 조카들과 진한 시간을 가졌지만, 돌아서고 나니 아쉬움만 남는다. 자주 만난다고 해서 그리움이 덜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깊어지는 듯하다. 조카들이 한국에 지낼 땐 지금보다 더 자주 보지 못했기에, 몇 달에 한 번씩 만나게 되어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과정 없이 보게 되는 것이 늘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선 첫 조카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거의 매일 같이 돌보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특별한 깊은 유대감이 있다. 어느 날 첫째 조카에게 장난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모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지?” 그러면 언제나 조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히 “저요!”라고 대답한다. 그 단단한 대답이 내겐 늘 저릿하다. 녀석은 이미 이모의 사랑을 다 느끼고 있구나 싶다.
얼마 전 언니가 딸 조카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함께 5박 6일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딸 조카가 잠들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모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미국에서 더 행복해 보여요.” 그리고 나도 어른이 되면 이모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고,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이모일뿐 아니라, 좋은 본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사랑스러운 조카들덕분에, 나 역시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갈 수 있으니 고맙다.
오늘 아이들에게 보낸 사랑스런 스웻셔츠와
이모의 사랑이 부디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져,
이 계절- 부디 남은 미국생활도 따뜻하게 보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