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5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월의 도쿄 업데이트

2024.5.24 - 5.26

by 비 클레어 Dec 02. 2024

[ 신주쿠의 밤 ]

  금요일 퇴근 후 오른 비행기는 새벽녘 하네다에 내렸다. 혹시나 끊겼을까 두근댔던 시내 방향의 공항 리무진은 아직 기다리고 있었다. 만석의 버스는 30분 만에 신주쿠 터미널로 인파를 쏟아냈고 먼저 도착한 그를 만났다. 대규모 공사로 온통 펜스에 둘러싸인 역사 주변을 빠져나와, 불야성 같은 신주쿠 거리로 접어드니 처음 도쿄에 왔던 그날이 떠올랐다. 십 년 전, 긴 한 주를 보낸 어느 금요일 밤, 충동적인 티켓팅으로 홀로 도착한 곳은 이글거리는 7월의 신주쿠였다. 도쿄의 여름이 얼마나 녹진한 것인지 모르고 용감하게 붓가케 가락국수와 규카츠 맛집을 찾아다니던 그때를 추억하며 신주쿠의 깊은 밤 속으로 들어갔다. 고질라 모형으로 유명한 호텔을 찾아가는 길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바닥에 둘러앉은 짙은 화장의 청춘들로 붐볐다. 그들의 밤을 어렴풋이 짐작해 보며 편의점에서 산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 아자부다이힐즈, 도쿄 상류의 삶 ]

 화창한 낮에 다시 만난 신주쿠는 이번엔 어떤 제품을 사기 위한 사람들의 놀라운 행렬로 가득했다. 거대한 질서 정연 속을 헤치고 이치란 라멘과 맥주로 늦은 아침을 열었다. 짧은 여정에서 업데이트하고 싶었던 도쿄의 소식은 2가지였다. 2023년 11월 개장한 모리빌딩 개발의 아자부다이힐즈와 2024년 4월 리뉴얼 오픈한 시부야 츠타야. 그중에서도 헤더윅 스튜디오 설계로 물결을 형상화한 듯한 독특한 외관의 아자부다이힐즈가 단연 궁금했다. 일주일 전 예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세계적 명성의 디지털 아트 전시 '팀랩 보더리스'는 현장 예매 자체가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HARBS의 과일 크레페 케이크와 차를 마시고, 마켓에서 홋카이도 버터와 옆집 베이커리의 바게트를 사서 연못이 있는 공원을 찾아 지상으로 나왔다. 버터를 듬뿍 바른 빵을 탐식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정면엔 역시 헤더윅이 설계했다는 화려한 입체감의 캐노피 밑에서 무려 에르메스 팝업이 진행 중이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공원의 후면으로 본매장과 그에 못지않은 명품 브랜드들 매장이 이어졌고, 디자인인 줄만 알았던 물결 문양은 지면과 건물을 연결하는 작은 화단 겸 산책로로 이뤄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레지던스와 쇼핑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동선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오피스가 있는 타워플라자에도 5개 층의 쇼핑몰이 별도로 구성되었는데 한 층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 콘란샵과 Orby 레스토랑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팝한 컬러와 달리 우드와 그레이의 차분한 톤으로 맞춰진 이곳엔 패션과 가드닝, 주방 아이템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전망대 카페의 화장실에서 문득 내려다본 아자부다이힐즈의 조감도는 전신이 유연하게 곡선으로 연결된 용 또는 뱀 같은 형상으로 느껴졌다. 명품과 미식과 갤러리가 어우러진 쇼핑몰, 고층의 프라임 오피스, 예방 센터와 국제 학교, 종교시설과 아만 계열의 자누호텔과 레지던스, 그 사이의 아름다운 공원과 산책로가 한데 모인 곳. 돌이켜보니 우리가 바게트를 뜯으며 햇살을 즐긴 그 공원은 도쿄 제일 부자들의 앞마당이었다. 자본주의 사회 최고 권력자들의 세상 일부를 외지인들에게 개방하는 공용부로 계획하여, 주거와 업무의 분양만이 아니라 상권까지 활성화하고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키는 디벨로퍼의 체스판 위에 올라선 기분이 들었다. 거주민과 외지인의 교차 속에서 미묘한 선망 의식을 낳는 용솟음이 있는 곳. 반나절을 보내버린 아자부다이힐즈를 떠나는 발걸음은 왠지 가벼웠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시부야, 아직은 낭만이 머문 곳 ] 

 이튿날, JR 역에서 나오자 유명한 하치코 동상 앞에 사람들이 줄을 있었다. 그곳엔 '무료로 사진을 찍어줍니다'라는 영문이 적힌 Japanese Hospitality의 노란 셔츠를 입으신 파란 모자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지친 기색 없이 유쾌하게 사진을 남겨주시는 분과 사진을 찍고 스크램블 교차로 너머의 시부야 츠타야로 향했다. 

undefined
undefined

2000년에 문을 10개 층높이의 건물 전체가 24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2019년 역시 리뉴얼 오픈했던 시부야 파르코의 닌텐도와 포켓몬 영향일까. 이곳 츠타야의 변신도 애니메이션 IP가 콘셉트이다. 구글 재팬 오피스가 롯폰기에서 시부야로 넘어오며 본격화된 젊은 IT 종사자들의 이주, 그들의 감각에 맞춘 세련된 사우나 브랜드도 생겼다고 한다. 새로운 상주인구와 글로벌 관광객의 스크램블 속에 츠타야도 서점을 벗었다. 예약자에게만 오픈되는 1~2층의 IP 전시관을 지나 3층부터 시작되는 Share lounge를 처음 경험해 보았다. 널리 알려진 감도 높은 츠타야의 Curation 공간을 스낵과 알코올, 개인 좌석 제공으로 시간제 라운지로서 사업화한 것이다. 3층은 기존 츠타야에서 보지 못한 피겨의 공간, 4층은 어느 정도 익숙한 디자인 / 건축 / 만화책 등의 서적으로 이뤄져 있었다. 직접 탭으로 내릴 있는 생맥주와 냉동이라 믿기지 않는 퀄리티의 만두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라운지에는 기대 이상의 다품종 음료와 스낵, 디저트까지 가득했다. 보통의 호텔 조식을 먹느니 차라리 이곳을 경험해 보라는 블로그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다. 느슨하게 공간을 구경하며 먹는 집중하다 보니 예정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본연의 책을 즐길 있는 4층의 창가 자리에서는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는 인파를 바라볼 있었다. 진지하게 노트북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젊은 현지인들도 보였다. 결국 오버 차지를 계산하고 나온 라운지는 현지에 살고 있다면 다회권으로 저렴하게 끊어 틈틈이 이용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과연 한국에서의 운영은 어떨까 고민이 되었다. 이태원 안쪽의 '그래픽'이란 세련된 만화 도서관도 간단한 음료와 스낵을 제공하는 대신 입장료를 내야 이용이 가능한데 규모의 차이인지 아지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반면에 이곳은 거리의 풍경을 내다보며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인 피겨와 서재에는 없을 법한 서적들에 둘러싸여 맥주를 즐길 있고, 무엇보다 엄청난 접근성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 방문해 봐도 좋을 같았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브런치 글 이미지 34


미야시타 파크를 지나 오모테산도로 향하는 길엔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레이싱카를 줄지어 타고 가는 투어객들이 보였다. 도쿄의 10대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맘스터치 너머에 '타워레코드'를 발견했다. K-POP 아이돌들의 앨범이 즐비한 1층을 지나 가수별로 섹션이 나눠진 LP들을 뒤적이는데 입구 쪽 작은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금세 사람들이 몰린 무대의 한편엔 아티스트의 간략한 소개와 신보가 함께 있었다. 문득 홍대의 작은 클럽들을 기웃거리던 나의 20대와 락 공연들, 추억의 아티스트들이 생각났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듯한 요즘, 아날로그를 일상으로 꿋꿋이 남기고 있는 도쿄의 사람들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 하네다 공항의 돈가스 ]

 현지에 사시는 지인께서 강력 추천한 '잇푸도 라멘'을 먹지 못한 채 짧은 여정을 마쳤다. 비행시간이 조금 남은 시간,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떠나기 전 만찬으로 돈가스를 먹고 싶었다. 도심 접근성이 좋았던 하네다 공항에 에도시대 거리를 재현한 식당가를 돌아보다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꽤 유명한 맛집이었던 '카츠센'의 바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기본 세트를 시켰다. 바로 앞에서 퍼포먼스와도 같은 장인들의 돈가스 탄생 공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공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이런 퀄리티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식음시설들도 제법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압도적인 분위기와 정성과 기다림이 있는 제대로 된 식공간에 비하면 초라했다. 사실 공항 식당이란 모름지기 빠른 회전율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 같은 이용객이 많은 이상, 한국에서는 아직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이전 06화 아직은 낯선 6월의 제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