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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쥬 Oct 20. 2021

대학 가면 다 해결돼~

인생 최대의 거짓말, ‘대학 가면 다 해결돼~’


‘대학 가면 다 해결돼. 그때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단다.’


27년 인생에서 들은 가장 큰 거짓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한다는 건 아니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싶은 분야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고등학생들에게 누군가 이 말을 한다면 많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학점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한 학기당 5개 이상의 과목에 대한 학점을 관리하는 게 나한테는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1학년 때 놀던 가락도 너무 남아 있었다. 고학년 때 그나마 잘 맞았던 복수전공을 안 듣고 고마운 한 친구를 못 만났더라면 정말 학점 복구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정확하게 아는 게 어려웠다. 동아리 활동, 교환학생, 엠티, 복수전공 등 다양한 도전을 했지만, 왜 내가 도전했는지 구체적인 동기를 확언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안 된다. 뭉뚱그려 ‘대학교 때 할 수 있는 경험 다 해 봐야지’ 정도였다. 그래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무리 경험을 해도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모르겠는 그때의 방황하던 시간이 괴로웠다. 그래도 추진력 하나는 참 끝내줬다.. 그중에서도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몇 가지만 공유하고자 한다.


1. 미국 교환학생


대학생이 된다면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던 교환학생!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디즈니 영화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미국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한 학기를 휴학하고 토플 성적을 따는 것에 매진한 후, 원하는 점수를 얻고 드디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다른 게 너무 많았다. 교환학생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많이 생길 줄만 알았는데 이게 왠 걸? 2017년 봄학기 교환학생들 중 한국인은 나 혼자 뿐이었고, 내가 알고 있던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은 정말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모든 걸 내가 개척해야만 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점심 먹고 있는 외국인 친구 두 명에게 다가가 같이 밥 먹자고 말을 걸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소중한 코스타리카 친구 2명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엄청 개방적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 가니 나는 엄청난 유교 걸이더라. 기숙사 게시판에 관리자가 (안전하게 그걸 하라고) 걸어 놓은 콘돔들. (심지어 며칠 되지도 않아 몇 개 남지 않았다!) 홈파티에서 갑자기 사라진 친구를 찾았더니 기숙사 룸에 와서 남자 친구도 아닌 사람과 그걸 하고 있던 걸 목격해버리는 순간까지. 단조로운 생활도 많았지만 정말 다이내믹한 일들이 많았다.


뉴욕, 보스턴, 플로리다, 캐나다 등 많은 지역을 여행했다. 혼자 밤에 보스턴에 도착해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천만했다. 겁도 없이 동양인 여자애 한 명이 걸어가고 있는데 참 표적이 되기 너무도 쉬웠다. 정말 신이 지켜주셨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준비하고 이동하고 새로운 곳에 다니는 모든 과정에서 용기 있게 추진하고 도전하는 나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6개월 만에 좋아진 영어 실력이라고는 자연스럽게 음식 주문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2. 동아리 활동


영자신문사, 축구, 농구 등과 관련된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운동 동아리는 솔직히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위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 잠시 즐거웠을 뿐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연이 거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영자신문사는 그나마 나의 온전한 의지와 동기를 가지고 지원해서 들어갔다. 실제로 배운 것도 정말 많았다. 카메라 촬영, 모르는 사람 컨택, 영문 기사 작성법 등 글 쓰는 일과 영어 공부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던 경험이었다. 학업과 병행하는 게 또 힘들어져서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그때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는 아직까지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이때 나는 기자직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나의 대학생활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자면 ‘질보다 양’을 외치며 빛만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삶이었던 것 같다. 얻는 것도 있었지만 인생의 방향과 깊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없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힘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대학생을 만난다면 다양하게 경험하고 노는 것도 좋지만 꼭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에게 맞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Photo by Siora Photograph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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