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형에게 "엄마가 하지 말랬잖아!"라고 말을 합니다. 그럼 형은 까불지 마라고 한대 주어박을 수는 있지만, 동생이 꺼낸 엄마라는 말에 신경이 쓰입니다. 그냥 동생이 "형 하지 마."라고 이야기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됩니다. 회사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 말씀입니다라고 하는 순간 말의 힘이 달라집니다. 그 말에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논쟁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엄마 말이 다 맞고, 사장님 말대로만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주위를 환기시키고, 말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힘 있는 사람의 이름을 빌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가진 힘만으로는 상대방이 듣게 하기 어렵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 31,31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는 매 구절마다 주님의 말씀임을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 안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인류 구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은 땅에서 들어 올려져야만 세상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듣지를 않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은 표징을 요구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시지만, 오히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들으라고 하십니다.
잠시 제 마음을 돌아봅니다. 나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고 여러 번 외쳐야 간신히 귀 기울이는 사람인지, 조용히 비유로 말씀하셔도 마음으로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말입니다. 요즈음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조금 늘었습니다. 성경을 통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한번 더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낀다고 하지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듣고, 느끼소 싶은 대로 느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는 작은 경험을 해보니, 이제까지 저의 태도를 알게 하였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경험으로 걸러진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다행이었지만, 마음이 굳어 있을 때는 어떤 사실도 있는 그대로 제 마음에까지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제가 예레미야 시대에 살았다면, 주님의 말씀이라고 외치는 예레미야의 목소리를 들었을지 아닐지 긍금해집니다. 아직은 자신있게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안에 온전히 마음을 다해 그 시간과 공간에 함께 하는 것을 지금이라도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과 경험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가끔씩 아내를 포함한 사람들이 제게 했던 말, "너 지금 내 말 듣고 있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며, 내 곁에서 항상 함께 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대신해서 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과 온전히 함께 하는 법을 이번에는 꼭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