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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나를 성장시킬 때

by 도시관측소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어릴 적 나의 세계는 집이라는 울타리, 가족이라는 관계에 구속되어 있고, 어머니의 품 같은 공간에 단단히 매여 있습니다. 말이 ‘구속’이지, 사실 우리는 그 안에서 온전한 휴식을 얻고 무럭무럭 성장하며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공간은 단순히 삶의 배경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나답게 빚어내는 견고한 틀입니다.


그렇기에 성장을 이끄는 공간이 꼭 학교나 도서관처럼 정해진 곳만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스스로 찾아 나선 낯선 장소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꾸는 특별한 공간에서, 혹은 플랫폼을 유랑하는 디지털 유목민들 속에서 우리는 한 뼘 더 자라나기도 합니다.


혹시 세상의 속도에 맞추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 든 적 없으신가요?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현상 유지를 위해서조차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매년 더 빨리 달려야 겨우 살아남는 이 무한 질주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속도를 가장 잘 따라가는 사람이 가장 먼저 소모되어 버립니다. 단순히 정신이 번아웃되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성마저 잃어버리는 ‘존재의 번아웃’을 겪게 되는 것이죠.


이 끝없는 가속화가 낳는 단절과 소외에 대한 해답을, 로자는 ‘공명(Resonance) 이론'에서 찾습니다. 그가 말하는 공명이란, 세계와 내가 서로에게 반응하며 함께 진동하는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 순간입니다. 길을 걷다 어떤 공간이 문득 나를 부르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나에게 와닿은 무언가가 내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고, 나의 이 작은 반응이 다시 다른 사람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 이처럼 공간과 사람 감각의 해상도를 높여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공명입니다. 이는 “잘난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조용히 빛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 밝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라던 이어령 선생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 우리 도시에는 바로 이런 공명을 실현하는 새로운 공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서 <도시 관측소>에서 이를 ‘제4의 공간’이라 명명했습니다. 집(제1의 공간)과 직장(제2의 공간), 그리고 타인과의 교류를 위한 카페(제3의 공간)를 넘어, 제4의 공간은 오롯이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곳입니다. 의미 있는 루틴과 자율적 몰입을 통해 과도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단단함을 다지는 곳이죠. 이곳은 일회성 소비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복적인 이용을 통해 나의 흔적이 남고 재능이 쌓이며, 이완과 몰입, 재미와 성장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흥미롭게도 제4의 공간은 주변의 다른 제4의 공간들을 불러들이며 그 지역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간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만든 아지트의 편안하면서도 생산적인 공기의 밀도, 목표를 공유하는 동료들과 땀 흘리는 피트니스 클럽의 활기찬 에너지, 혼자 깊이 몰입하는 작업실의 열기.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직접 작용하여 습관을 만들고 잠재력을 일깨웁니다.


요즘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성장시키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그 의미를 찾아 나서고 싶습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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