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나 직장처럼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물리적 좌표에 내 관심을 한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의식과 감각의 촉수가 닿는 모든 곳이 나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가봤던 곳, 느끼고 생각하며 관계 맺었던 곳, 그중에서도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곳이 곧 나의 영토입니다.
난생처음 신도시에 살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을 따라 분당이라는 새로운 도시에 발을 들였습니다. 집 내부는 제법 큼직하여 처음으로 저만의 방, 저만의 옷장을 가져봤습니다. 밖에서는 반듯하게 구획된 아파트 단지들 사이를 걷거나, 중앙공원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달리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분당이라는 도시는 제 안에 잠들어 있던 탐험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기어가 달린 자전거 한 대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죠. "자전거를 타고 하루 안에 돌아올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보자."
신도시에서 저의 세계는 페달을 밟는 만큼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죠.
나뭇가지에서 “구구-” 비둘기가 울던 분당 저수지, 그 근처에서 맡던 물비린내, 이제 막 편의점과 떡볶이 가게가 들어서던 아파트 상가의 소란함까지. 집 근처라는 동심원에서 벗어난 신도시 교외는 꽤 멀리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저에게 기억이 각인된 살아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까지 살고 있나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집, 학교, 회사를 떠올릴 겁니다. 우리의 몸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물리적 좌표죠. 하지만 내 관심을 이런 좌표 안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의식과 경험, 즉 감각의 촉수가 미치는 곳까지가 곧 나의 공간입니다. 직접 가보고, 느끼고, 기억함으로써 나와 관계 맺게 된 곳, 그중에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거나 나의 마음을 일깨웠던 곳이 나의 영토인 셈입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익명의 영역인 ‘공간(space)’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장소(place)’를 구분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무의미하고 막연한 중성 공간을 경험과 애착이 담긴 장소로 바꿔 가는 존재입니다. 저에게 분당이라는 낯선 공간은 자전거 바퀴가 구르는 만큼 구체적인 장소들로 채워졌습니다. 해가 질 녘 노을이 유독 아름다웠던 탄천의 다리 위는 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 것이죠.
내 공간의 반경을 넓히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활동 범위를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곧 나의 인지 영토(cognitive territory)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정해진 일과를 소화하는 루틴은 안정적입니다. 사람은 종종 안정 속에서 더 성장하죠. 하지만 루틴의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를 ‘점’ 같은 존재로 한 자리에 머물게 하기도 합니다. 집이라는 점, 회사라는 점,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선 위의 편안함이라는 관성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낯선 공간에 나를 던져볼 때, 우리는 영토를 넓힐 수 있습니다. 주말 오후, 평소 가보지 않았던 동네의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는 시도부터 비즈니스 미팅 때 일부러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주변을 걸어보는 행위까지 다양합니다. 익숙한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에서 활동을 해보거나, 반대로 낯선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주변의 익숙한 풍경을 담아보는 활동도 그런 예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인지 영토를 넓히는 방법입니다.
익숙한 공간 밖에서 지내는 경험은 내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됩니다. 너무 예측 가능한 동선에 내 몸을 머물게 둘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공간과 관계가 주는 미세한 긴장감은 새로운 자극이 되고 우리의 뇌를 깨웁니다. 그로 인해 세상을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죠.
‘어디까지 살고 있느냐’라는 질문은 ‘당신은 어떤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미지의 공간을 나의 장소로 만들었던 그 시절처럼, 우리에게는 여전히 탐험해야 할 무수한 공간과 관계가 남아있습니다.
당신 감각의 촉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