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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로 May 21. 2024

인생 첫 헤어짐.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친구.

나는 또래에 비해 어린이집에 늦게 들어갔다. 동생이 생기며 두 아이를 케어할 수 없어진 부모님이 뒤늦게 보낸 곳에서 나는 빠른 년생으로 들어가 한 살 많게 살아갔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부모님 덕에 7살을 2번 겪게 되긴 했지만. 사실 처음엔 내게 언니 누나 하던 동생들이 친구가 되었다는 게 어려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려서 금방 적응했던 거 같은데, 그래도 조금의 혼란스러움은 느꼈던 거 같다.


그런 시기에, 평생 추억할 친구가 생겼다.


계속 바뀌어온 환경 속에서도 여태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는 그 친구. 매일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또 뛰어다니며 우정을 쌓았다. 어린이집을 졸업할 즈음 내가 언덕 너머 보이는 초등학교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당연히 모두 같이 저 학교에 올라갈 거라 생각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학교 같이 다니면 너무 재밌겠지?”

“나는 우리 집 앞 학교에 간다는데?


부푼 기대도 잠시 내가 건넨 질문에 그 친구는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적잖이 충격받았다. 새로운 환경 자체도 무서운데 이제 다시는 얘를 못 볼 수도 있게 된다고? 작은 머릿속이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지역이 작아서 자연스레 오고 가며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커가며 알게 되었지만, 어릴 적 나는 그저 무서웠다. 내 단짝을 앞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을 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남이 보면 어린아이의 헛되고 귀여운 걱정이었겠지?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주 큰 허무함이 되었다.


졸업날이 다가올수록 그 친구에게 틈틈이 편지를 적고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나를 추억할 무언가를 쥐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행동이었다. 나를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끼던 물건을 쥐어줬다. 물론 상대방도 내게 똑같이 돌려주었고 내가 그 아이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생긴 게 기뻤다. 어느 날엔가 부모님이 멋대로 물건을 버린 게 속상했지만. 주고받은 기억만으로도 내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그럼에도 종종 그 친구를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보고 싶다. 같이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싶다. 내 생각과는 별개로 다시 보기는커녕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할머니댁으로 집을 옮기게 되었지만. 시골 동네로 이사하게 되어 아주아주 작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동갑이라곤 나 혼자였다. 물론 다른 또래들과 새로운 경험을 쌓아갔지만 당시엔 꽤나 외로움을 느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즈음 집에서 자주 쫓겨났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무력함과 분노를 느낄 때마다 나는 내 첫 친구를 떠올렸다.


나는 이래도 너는 잘 지내면 좋겠다.


인생 첫 이별은 아직도 마음속 제법 큰 사건으로 남아있다. 태생부터 사람을 좋아하던 나는 어린 마음에 가장 깊게 자리 잡은 친구를 어른이 된 지금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엔 내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기도, 또 추억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 아이를.

사실 자라고 나서 연락을 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조금 두려워서 시도하진 않았다. 바뀐 나를 보며 실망할까 봐, 그리고 바뀐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실망할까 봐. 그냥 마음에 좋은 추억으로 묻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스럽기도 하다.


과거가 어쨌든 아무렴 상관없다. 이제 상대방이 나를 기억하든 잊었든 상관없다. 그저 내게 있어 많은 것을 알게 한 첫 헤어짐. 누군가에겐 사소하겠지만 나에겐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일어설 용기가 되어준 친구와의 헤어짐이 여전히 아주 크게 남아있다.


소중했던 어린 날의 친구에게 이 글을 마음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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