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결말은 정해져 있다.

by 시sy

지현우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 고객은 조금 특별했다. 형식적으로는 포에버월드에 거주 중인 어머니와 아웃라인 면회를 위해 클리닉을 찾았다. 1년에 한번 발행되는 거주민 생일 쿠폰을 가져왔다. 50% 통화료 할인.


“어머니 잘 계시죠?”

=그래, 난 잘 있다. 너네 가족은 다 건강하니?


보호자는 큰 아들이다. 50대 초반, 평범한 직장인,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어머니의 사후 비용을 대고 있는 가장이다.


“네...”


다 건강하니, 라는 평범한 질문에 대답하는 아들의 대답이 시원찮다. 가족 중 어느 하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대답이 왜 그래? 누가 아프냐? 혹시 성윤이?

“아뇨. 성윤이는 잘 있어요.”


성윤이는 보호자의 아들이자 거주민의 손자일 것이다. 할머니인 거주민이 가장 먼저 건강을 챙길 사람은 손자니까. 그럼 손자가 아니라면 누가 아플까? 지현우는 직감했다.


“집 사람이 좀 안 좋아요.”


굳이 사후세계나 다름없는 포에버월드 거주민에게 얘기할 정도면 좀 안 좋은 게 아닐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렸다.


=그렇구나.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니?


거주민 할머니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며느리는 남이다. 살아서도 그렇고 죽어서는 더하다.


“꼭 그게 아니라,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서..”

=작년에는 전화 안 했잖니?


50% 할인 받아도 아웃라인 면회비용은 서민이 일회성으로 쓰기엔 감당하기 어렵다. 시스템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을 텐데, 왜 이리 비싸게 책정했을까? 모털 컴퍼니의 가격책정은 너무 임의적이다.


“작년에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랬죠.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진정할 게 뭐있니? 말해라.


‘말해라’는 말이 ‘말해봐라’로 들린다. 생판 남인 지현우에게도 그렇게 들린다는 것은...


“실은 올해가 어머니 계약 마지막 연차인데요.”

=그거 2년 더 연장하기로 했잖아. 그게 왜?


거주민이 선수친다. 이미 정해진 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연장이 어렵겠어요. 저희 형편이 요즘 빠듯해서. 성윤이 대학도 가야하고.”


현우는 더 듣고 있기 힘들었다. 아웃라인 통화를 모니터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보호자가 요청하면 현우는 나가도 된다. 그러나 보호자인 아들은 그럴 겨를이 없는 것인지 현우에게 아무 싸인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손자 대학을 내세웠는데도 거주민 여자는 요지부동이다. 이쯤이면 알아들었을 만도 한데, 당연히 알면서도 되묻는 것이다. ‘감히 아들인 니가 계약을 연장 않고 코드를 뽑으려는 것이냐?’


보호자 아들은 더 말하지 못했다. 거주민인 어머니가 먼저 양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너 설마, 나 대신 성윤 엄마를 여기에 들이려고 하는 거니?


현자가 있을 뿐, 바보는 아무도 없다. 그냥 속아줘도 되는데, 형편이 어렵고 손자 대학도 보내야 하니, 포에버월드에서 2년 덤으로 더 살았으면 충분하다고 말해줄만 한데, 그러지 않는다. 아들을 더 몰아세운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성윤 엄마가 얼마나 아파? 죽을 병이라도 걸렸어? 성윤 엄마가 그러재? 나 빼고 포에버월드 보내달라고 그러디?

“엄마!”


아들도 인내심이 끝났나보다. 지현우는 더 듣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더 험한 꼴도 여러 번 봤지만 이건 아니다. 현우는 차라리 그들이 목청껏 싸우길 바랬다. 손자였다면? 손자가 곧 죽게 돼 포에버월드로 전송을 원했다면 거주민 여자는 선뜻 양보했을까? 엄밀히 양보가 아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거주민의 권리는 말소되고, 연장여부는 오롯이 보호자에게 달려있다.


면회가 끝나기를 현우가 기다리는 동안 박지나에게 전화왔다.


=이따가 오후에 들를 게요. 아빠한테 면회요청은 해놨죠?

“네. 늦지 말아요. 그런데 박장우씨가 응답하지 않을 수 있어요. 요즘 잘 안 받아요.”


=알았어요. 보호자 동의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현우가 박지나의 전화를 끊자 아웃라인 면회가 끝난 보호자 아들이 나왔다. 표정이 어둡다. 먼저 말 걸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는 현우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의 사정을 현우가 아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가족의 치부니까. 그래서 억지 웃음을 짓는다. 모르는 척 해달라는 부탁이다. 현우는 끄덕였다.

보호자 아들은 클리닉을 나가려다 말고 현우에게 되돌아왔다.


“지팀장님, 물어 볼 게 있는데요.”

“네.”

“연장 계약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거주민이 스스로 영면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답이 나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합의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맘대로 하라’는 것이고 아들은 맘대로 하기 힘들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는 정해져있다.


“콜센터에서 계약만료 통보하고 영면예약 신청 받습니다.”

“그래도 예약 안 하면요?”


“마지막 날에 자동으로 예약됩니다.”

“자동예약이라면 갑자기 죽는 건가요?”


“보호자께서 아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포에버월드 거주민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없습니다.”


현우는 스스로에게 할 말을 남에게 하고 있었다. 지호는 죽었다. 지호는 죽었다.


“그래도... 갑자기 죽게 되면.. 무척 놀라실 텐데.”

“놀랄 겨를도 없이 이뤄질 겁니다. 물론 고통도 없구요..”


코어 뉴런이 어떤 고통을 경험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는 보호자의 고통은 확실히 존재한다.



지호는 읽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권을 덮고, 쓰던 소설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마지막권까지 다 읽거나 혹은 소설을 다 쓰면, 어느 한쪽이라도 먼저 됐을 때 영면에 들기로 했는데, 어느 것이 먼저 될지는 그녀도 몰랐다. 그건 그녀의 선택이 아니게 두려고 했다.


잠이 들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적인 사물의 실제 자체를 망각하며, 또 그 사물에 대한 몰인식이 나를 미치광이로 만든다. 내가 망각한 것은 ... 포르피리우스나 플로티노스의 학설이 아니라 어느 초대에 관해 내가 하기로 약속했던 대답이었으며, 텅 빈 여백이 그 기억을 대신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권>


프루스트의 소설과 같이 포에버월드에서도 잠을 자면 일상의 풍성한 감정을 잊고 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주인공이 잃어버린 건, 그의 지식이 아니라 시간이며 그 시간은 과거에 느꼈던 감정과 연민이었다.


지호는 포에버월드에서의 생활이 지속될수록 그녀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사실관계의 논리적 서술만으로 어떻게 소설을 쓴다는 말인가? 지호는 소설을 완성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나가라’는 제이든의 충고에 따라 가능한 이미 쓴 부분을 다시 읽지 않기로 했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이미 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쓰지 않은 다음 문장의 서두를 얽매고 있어서 그녀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지호는 주인공이 죽는 소설의 마지막부터 쓰기로 했다.


그녀는 빛을 잃고, 실이 끊어지려 한다.

“말해봐. 세상의 모든 인간을 적대할 수 있겠어?”

“당신이 원한다면.”

“그럼 살아봐. 살면서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직접 알아봐.”

그녀는 눈을 감았다. Han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악(惡)은 전승됐다.


마지막부터 소설의 흐름을 거스르며 역순으로 이야기를 나열하다가 소설의 앞부분과 자연스레 만나게 할 것이었다. 엇나간 시공간적 운명으로 헤어졌던 연인이 가운데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완성될 것이다.


게다가 늘상 그녀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고뇌는 이만 끝내기로 했다. 소설을 완성한다고 누가 읽을 것이냐,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왜 쓰나, 그런 걱정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작가가 죽고 나서 출판된 소설은 얼마든지 있다. 카프카가 그렇고 마르셀 프루스트도 그렇다. 작가 윤지호와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죽고 나서도 소설을 쓴다는 것 정도? 그 정도는 사소한 차이다.


‘소설을 다 쓰기 전에는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해’


지호는 출입문을 굳게 잠근 채 전화도 받지 않고 초인종 소리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날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박장우는 죽을 맛이었다. 매번 누를 때마다 그녀가 ‘들어오라’ 말할 것 같은데, 그 기대만큼 똑같은 크기로 절망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벨을 누르고 그 다음 벨소리까지의 침묵이 작은 망치가 되어 뒷덜미를 내려친다. 띵똥, 쿵, 띵똥, 쿵.


세 번은 기본, 네 번,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까지 눌러봤다. 오늘은 초인종 소리에 하도 얻어맞아서 서 있을 수 없을 때까지 벨을 눌렀다.


그 다음 날은 문을 두드렸다. 무례해도 두드리면 윤지호가 나올 것 같아서, 안에 있는데도 모른 체하는 것 같아서 두드렸다. 그는 그녀가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고의적으로 그를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호를 찾아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너무 집착하면 더 싫어할 것 같아서, 또 며칠 참다 보면 계속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 며칠은 참을 수 있었다. ‘그깟 여자, 여자가 여자지. 더군다나 죽은 여자인데’


그러나 인내의 시간이 끝나면 후폭풍은 몇 갑절이 돼 돌아왔다. 어제 찾아가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고, 찾아갔더라면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고 후회했다.


다시 찾아갈 때는 한달음에 뛰어갔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뛰어서, 통증 센서티브를 낮출 생각도 않고, 차 타고 간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뛰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불렀다.


“지호씨, 지호씨. 문 좀 열어봐요. 안에 있죠? 왜 안 열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그는 아무 잘못 없었다. 지호는 박장우를 벌주는 게 아니었다. 처음 몇 번은 그가 찾아온 것을 알지 못했고 그 다음은 알아도 모르는 체했다. 그리고 지금은 소설 때문에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과거는 물론, 현재에 얽매여도 소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민혁이 스위스은행 계좌를 알아오라고 한 것, 그 당사자가 하필이면 박장우인 것, 기묘한 우연이지만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남의 일이다. 지금은 오직 소설 쓰는 윤지호만이 그녀이고 그 밖의 나머지 윤지호는 과거든 현재든 전부 남이었다.


소설은 순조로웠다. 이야기가 멈추면 생각나는 부분부터 글로 옮겼다. 전개상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장면부터 서술했다.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이게 말이 될지는 미래의 윤지호에게 맡기고 지금 자기가 쓰고 싶은 것, 쓸 수 있는 것을 썼다.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분절된 이야기가 되고 그녀가 창조한 캐릭터는 통제되지 않았다. 그녀가 정해놓은 소설의 결말을 향해 각자의 힘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지호의 도움은 필요없었다. 그녀는 캐릭터가 하는 말과 행동을 서술하고, 왜 그러는지 이유를 따져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결말은 정해져있다. 주인공은 죽고, 주인공을 따르던 여자가 업(業)을 계승한다.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유, 지호는 이유만이 의미있다는 제이든의 말이 이해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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