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사소한 킬러 18화
조안나와 박서우의 오피스텔
“그래서 어땠어?”
“괜찮았어.”
“그거 말고, 좋았다. 아주 좋았다. 별로였다. 아주 별로였다 중 골라! 아니다. 그냥 키스부터 10초 단위로 너의 모든 행위와 체위를 했던 그대로 재연해 봐. 이왕이면 효과음도 넣어서.”
“됐어. 피곤해.”
“피곤해? 그 정도로 격렬했어? 하긴 그 인간이 몸땡이 하나는 좋으니까 제대로 이곳저곳 괴롭혔겠다. 더군다나 너는 몸도 앙증맞아서 이렇게 저렇게 돌리기도 좋고.. “
“미친뇬. 그만 안 해?”
박서우가 징그럽게 들러붙는 조안나를 떨쳐내고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하나만 더.”
“뭐?”
“그 인간하고 또 할 건 아니지? 그냥 지나가는 원나잇, 맞지?”
“글쎄. 캘러한이 또 누굴 죽이고 나면 하겠다고 덤빌 수도 있으니 그럼 상대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 몰라라 했다가 다른 뇬하고 그러면. 에이 몰라. 누가 그런 걸 정하고 하니?”
“뭐야? 그 말을 믿어? 그냥 너랑 한번 하려고 막 던진 거잖아. 죽이긴 누굴 죽인다고 그래?
나도 그 인간이랑 스토커 잡으러 몇 번 나갔는데 정말 죽일 생각은 없는 거 같던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나는 더 좋은 건가?”
“뭐가? 왜 니가 좋은데?”
“그냥 내가 좋아서 섹스한 거니까. 살인은 핑계고.”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뭐가 또 아닌데?”
“너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돈 보고 들러붙는 거면 모를까?”
갑자기 정적이 흐릅니다. 박서우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참을까 말까, 망설입니다.
“너야 말로 돈 소리 좀 그만해. 너도 돈 없어서 나한테 빌붙어 사는 거잖아. 그리고 난 돈이든 섹스든 내 편만 들어준다면 상관없어!”
결국 돈 얘기에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누가 먼저 선을 넘은 것인지 몰라서 먼저 미안하다 말할 사람도 없었죠.
조안나는 변명이든 뭐든 대꾸하려 했지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죠.
박서우 주변에는 돈 때문에 사람이 있고, 또 바로 그 돈 때문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녀의 인간관계는 좋든 나쁘든, 다 돈 때문인 거였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꾹 참았습니다.
“나 출근한다.”
박서우는 쥐어짜듯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습니다. 조안나는 박서우가 닫고 나간 문을 그녀 대신 노려봤습니다.
“나쁜 년, 말을 해도 꼭 그렇게.”
그 시간, 캘러한은 김동훈 씨의 오피스텔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어떻게 상황을 모면할지 연습 중입니다.
(터프하게) “헤이 왔섭? 경찰서는 어땠어?”
-오긴 내가 왔지. 경찰서가 어떠냐니.. 당연히 뭣 같지. 다시,
(다정하게) “좋은 아침! 나왔어. 아직 출근 안 했네. 태워다 줄까?”
-태워다 주긴, 내 차도 아닌데.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기 이번 달 월세, 이틀이나 빠르긴 하지만 치과도 돈 쓸 데 있을 거 아니야. 더 필요하면 말해. 땡겨다 줄게.”
-역시 돈이지. 이게 제일 낫겠다. 그럼 들어가 보실까?
“설마 지금 김동훈 씨에게 그렇게 말하려고 연습한 건 아니죠?”
출근하던 박서우가 뒤에서 나타났습니다. 딱 보니 연습하는 것을 다 들었습니다.
“꼭 연습이라기보다는… 넌 어제 그러고 또 출근? 대단하네.”
“누구처럼 백수가 아니라서요. 아까 나와 헤어지고 여태 문 앞에서 연습한 거예요?”
“누가 여태 했다고. 지금 잠깐 해 본 거지. 알겠지만 내가 가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때가 있어서.”
“거의 항상이겠죠. 난 그게 좋지만. 그리고 김동훈 씨는 어제 안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연습 나중에 해도 돼요. 지금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몰랐지. 재수!”
캘러한은 신이 나서 들어가려고 오피스텔 번호키를 눌렀습니다.
띠띠띠 에러, 띠띠띠 또 에러.
“이거 왜 이래?”
캘러한이 당황하자 박서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번호키 바꿨나 보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예상했어야죠.”
“나한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말하면 그게 화난 건가? 그냥 집 나가라는 거 같은데 이제 어떡할 거예요?”
“뭘 어떡해? 남자답게 부딪혀야지.”
뻔뻔스럽다 못해 당당한 캘러한을 보면 박서우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전부터 이상한 게 있었는데 왜 김동훈 씨에게만 그렇게 꼼짝 못 하는 거죠? 매사에 막무가내로 사는 사람이.”
“내가 언제?”
“지금도 그렇잖아요. 여기 아니면 살 데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데. 넌 왜 조안나랑 사는 거야? 가슴은 작으면서 오지랖만 넓은 그런 여자랑.”
“푸훗, 조안나 가슴이 그렇게 불만이에요? 내건 괜찮았어요?”
“뭐, 나름. 사이즈도 적당하고. 나한테 말이야. 흠흠.”
캘러한은 매너를 갖춰 조금 상상하는 척. 호감을 표시하며. 그 정도만으로 박서우는 즐거워졌습니다.
“대답하기 싫은 것 같으니 더 안 물을게요. 오늘도 갈 데 없으면 거기 가도 좋아요. 단, 다른 여자는 금지!”
“나도 그 정도는 저질은 아니야. 어쨌든 땡큐. 너도 와도 돼. 대신 침대는 내 거야.”
“네네. 그러시겠죠.”
박서우가 손으로 바이바이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반면, 그 시간 김동훈 씨는 전유나의 집에서 출근거부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싫어요. 안 갑니다. 어차피 환자도 없는데 오늘 쉴 겁니다.”
“동훈 씨 8시 넘었어요. 그러면 안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동치과의 오픈 시간은 8시, 남들보다 한 시간 빠릅니다.
왜냐고요? 노인 환자가 많아서 일찍 여는 거죠. 9시에 출근하면, 늘상 김동훈 씨 보다 먼저 와 병원 앞에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다 못해 취한 특별 조치였죠. 환자도 더 많이 받고.
물론 그 배경에는 건물주 간호사의 입김이 있었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어쩌고 저쩌고 타령을 하며 한 명이라도 더 봐야 월세는 낼 수 있지 않냐는. 맞는 말입니다.
“그분(노인)들은요, 어차피 기다리는 게 일인 분들이에요. 그보다 유나 씨 우리 어젯밤에 했던 거 한번 더 복습해 보면 안 될까요?”
고통이 끝나면 쾌락이 온다더니, 유치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김동훈 씨에게 그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로맨스가 찾아왔습니다. 어젯밤에요.
이 커플도 드디어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죠.
다른 남자에게는 그저 작은 한 걸음이겠지만, 김동훈 씨에게는 달착륙 보다 더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습니다.
“어젯밤 했던 거라면..? 뭐야, 동훈 씨도 부끄럽게. 지금 또?”
사실 김동훈 씨는 한번 더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내내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새벽에도 일찍 깼지만 전유나를 먼저 건드리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많은 인내를 했더랍니다.
좋아하는 여자가 바로 옆에 자고 있는데 말이죠.
“내가 학습이 느린 편이라 빨리 복습해 두지 않으면 또 잊고 망치는 편이라서..”
말꼬리 내리기, 우물쭈물, 시선처리 불가능.
다행히도 전유나는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보통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었습니다.
김동훈 씨의 작은 한 걸음 보다 최소 열 걸음은 앞선.
전유나는 걸치고 있던 그나마 작은 실크 조각을 걷어 올렸습니다.
“뭐해요? 복습하자면서요. 시간 없어요.”
전유나가 김동훈 씨를 다시 침대로 끌어들였습니다.
이제 둘 다 정시 출근은 글렀습니다.
참고로 전유나는 재택근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