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사소한 킬러 17화
조안나, 박서우의 오피스텔
조안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박서우에게 되물었습니다.
“미쳤다. 그래서 정말 그 인간하고 사귀기로 했다고?”
“응.”
“응? 그게 ‘응'이라고 한 글자로 말하고 끝날 일이야? 그래서, 어디까지 갔는데? 네가 의외로 적극적인 면이 있으니까 손잡고 포옹하고 그 단계까지는 건너뛰었다고 하자, 그래 키스까지도 할 수 있다고 쳐. 그런데 어젯밤 외박을 하셨다? 설마 같이 잔 건 아니지?”
“잤어.”
“그래 잤겠지. 밤새 손만 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했냐고?”
“뭐? 섹스? 했어.”
“했다고? 뭐? 정말 했다고?”
✈12시간 전,
캘러한은 한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서우였죠.
:: 어디예요?
“그걸 알아서 뭐 하게?”
:: 집주인을 경찰에게 팔아넘겼으니 당장 갈 데 없죠? 밤늦게 다니다가 괜히 사고 칠까 봐서요.
“사고는 이미 친 것 같은데. 갈 데 없는 것도 맞고. 치과는 집에 보내줬어?”
:: 의외네요. 그런 것도 챙기고. 그 이상한 여자친구가 잘 데려갔어요. 집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캘러한은 생각 없이 좋아합니다. 전화통화로도 알 수 있었죠.
“그럼 오피스텔이 비었어? 잘됐다.”
:: 김동훈 씨 없다고 그걸 들어가게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 예고 없이 들이닥치면요? 오늘 치과선생님 분위기가 일 한번 제대로 칠 것 같던데.
캘러한이 시무룩해집니다. 그것도 알 수 있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에이. 그깟 두루마리 휴지 때문에. 휴지 없어졌다고 신고한 게 누구야?”
:: 알면 어쩌게요? 죽이게요?
“나 프로야.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죽이지는 않아.”
:: 의뢰가 있어야 한다? 돈 없는 살인은 없다?
“그거지. 지금 피곤하니까 나 재워줄 거 아니면 끊어.”
:: 재워줄게요. 주소 보낼 테니 그리로 와요.
캘러한이 그냥 던진 말인데 박서우는 진심으로 받았습니다.
캘러한은 조금 의아했지만 공짜로 재워준다는데 마다할 인간이 아니었죠.
캘러한이 도착한 곳은 서울 도심에서 조금 빗겨 난 재개발 구역이었습니다.
딱 봐도 사람 안 산지 오래된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데 전부 불이 꺼져 있었죠. 한 집만 빼고.
그 집마저도 창문이 막혀있어서 바깥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았습니다.
“여긴 뭐야? 못해도 5성 호텔은 잡았을 줄 알았는데.”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박서우가 빙긋이 웃습니다.
집 내부는 의외로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습니다. TV와 냉장고 등 어지간한 가전제품도 있었고요.
“우리 엄마랑 조안나 엄마가 살았던 곳이에요. 재개발되면 곧 없어지겠지만.”
목소리에 조금 짠한 감정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곧.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해도 좋지만 여기는 조안나도 모르는 곳이니까 비밀로 해줘요.”
“괜찮겠어? 내가 보기엔 너만의 비밀장소로 보이는데. 이런 곳에 잘도 숨어 지냈군 그래.”
“그 정도는 아니고요. 혼자 있을 곳이 필요할 때 잠시.. “
전체적으로 좁아서 둘러볼 것도 없습니다. 캘러한은 다 파악했다면서,
“침대가 하나뿐인데?”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요?”
박서우가 묘한 눈으로 캘러한을 쳐다봅니다. 캘러한은 그녀를 마주 보는 대신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어요.
“뭘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뭘 할 건데요?”
“야심한 시간에 방해하는 인간은 하나도 없고, 침대는 하나뿐, 내가 뭐 할 거 같아?”
캘러한은 3류 영화 장면을 흉내 내며 박서우를 벽에 밀어붙였습니다. 박서우는 조금의 위기감도 느끼지 않으면서 오히려 즐기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러면 내가 벌벌 떨 거 같아요? 우리 사귀기로 한 사이 아닌가요?”
그쯤에서 장난을 멈출 만 한데 캘러한은 그러지 않았어요. 더 진지한 얼굴로,
“그거 알아? 인간은 죽을 위기에 직면하면 종족 보존의 본능 때문에 이성에게 강력한 성적 욕구를 느낀다는 거.”
“영화에서 본 거 같아요. 그래서 위기상황에 꼭 키스신이 나오고. 그런데 우리가 지금 죽을 위기인가요?”
“난 말이야. 반대거든. 누군가 죽이고 나면 강력한 욕구를 느껴.”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오늘 누군가를 죽였고 그래서 지금 성욕을 느끼고 있다는?”
“응.”
박서우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캘러한을 밀어냈어요.
“와. 이거 진짜 별로네요. 당신이 누굴 죽이든 말든 상관없는데 날 단순한 욕구 상대로 본다니.”
순순히 밀려난 캘러한은 냉장고에서 꺼낸 병맥주의 뚜껑을 손으로 비틀어 열고 그대로 마셨어요. 별로 안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놓아줄 때 가라는 거지. 지금.”
박서우는 캘러한의 입 주변으로 흘러내리는 맥주 거품을 유심히 보고 있었어요.
맥주가 식도를 경유해 흘러 넘어갈 때마다 캘러한의 목젖이 꿀렁대며 그녀를 자극했죠.
오목조목한 목근육이 꿈틀꿈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맥주병을 잡아 쥔 팔뚝에는 울긋불긋한 정맥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티셔츠 위로 봐도 액션배우 같은 복근이 불룩하고 선명하게 양각으로 보였어요.
저 옷을 벗기면, 눈 씻고 찾아봐도 전신에 군살 하나 없을 것은 너무도 분명했죠.
“알았다. 지금 일부러 나 밀어내는 거죠? 아껴주려고.”
캘러한이 못 들은 척 하자 박서우가 다시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캘러한의 얼굴을 만졌어요.
“당신, 생각 보다 더 귀엽네.”
캘러한은 그녀가 하는 대로 둡니다.
“이것 봐, 귀여운 건 너거든.”
“내가 귀여워요?”
“말을 못 알아듣나, 너는?”
“네, 못 알아들어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믿지 않죠.”
캘러한이 박서우의 얇고 가는 허리를 휘감아 안았어요. 꽤 세게.
“지금 꽤 위험한 상황인 건 알고 있지?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데, 아닌가?”
박서우가 그래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자 캘러한이 곧 키스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어요.
“이래도?”
“아직도.”
키스합니다. 강도는 점점 강하게. 격렬하게. 박서우도 마찬가지였죠.
둘의 옷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벗겨졌고 두 사람은 몸을 밀착한 채 침대에 누웠습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침대시트의 차가움에 살짝 몸을 떨었지만, 금세 다시 뜨거워졌죠.
박서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캘러한의 목을 죽을 듯이 휘어 감았습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를 받아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