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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섹스는 17번까지

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by 시sy

사소한 킬러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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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와 박서우의 오피스텔

아침부터 조안나가 비명을 질러댑니다.

“으악! 내 통장에 잔액이 582원이야!”

박서우는 무시합니다.

“서우야, 이게 무슨 일이지? 카드사에 전화해 볼까? 내가 쓴 것보다 더 많이 빼간 것 같아. 내 계산으로는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럴 리 없어? 나는 '니 계산'이라고 말하니까 바로 이해가 되는데. 네가 계산이 되니?”

“진짜 아니야. 이번 달에는 내가 쓴 거보다 20이나 많이 입금했다고!”

“그전에 카드 할부 긁은 것도 계산해서 입금했어?”

“할부? 그것도 넣어야 하나? ”


게임오버, 끝났습니다. 조안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박서우는 턱을 휙 돌립니다.

다음에 나올 조안나의 대사는 뻔했습니다.

조안나가 박서우에게 쪼르르 달려오는데.

“안 돼. 돈 없어.”

박서우가 먼저 선언했죠. 그리고 나갈 채비를 하는 손놀림은 더 빨랐습니다.

조안나가 징글징글하게 들러붙습니다.

“정말 없어~? 그냥 빌려 주기 싫어서 없다는 거 아니고~?”

“둘 다야. 그리고 갚기나 하고 빌려달라고 해. 적선도 하루 이틀이지.”

이 정도 말했으면 조안나도 떨어질 만한데 아닙니다.

왜냐하면 박서우 앞에서 조안나는 세 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돈, 둘째 자존심, 셋째 못할 짓!

결국 전부 다네요.


조안나는 냉정하게 집을 나서는 박서우의 디딤발을 박진감 있는 슬라이딩으로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이 자세는 좀 새롭다. 너 남자한테도 이런 식으로 매달리니?"

“에이 그러지 말고. 50만 땡겨줘. 응?”

“넌 요즘 돈 많은 남자 만나면서 왜 맨날 돈이 없어? 혹시 헤어졌니? 그새 어린애 만나서 갈취라도 당하는 거야?”

“노노, 아직 네 번 남았어.”

“뭐가 네 번?”

궁금합니다. 궁금증은 인류의 적이죠. 박서우는 궁금하지 말고 나가야 했습니다.


“말했잖아. 한 남자랑 17번만 하는 거.”

“그걸 진짜 만날 때마다 세면서 해?”

“당연하지. 내 원칙인데.”

조안나는 원칙을 세우지 않는 편이지만, 한번 세운 원칙은 반드시 지킵니다.

“머리도 나쁜 애가 무리한다. 그럼 하룻밤에 두 번 하면 그건 어떻게 해?”

“그건 한 번, 하룻밤은 무조건 한 번으로 쳐.”

“12시 넘기면, 두 번?”

“장소 변경 안 했으면 그것도 한 번.”

나름 치밀하고 꼼꼼합니다.

“나 탄복했어. 진심이야. 너한테 이런 점이 있다니 이건 칭찬할 만하다고 봐.”

“그럼 돈 빌려줄 거야?”

박서우는 대답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조안나에게 50을 쐈습니다. 돈을 줬으니 더 물어볼 권리가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꽤 마음에 든 것 같더니 정말 앞으로 네 번 더하면 끝낼 거야?”

“고민이긴 한데 할 수 없지. 원칙이니까.”

“하긴 원래 원칙은 반복된 상황에서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라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 남자도 네 원칙에 동의했어?”

동의 안 했습니다. 말도 안 꺼냈습니다. 말 꺼냈다 해도 이런 말 같지 않은 원칙에 동의하고 사귀는 남자가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요?

당연히 불협화음이 생겼습니다.


‘고고고’로 진행되던 조안나의 연애가 버퍼링 걸린 노트북처럼 버벅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조안나, 오늘도 '그냥' 집에 가는 거예요?”

“아, 네…”

여기서 ‘그냥'이라는 말은 -모르는 분을 위해서 설명하자면- 데이트 끝나고 진짜 그냥 집에 간다는 겁니다. 다른 뜻 없어요.

“혹시 요즘 내가 실수한 거 있나요?”

남자는 당연히 당황합니다. 모든 게 좋다가, 한 걸음 더 내디딜 때가 되면 꼭 배 아픈 것처럼 온몸을 배배 꼬다가 집으로 향하는 조안나가 이상했던 거죠.

조안나는 조안나 대로 아픔이 있었어요. 그녀도 하고 싶지만, 한번 하면 남은 횟수 하나가 까지고, 그러다가 4가 0 되면 이별이니까요. 아직은 이 남자와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별 수 있나요? 자는 횟수를 아끼는 것이었죠.


사실 조안나의 원칙은 말이 원칙이지 17은커녕, 10 근처에도 못 가고 끝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녀의 원칙이 이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겁니다.

보통 원-투 나잇, 잘해도 쓰리-포 나잇, 좀 사귄다 싶으면 7 정도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됐습니다.

어느 쪽 귀책사유이든 간에..

“그런 거 없어요.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몸 안 좋은 사람이 삼겹살에 와인을 포도주스처럼 들이켜고, 노래방에서 마마무 노래를 2절까지 열창합니까?

이걸 믿는다면 뭔가 모자란 남자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예진의 아빠,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임원인 이 남자는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좀 부담스럽나요?”

좋은 표현 나왔습니다. 싫어졌나요? 질렸나요? 이런 말 보다 얼마나 우아합니까?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우리 시간을 좀 가질까요?’ 또는 ‘좀 천천히 갈까요?’ 등이 있습니다.

“아.. 아뇨. 전혀 그렇지... 알았어요. 그럼 오늘 해요. 우리.”

조안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죠.

남자는 조안나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뒤로 조안나가 무척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또 한걸음 행복하게 전진하면서 원더풀한 밤을 보낼 수 있었죠.

남은 횟수가 4에서 3이 됐다는 것만 빼면요.


“으와. 정말 미치겠다. 이제 정말 삼 세 번 밖에 안 남았어.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조안나에게 대화할 상대가 박서우 밖에 없다는 건 불행이자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말했는데?”

“예전이 없었지. 17번을 채워 본 적이 없으니까. 나한테 17은 그냥 이상적인 숫자라고.”

박서우는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 자신에게 속았죠. 조안나를 너무 높이 평가했던 과거의 박서우에게.

“그냥 말해. 나한테 말한 것처럼. 17번이 원칙이다. 다 채웠으니 끝내자.”

어이없습니다. 모든 게 저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놀라운 건 박서우라면 꼭 그렇게 말할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못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는 비겁자는 아니라는 거죠.

“내가 너야? 더구나 그 사람, 나하고 진지한 관계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진지라면? 혹시 너한테 청혼했어?”

“여보세요. 그렇게 급발진하지 마시고.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 그거 있잖아. 이 남자, 진심으로 나한테 원하는 게 있구나 하는 느낌적인 느낌.”

“가수지망생 딸은 어쩌고? 성질 보통 아닌 것 같던데.”

“한예진? 걔야 나한테 끔뻑 죽지.”

“때렸니?”

“미쳤어? 내가 애를 왜 때려?”

“너도 마음이 있긴 한가 보네. 결혼할 생각이면 빨리 말해.”

박서우의 말끝이 흐려졌습니다.


“왜에? 내가 결혼하면 섭섭해? 그래서 빨리 말하면 지금부터 정 떼시려고?”

박서우가 서운한 기색을 보이자 조안나가 징그럽게 달라붙습니다. 만짐만짐. 조물조물.

“저리 안 가? 어디 더럽혀진 몸으로 누구를 만져? 썩 물러가!”

“걱정 마. 세상이 두쪽 나도 너 두고는 어디 안 가!”

조안나는 박서우의 자그만 몸을 꼭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박서우는 왠지 안심됐죠.

“알았으니 제발 좀 가! 가라고!”

박서우가 간신히 조안나를 떼 놨습니다.

“결혼도 원플러스원 이런 거 없나? 나 데려가면 너도 같이 데려가는 거지. 어때? 그러면 좋겠지?”

헐, 또 선 넘었습니다. 조안나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게 풀어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게. 정말 그런 거 없나.”

목소리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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