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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6. 2024

지옥 체험방

"거짓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거짓을 팔아야 한다."

나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 한줄의 주문에서 시작된다. 


신기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쫓는 내 소문이 퍼졌는지 어느날 내게 익명의 편지 한통이 배달됐다. 

요즘 시대에 누가 우편으로 편지를 보낸단 말인가? 게다가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인쇄된 것이 아니라 수동타자기로 일일이 찍은 장문의 스토리가 있었다. 

뭐냐? 이 정성스런 설정의 헛소리는? 그런데 마지막에는 믿을 수 없는 손글씨 싸인이 있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이 네임 이즈 루시퍼 모닝스타.


믿거나 말거나 나는 루시퍼다. 그래 맞아! 당신이 생각하는 그 추락천사, 지옥의 군주. 

그게 나다. 


모닝스타가 라스트 네임, 하지만 성은 아니고 인간들이 붙여준 일종의 별명 같은 것이다. 

설명 좀 해 줄까?  

모닝스타는 너네 말로 계명성. 그러니까 금성인데 왜 내 별명이 됐느냐 하면… 

성경 14장 12절에 이런 문구가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내가 하나님의 빅피쳐에서 희생양 역할을 맡아 천국에서 쫓겨난 일은 다들 알고 있겠지?

그때 그냥 쫓겨난 게 아니라 커다란 불이 되어 땅속으로 쳐박혔는데 그 모습이 금성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해서 모닝스타가 됐다. 멋지지?


여튼 내 이름에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 이름은 나라마다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사탄이라고도 하고, 동양에서는 염라대왕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whatever.


중요한 건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인데, 잘 알다시피 가장 주요한 업무는 지옥 관리다.

나름 지옥의 최고 경영자 같은 것이다 보니 자잘하게 할 일은 많지 않고 지옥의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고민하거나 지옥의 비젼 같은 것을 제시하는 게 주 업무다.


본론부터 말하면 요즘 우리 지옥은 한마디로 위기다.  원인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 한가지만 대라고 한다면 바로 수용인원 초과!  인간들이 너무 지옥에 많이 온다는 것이다. 


지옥이 축구장 십만 개 크기, 이런 식으로 공간의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관리라는 것을 제대로 하려면 무한정 인간을 받을 수는 없다. 특히 어느 사회나 겪고 있는 중간관리자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 나 혼자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지옥은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게 뭐냐하면 바로 일방통행이라는 것.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옥이라는게 일단 들어오면 아무리 회개하고 잘하겠다고 반성문을 수백 장씩 써도 내보내줄 수가 없는 곳이다. 나도 어지간히 고생했으면 좀 내보내 주고 싶다. 


불지옥도 하루 이틀이지, 백날 천날 그거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인간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인간의 본성이 바뀌냐고? 불지옥 내성만 생기지. 


그런데 지엄하신 하나님이 이미 딱 정해 놓으셨다. 지옥은 고백(go back)이 없다고.

 

오죽하면 지옥의 문 위에 이렇게 적혀 있겠는가?


/이곳에 들어온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여튼 그 양반 고지식하셔서… 


그리하여 죄짓는 놈들은 끝없이 많고, 퇴소하는 놈은 아예 없고, 이미 죽었으니 죽어 없어지지도 않아 우리가 관리할 인간의 영혼도 무한정 늘어나는 추세다. 


유일한 희망은 전세계적인 인구감소인데.. 대략 2070년쯤 되면 세계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니 그때까지만 빡세게 버티면 어떻게 숨쉴 틈이 생기려나.


셀 수없이 긴 시간을 보내왔고 또 그럴 테지만 나에게도 언제나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2070년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데, 앞으로 50년 정도만이라도 지옥에 오는 인간들 수를 줄일 수 없을까? 


그래서 생각한 게 ‘지옥 체험방'이다. 짜잔~


인간 세상에 유행하고 있는 각종 체험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심플하게 말해서 아직 안 죽은 인간들에게 지옥을 살짝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면 겁을 잔뜩 먹고 좀 착하게 살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다. 

어때? 잘 될 거 같지?


원래 내가 운영 중인 지옥은 모두 지하 9개층으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지하1층 림보(Limbo)라는 곳은  착하게 살았지만 세례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사실상의 휴양지 같은 곳이어서 지옥체험방에서 빼기로 했다. 


괜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림보도 지옥이라 생각하고 서로 지옥 가겠다고 덤비면 어째?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다. 자잘한 것들은 생략한다.

여기 나오는 지옥관련 용어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옥탐방기를 써서 유명세를 얻은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인터넷에 검색하기 바란다. 


본론은, 지옥체험방에 입장하면 바로 지하2층 '음욕지옥' 체험방으로 연결된다. 

입구에는 어떤 죄를 지으면 이곳에 오는지 간단한 설명이 있다. 현재 지옥체험방에서 서비스 중인 체험방 몇 개만 소개한다. 


/2층 음욕지옥: 난이도  ⭐, 섹스에 환장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간 놈이 투옥된다.

>>> 음욕지옥에서는 속옷 바람으로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폭풍우를 감내해야 한다.   


/3층 식탐지옥: 난이도 ⭐⭐, 너무 많이 처먹기만 하고 할 일 제대로 안 하는 놈이 온다.

>>> 예전에는 먹거리가 부족해서 수형자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곳에 오면 더러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지옥에서 사육하는 켈베로스가 무작위로 찾아와 물어 뜯는다. 참고로 켈베로스는 종류에 따라 머리가 3개인 놈도 있다. 


/6층 이단지옥: 난이도 ⭐⭐⭐⭐, 해로운 사상을 믿고 퍼트린 이단자들을 위한 개인 맞춤형 지옥.

>>> 사이비종교 교주나 간부, 열성 신도들은 바로 여기로 직행, 최근에는 가짜뉴스를 퍼트려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놈들도 잡아온다. 뜨거운 관 속에 집어넣고 죄의 경중에 따라 각각 다른 온도로 구워준다. 레어, 미디엄, 미디엄웰던, 웰던 등.


/7층 폭력지옥: 난이도 ⭐⭐⭐⭐⭐, 말 그대로 폭력으로 흥한자는 이곳에서 망한다.

>>> 예전에는 자살자도 자신에게 폭력을 행한 죄로 이곳에 왔지만 최근에는 제외됐다.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놈만도 충분히 많다) 100도로 끓는 피의 강속에 잠수시키거나  뜨거운 사막 위에서 불의 비를 맞아야 한다.


현재는 이렇게 4개 방만 체험할 수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픈 일주일만에 인간들의 반응의 폭발적이어서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  -아직 탐욕, 분노, 사기, 배신 지옥은 인테리어 비용 때문에 오픈도 안 했다. 


처음에는 예약없이 현장 결제만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으로 방문객이 늘어나니 싫어도 어쩔 수 있나? 인터넷 예약 접수를 받아야지. 어디보자. 지금 예약하면… 대략 13일 후에나 입장 가능하다. 


그리고 지옥의 길은 외길이기 때문에 1인 입장이 원칙이다. 간혹 커플이나 팀으로 와서 같이 입장 시켜달라고 조르는 진상들이 있는데, 니들 지옥 가봐라. 진상짓이 통하는지. 웃기는 X들. 


입장료가 얼마냐고? 

사실 우리는 돈 욕심 없다. -그걸 어디 쓰나?- 


지옥체험방 만드는데 임대료 같은 초기 투자비용이 들긴 했지만 그건 모두 천국에서 부담했다. 왜냐하면 천국은 지옥과 반대로 요즘 너무 신입이 줄어들어 고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옥 안 오려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것이니까 천국에서는 지옥 체험방 설치에 무척 협조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옥과 천국의 설계는 처음부터 잘못된 측면이 있다. 지품천사가 했던가? 좌품천사가 했던가? 누가 했는지,, 모자라는 놈 쯧.. 


하나님이 이 정도 훌륭하게 인간세상을 창조하셨으니 대부분 인간들이 천국 가고, 극히 일부분의 부적응자만 지옥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천국은 지구 외곽을 9겹으로 둘러쌀 만큼 크게 만들고 지옥은 땅 속 일부분을 원뿔형으로 개조했다는데 상황은 정 반대다. 


천국의 시설과 관리 인력은 넘쳐 나는데 손님이 없어 문제고, 지옥은 좁아도 너무 좁아 미어터지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카엘이나 가브리엘 같은 천사장들이 앞장서 내 프로젝트에 천국의 예산을 투입한 것이다. 


어쨌거나, 개업 첫날은 무료입장이었다. 그런데 이틀 째 되던 날부터 입소문을 탔는지 대기줄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인원 제한을 위해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천원, 대기줄이 전혀 줄지 않았다. 그래서 만원, 대기줄이 더 늘었다. 이건 무슨 일인지. 비싸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나? 인간들은 수천 년을 봐 와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참 체험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옥체험방이라고 실제 지옥을 지상에 구현할 수는 없으니 간단한 정신계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이라고 하니까 비웃는 인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애초에 마법을 믿지 않을 것이면 지옥이나 천국이 있다고 믿는 근거는 뭐냐?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순간,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있다. 니들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 


실제 지옥이 아니라 마법이다 보니 타는 듯한 고통을 느껴도 실제 죽거나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체험을 끝내고 나올 때 쯤은 공포에 질려 다시는 지옥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하는데 재방문하는 놈들까지 있는 것보면 뭔가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가만 내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입장객 늘어나는 것을 마냥 좋아할 때인가? 애초에 의도가 그게 아니잖아!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지옥체험방 가맹점을 늘여 전국으로 확장하자고 사업 제안하는 인간들이 찾아왔을 때였다. 그냥 쫓아낼 수 없어 이야기는 들어봤다.


“그러니까 사장님, 진짜 말 못 알아들으신다. 기술공유만 해 주시면 나머지는 저희쪽에서 완벽하게 세팅해서 전체 수익의 10%를 로열티로 매달 꽂아드린다니까 그러네.”

“기술 공유 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닐텐데.”


“와우, 자만심 개쩌시네. 요즘 세상에 따라 할 수 없는게 어딨음? Ctrl+C, Ctrl+V 만 하면 끝인데. 큭큭.”

“그냥 가라. 진짜 지옥 구경 시켜주기 전에.”

“넹? 지옥 체험은 방금 하고 왔는뎅? 형, 진짜 어떻게 한 거에요? 완전 실감 나던데.”


정말 딱 미치는 줄 알았다. 이러니 지옥행 열차가 늘 만원일 밖에.  

안 그래도 열불나 죽겠는데 이번에는 반갑지도 않은 미카엘과 가브리엘 콤비가 찾아왔다. 게다가 용건을 들어보니 환장하겠다. 


“루시퍼님, 지옥체험방이 완전 대박이라면서요? 치품천사께 보고 했더니 우리쪽도 가만 있지 말고 천국체험방을 운영해 보라 말씀하셔서요. 물론 우리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천국을 홍보해서 인간들이 천국에 많이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야, 인간세상에서 체험방 운영하는게 쉬운 줄 알아?”

“지옥도 하는 일을 천국이 못할 게 있겠습니까?”


미카엘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보며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 자기들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도 말이다. 


“그럼 뭐 해보든가. 안 그래도 입장료 수익으로 할 것도 없어서 옆 건물 사뒀으니 니들이 사용해도 돼.”

“배려 감사합니다.”


활짝 웃음을 짓고 돌아갔지만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천국체험방이라고 홍보를 쎄게해서 처음에는 입장객이 좀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손님(?) 수가 뚝뚝 떨어지더니 며칠 못 가서 파리 날리는 꼴이 됐다. 


-이거 뭐이래? 천국이라더니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네.

-원래 천국에는 와이파이가 안 돼? 그럼 넷플릭스도 못 봐? 

-맨날 명상에.. 스마일에.. 하나님 영접 행사는 또 뭐야? 허세 쩔더라. 허경영인줄~


거들먹거리더니 쌤통이다 싶었지만 나도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지옥체험방의 손님은 나날이 늘어 아예 N회차 방문이 기본이 됐다. 뭐가 잘못됐지? 궁금하면 물어볼 수밖에. 


지옥체험방을 끝내고 나오는 입장객을 무작위로 선별해 설문했다. 


질문) 체험방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

대답) 난이도 4부터는 힘들죠.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질문) 그럼 다시는 오지 않겠죠?

대답) 아뇨. 이미 다음 주에 예약 했는데. 


헉!


질문) 힘들다면서 왜요? 

대답) 오늘 7층을 못 깼거든요. 공략법 공유 받아서 제대로 준비해서 오려구요.

-_-;;


질문) 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답) 사진 촬영 좀 하게 해주면 안 돼요?  인스타에 인증샷 올리고 싶은데.

되겠냐?


질문) 마지막 질문, 진짜 지옥이 있다면 이제부터 착하게 살고 싶은지?

대답) 착하게 살면 저기 옆에 체험방 같은 '천국' 가는 건가요?

질문) 그렇죠.

대답) 그냥 아무데도 안 가면 안돼요?


그래서 지옥체험방은 개업 석 달만에 접었다. 지옥의 수감인원을 줄이겠다는 당초 목표 달성은 물건너갔고 계속 했다가는 오히려 지옥에 오겠다는 놈들이 더 늘어날 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지옥체험방을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듣기에 천국체험방은 아직도 운영 중이라고 하니까. 워낙 입장객이 없어 예약도 필요없고, 상시 50% 할인 중이라고 하니 생각있으면 잘 찾아서 가 보든가. 


충고하는데, 너 착하게 살아라!


아디오스, 루시퍼 모닝스타.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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