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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5. 2024

원숭이 손 vs 미친 신

"거짓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거짓을 팔아야 한다."

나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 한줄의 경구에서 시작된다.


친구들과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하자는 제안에 예전에 읽었던 영국작가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단편소설이긴 해도 섬찟한 면에서는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못지 않았기에 친구들은 찜찜해 했다.


그러나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친구녀석 하나가 고향에 갔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미친 신'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는 경악에 빠지고 말았다. 그 녀석은 끝까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데..


먼저 '원숭이 손'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원숭이 손


주인공은 화이트 씨로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인 허버트가 있다. 어느 날 같이 복무 했었던 모리스가 찾아와 원숭이 손을 남기고 간다. 3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있으며 옛 수도자가 지녔던 것을 자기 동료가 얻었고, 그 동료는 3번째 소원으로 자신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빌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반신반의하면서 화이트는 집세을 내기 위한 200파운드를 받고 싶다고 원숭이 손에게 첫 번째 소원을 빈다. 그러자 원숭이 손이 잠깐 움직이는 것을 느꼈고, 화이트가 놀라 소리 치자 가족들이 달려온다. 가족들은 화이트가 잘못 본 것일 거라고 진정시킨다.


다음날이 화이트 가족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침에 일하러 나간 아들은 저녁 때 돌아오지 못하고, 대신 어떤 남자가 찾아와 아들이 죽었음을 알린다.


허버트는 일하던 공장에서 기계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죽었고, 그 보상금이 나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화이트가 벌떡 일어나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얼마가 나올 것이냐고 묻자, 그 남자는 200파운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던 화이트 부부는 잠에서 깬다. 그러다 문득 아내는 자신들에게 소원 2개가 남았음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화이트에게 아들을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라고 한다.


원숭이 손을 들고 아들을 돌려달라는 소원을 빈 후 화이트는 공포스러움에 원숭이 손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의자에 앉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화이트 부부는 체념하며 다시 침대로 온다. 그런데 잠시 후,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화이트는 용기를 내 아래로 내려갔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직감하고 바로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그고 별 일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아내는 의아하게 생각하다 한 가지 깨달았다. 아들 허버트가 묻힌 묘지는 2마일 떨어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만약 걸어온다면 지금쯤 도착할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아내는 이제야 허버트가 집에 도착했다며 당장 문을 열라고 소리친다.


아내가 직접 급하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잠금 장치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남편에게 문을 열라고 하지만, 남편은 다급하게 원숭이 손을 찾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내는 곧 문을 열 것 같았다.


아내가 마침내 잠금을 푸는 순간 화이트는 원숭이 손을 찾았고, 미친 사람처럼 3번 째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두드리는 소리는 없어졌고 문 밖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원작: 윌리암 위마크 제이콥스 (나무위키에서 재인용)


다음은 친구녀식이 말한 비슷한 이야기 '미친 신'을 소개하겠다.


미친 신

우리동네에는 솔까 미친 신이 하나 있다.

이 신은 꼴에 신이랍시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문제는 아무 분별 없이 아무 소원이나 다 들어주는 것이다.


명색이 제대로 된 신이라면, 이 소원은 들어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구나. 그러니까 들어주지 말아야지, 이정도 분별력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아무리 미친 신이라도 아무 때나 마구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1년에 단 하루, 생일에만 소원을 빌 수 있다.

실수로 날짜를 틀리거나, 솔직히 자기 생일도 틀리는 놈이 있다는게 잘 믿기지 않지만, 장난으로라도 생일이 아닌 날에 함부로 소원을 빌었다가는 뒤끝 장난 아닌 신의 괴롭힘을 받게 된다.


어느 정도의 괴롭힘이냐고? 동네 신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 아닌가? 자칫하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한번은 동네에 유명한 망나니 아들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그 시간이 생일밤 자정을 약간 지났다. 그랬더니 죽으라는 아버지는 죽지 않고 소원을 빌었던 당사자인 아들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것도 하늘 보면서 소원을 빌자 마자.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우연일수도 있지만 이 일이 알려지고 나서 사람들은 소원을 빌 때 확실히 자기 생일이 맞는지, 혹은 자기가 알고 있는 생일이 사실은 태어난 날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좀 일찍 들어갈 목적으로 조작된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예상은 했겠지만 동네 신이다 보니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 같은 전국구 소원은 능력 밖이라 들어주지 않는다.

굳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자가 되게 해달라,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어야 하지만 권장하고 싶지 않다.

 

벌써 그런 소원을 빌었던 인간이 있었다. 왜 아니겠나? 그 인간은 나름 좋은 대학 나온 지식층이라 '로또'나 '금덩이 많이' 이런 소원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었던 것이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다. 적정하고 바람직한 소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끝이 더럽게 안 좋았다.


소원을 빌고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떴더니 거실에 한가득 값비싼 재물이 쌓여있었다. 그중에는 다수의 귀금속과 현금다발도 포함됐다.

일시적으로 이 인간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자가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재물들이 우리 동네 누군가의 결혼예물이거나 비상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도 동네 사람들은 이 소동이 미친 신이 한 과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인간을 도둑으로 몰아 경찰서에 보내거나 콩밥을 먹이지는 않았다. 다만 제법 배웠다는 인간이 당치도 않게 분별없는 소원을 빌었다는 것에 분노하고 동네에서 쫓아냈을 뿐이다.


웃기는 일이다. 엄밀히 보면 분별없는 짓을 한 건 신인데, 신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후환이 두려웠던 탓도 있겠지만.


자 그럼 생각을 해보자. 어떤 소원을 빌면 좋겠는가? 마침 생일도 다가온다.


대통령이 되게 해달라.. 전국구 소원, 당연히 안된다.


그럼 10억원만.. 솔직히 어떤 식으로 돈을 줄지 너무 걱정이다. 미친 신이 동네 은행을 털기라도 하면 어쩌나?


안 죽게 해달라. 잘만 하면 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죽지 않고 계속 아프고 늙기만 하면 어쩌지? 그래서 수정!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해 주세요~


문제가 하나 있다. 미친 신이기는 해도 바보는 아니다. 소원은 언제나 한가지! 그래서 3개가 결합된 소원은 무효로 처리된다.

머리를 굴려서 이번 생일에 안 아프게 해달라고 하고, 다음 생일에 늙지 않게 해 달라고 하고, 그 다음 생일에 안 죽게 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오! 좋다!

 

이렇게 나의 소원 3개년 계획이 시작됐다. 첫해 생일소원으로는 안 아프게 해달라. 일단은 안 아픈게 중요하니까.

미친신은 '오케이'라고 응답하지는 않았지만 소원은 순조롭게 이뤄진 것 같았다. 그 해 1년 동안은 매년 걸리던 흔한 감기로 고생하지도 않았고 조금이라도 아파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2년 째, 늙지 않게 해달라. 아싸! 이 소원도 문제 없는 것 같았다. 잘못된 소원에 대한 부작용이 없었고 매일 거울을 들여다 보니 확실히 노화가 멈춘 것 같았다. 물론 겨우 1년 동안 얼마나 늙겠냐만은…


드디어 대망의 3년차!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저를 안 죽게 해 주세요.'


소원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앞으로는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됐다고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좋은 일을 자랑도 않고 혼자만 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현명한 소원빌기에 대해 자랑했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심지어는 따라하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그리고 다음 소원으로 뭘 빌까를 고민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 다음 소원은 미남 영화배우처럼 외모를 바꿔달라고 하자!

그 다음으로는 아무리 먹어도 살 안찌게 해달라고 해야지.


발상을 바꾸고 보니 생일마다 빌 수 있는 소소한 소원은 차고 넘쳤다.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을 테니 살면서 딱히 거리낄 것도 사라졌다. 그래서 주의가 산만해진 탓일까?

별 것 아닌 일로 우습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별로 아프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수술실에 들어갔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임마, 괜찮냐?"

"괜찮지. 그럼, 내가 아프기라도 할 것 같냐? 말했잖아. 신한테 아프지않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그러나 친구의 표정은 심각했다.


"왜 그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너 말이야. 교통사고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다는데 움직일 수 있나 해봐."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프지 않게 신한테 빌었다니까."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발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어, 나 왜 이러지?'


그때 의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선생님, 저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된 거에요?"

"유감스럽게도 척추 손상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추후 경과를 살펴 보시죠."


미칠 것 같았지만 당장은 하반신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오른손도 안 움직이는데요?"


의사와 친구들의 표정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 무의식결에 내 오른손을 보기 위해 목을 움직였는데 있어야 할 곳에 내 손이 보이지 않았다.


"수술하다가 오른쪽 손목 아래가 괴사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교통사고 전부터 진행됐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자각증세가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댜.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절단했습니다. 안 그러면 오른팔 전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머리가 띵해졌다. 이런 미친 신이 결국 사고를 쳤구나!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했더니 통증만 없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팔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아무 통증을 못 느꼈던 것이고.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를 당해도 아프지는 않았지만 다칠 것은 다 다쳤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나? 최악의 경우 반신불수에 오른손이 없는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죽지 않을 테니 평생이 아니라 영원히 이꼴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망할 미친 신 같으니, 소원이고 뭐고 딱 죽고 싶다.//


여기까지가 친구녀석이 풀어낸 이야기다. 독자님들이 보시기에 어느 이야기가 더 무섭나?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난 한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그놈이 그놈 아니야?

신이란 것들이 전부 한통속이어서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는 것이라면?

여튼 모두 조심하고 살자. 이제 신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왔으니..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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