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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장롱안에서 울다지쳐 잠든 밤들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5)

스무번째 신호등 신호대기중이다.    

 

바로 여기, 스무번째 신호등 앞에서 남편과 나는 자주 택시를 탔다.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렸던 단칸방이 있다. 우리는 침대도 없는 방에서 늦잠을 자고 이불도 개지 못한 채로 대문을 나섰다. 퇴근해서 현관을 들어서면 비밀스러워야 할 침실은 널브러진 이불에, 갈아입은 옷가지들에, 전날 밤 먹은 야식 부스러기들까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단칸방은 그이후로도 쭉 그랬다. 내 마음의 어두운 주름이 그 단칸방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숨을 곳이 없었던 그 단칸방에서 나는 자주 장롱 안으로 들어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밤새 장롱 안에서 우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면 남편은 제때 말리지 않아 눅눅해진 이부자리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곯며 단잠을 잤다. 출산을 하고 몸조리하러 친정에 한달간 가 있었을 때였다. 어느 밤 그 눅눅한 이불에 큼지막한 신발자욱을 남기며 도둑이 다녀가기도 했다. 도둑은 내가  출산하러 가기 직전 화장대에 올려둔 나의 단 하나였던 결혼 예물인 반지 그리고 텔레비젼을 가져갔다.


경찰이 와서 둘러보더니 동네 좀도둑인 것 같군요. 했다. 그게 다였다. 그 후 우리는 또 다른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다 지나간 일이다.


읽던 소설이나 계속 읽어야겠다.    




태풍이 상륙한다던 날 아침에 기자들은 전날까지 그렇게나 떠들어댔던 것이 민망했는지 태풍이 조금 늦게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한결 같이 말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그와 나는 떠났다. 그는 봉골레 스파게티의 주재료인 모시조개를 사야 된다면서 우리가 묵기로 한 비진도펜션 바로 옆에 있다던 해질녘시장을 네비게이션에서 찾았다. 네비게이션은 해질녘시장 따위는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1년 내내 사무실과 집 외에는 차를 운행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내비게이션은 5년 전 중고차를 살 때 그대로였다. 이런 사실을 그에게 말하고 죄스러워하고 있으니 그가 괜찮다며 나를 토닥였다. 그가 나를 토닥이니 내가 진짜 대단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아 무척 불쾌했다.


결국 우리는 비진도펜션 근처에서 두 시간을 헤맸으나 해질녘시장을 찾지 못했다. 꼭 모시조개여야만 하냐고 그의 눈치를 보며 내가 묻자 그는 꼭 그래야만 된다고 했다. 봉골레 스파게티가, 그러니깐 그 어떤 스파게티도 내 침샘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모시조개를 찾아 다른 시장을 찾았다. 아침 10시에 집에서 출발한 우리는 저녁 6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결국 모시조개 5천원어치를 샀다. 봉골레 스파게티가 뭔지는 몰라도 비진도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던 봉쥬르 마트에는 모시조개가 있었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우리는 다시 비진도로 들어갔다.



펜션에 도착한 그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펜션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같지도 않은 풀장에는 나뭇잎과 잔 나뭇가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남루하게 늙어버린 남자가 뜰채로 나뭇잎 같은 걸 떠내고 있었다. 주변에는 말쑥한 새 건물들이 뽐내듯 삐쭉삐쭉 서 있었다.
 

로비에서 키를 받은 그는 말없이 로맨틱이라고 쓰여진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문을 여니 곰팡이냄새가 났다. 벽지는 울긋불긋했고 침대는 부끄러움도 없이 방의 중간에 떡 하니 놓여있었다. 뭔가를 가리거나 덮을만한 가리개나 덮개 하나 없었다. 유리로 된 작은 티테이블에 컵을 놓을 때마다 부딪히는 소리가 내 취미에는 맞지 않았다. 그의 취미에도 맞지 않아 보였다.


 “좀 그렇죠? 오늘은 할 수 없고 내일은...” 


 “전 옮기는 거 싫은데 어쩌죠? 당신이 싫지 않으면 그냥 여기 있어요. 나쁘지 않아요, 여기”


그의 말을 가로채며 마음에도 없는 내가 말했다.


나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기에 괜찮기는 했다. 신혼방과 펜션이 다른 것이 있다면 침실이었다. 나의 비밀스런 침실을 그 어떤 가리개도 없이 배치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혼 방에는 침대를 들여놓지 않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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