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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6)

스물 일곱 번째 신호등 앞이다.        


그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기 시작했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나오니 욕실 문 바로 옆에 블루투스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샤워하라고 그렇게 했어요” 


라고 물어보지도 않을 것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음식을 만드는 남자의 뒷모습은 마치 구도자 같았다. 나는 크게 감동받은 나머지 하루종일 모시조개를 사러 다녔던 일을 깡그리 잊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옆으로 가서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요리하는데 집중하느라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위장했다. 샤워하고 나온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그는 두려웠을 것이다. 
 나는 준비해 온 덮개 몇 개를 꺼내 유리테이블에도 깔고, 우리가 앉을 저녁상 아래에 얇은 담요를 방석을 대신해서 깔았다. 그가 곁눈질로 쳐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2박3일간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섹스를 하고 탱고를 췄다. 지루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는 무슨 프랑스 요리를 해서 나를 먹였고, 할 일이 없던 나는 책을 읽다가 지루해서 잠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 그는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일을 했고 내가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잠들어 있었다. 점심이었다. 그는 또다시 요리를 했다. 나는 그걸 먹어야 했고, 고마워요. 라고 따뜻하며 느긋한 눈빛을 건네야 했다. 일부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온전히는 아니었다. 그리고 또다시 잤다. 밤이 오기 전 그는 또 무언가를 만들어서 나를 먹였다. 최근 10년간 밥 같은 밥을 하루 세 끼 다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도 외로워 보였다. 


2박3일간 나는 그의 요리하는 뒷모습과 잠든 모습만 본 듯 했다. 함께 있었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드문드문 자신의 생애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그에게서 나오는 아릿한 기운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상처 많은 아이가 그 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그것을 숨긴 채 아닌 척 의연한 척하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서른 두 번째 신호등 앞이다




기자들은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태풍이 올라오기는 올라오는데 이쪽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보도를 의심스러워하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걸 멈추기 시작했다. 온다는 태풍이 오지 않는 건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올 것 같은 마음이 돌아서는 걸 확인하는 일은 다행스럽지도 다행스럽지 않은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그 방이 지겨워졌다. 


 그 펜션을 떠나기 직전 그는 탱고를 추자고 했다. 다 추고 나서 그는 말했다. 


 “어제보다 느낌이 덜한 건 왤까요? 어제 아침에는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된 듯 했어요.” 


 나는 웃으면서 속으로 말했다. 


  '어제는 섹스를 한 다음 날 아침이었고, 오늘은 섹스를 하지 않은 다음 날 아침이기 때문이지, 바보야.'
 

우리는 2박3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펜션을 나섰다. 밖에는 바람과 함께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렇게나 떠들어대던 태풍이 이제야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와야 되는 태풍이라면 오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였다.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삼십분쯤 운전했을 때에는 시야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졌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만 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는 멈추지 않았다. 차의 지붕위로 굵은 빗방울소리가 두둑두둑 타악기처럼 연주되고 있었다. 그의 소설 이야기가 타악기소리 사이로 연주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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