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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아찔한 놈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7)

나는 지금 출근길인데, 운전하면서 내 소설을 손보고 있다, 위험하다고? 안다. 하지만 난 내 소설들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신호 대기 중에 휴대폰으로 고쳐 쓰기를 한다. 거의 3년째 이렇게 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고 난 적은 없다. 난 그렇게 허술한 여자는 아니다.


왼쪽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갑다. 신경 쓰인다. 왼쪽 눈 옆 검버섯을 어쩔 거야. 라고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검버섯인 것처럼. 그리고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내 옆엔 아무도 없다. 그 보기 싫은 검버섯은 내 얼굴에 그려진 타투 같다, 심지어 타투가 점점 진해지면서 커지고 있다. 나는 아주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해본다, 시커먼 검버섯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얼굴 전체에 번져있다. 끔찍해라!    


오늘은 신호등 운이 별로 좋지 않다. 신호등 운이 별로 좋지 않는 건 내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지각을 면하려면 신호등 운이 좋아야 하지만, 내 소설을 손보려면 신호등 운이 안 좋아야 하니까.    


지금은 마흔 다섯 번째 신호등 신호대기중이다. 


이곳은 내가 운전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출근할 때 늘 시동이 꺼져서 애를 먹던 곳이다. 경사로라고 하기조차 부끄러운 아주 야트막한 오르막이었는데 수동 기어 차였기에 또, 나는 초보운전자였기에 시동이 자주 꺼졌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고 나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두 마리의 사자처럼 서로를 할퀴며 출근했다. 한 사람이 내릴 때쯤이면 이미 마음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그런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상처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아침마다 이 신호등 앞을 지나야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페이스 북에 포스팅 되어 있는 또 다른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열세번째 소설 /아찔한 놈


지금 이 차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은 그 거지 같은 놈에게서 받은 거다. 그 놈은 내 생일선물로 시디세트를 집으로 보냈다고 했다. 물론 그 놈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 따위를 알 리가 없다. 내가 그걸 사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도 시디가 오지 않길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짠돌이 같은 놈. 몇 푼 된다고...’ 


십 만 원쯤 되는 전집이었다. 돈만 많은 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틀어주는 음악 중 몇몇 곡을 골라 매년 음반하나씩을 발매했는데 그것들을 다 모아놓은 전집이었다. 월드뮤직이 뭔지 나는 잘 몰랐지만 DJ는 월드뮤직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가수도 나오고, 이름도 첨 듣는 어느 나라의 가수가 부른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쪽 음악도 자주 틀어주곤 했다. 나는 그런 음악들이 내 정서와 너무나 꼭 들어 맞길래 나란 여자는 월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드적인 게 뭔지는 나도 잘 몰랐다. 


 “누나야, 시디 받았나?”


 그 거지같은 놈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뭔 시디?” 


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난 그런 여자였다.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 찌꺼기를 마음에 두면 나만 손해니깐. 
 

“누나 생일 선물로 보낸다 했잖아?” 


 “못 받았는데? ”


그날 그 칠칠맞은 놈이 받는 곳 주소를 404호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생일이 두 달 쯤 지난 뒤였다. 나는 당장 빌라 총무님께 전화를 넣어 404호 전화번호를 받았다. 


 “402호입니다. 혹시 택배 온거 없던가요...두달쯤 전에...” 


 “아이고, 무시라...그걸 와 인자 전화를 하능교....우리가 이번주 토요일 이사간다 아입니꺼. 내가 저걸 받아들고 우째야 될지를 몰라가꼬...”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누나야, 다행이네. 이사 가기 전이라서.” 


 라고 그 칠칠치 못한 놈이 말했다. 난 운전 중에 내 소설 원고를 퇴고씩이나 하는 사람이므로 그런 꼴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던 그 놈은 그런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누나야, 트롯 틀면 안되나”


라고 딱 한번 말했다가 내 표정이 얼음장이 되는 걸 보고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간혹 내 차 안에 있는 미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비뚤어진 코를 만지기도 하고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걸 정말이지 ‘너무’ 참을 수가 없었다. 한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다시는 그 애를 만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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