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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참말로 아찔했다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8)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자길래 내가 그의 가게 근처엘 갔다. 까만 봉지를 들고 그는 내 차를 탔다. 근처에 있는 만리산 공원 주차장으로 가자더니 까만 봉지에 담겨 있는 것을 꺼냈다. 이따가표 야채 죽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이게 뭐고”


 라고 말했다.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


 “뭐긴 죽이지”


 라는 것이었다.


 “이걸 여기서 먹자고?”


했더니,
 

“데피 왔으니 개안타” 했다.


 “피치 못할 때는 어쩔 수 없어도 나는 일회용 음식은 안 먹는다”라고 했더니


 “와?”


라고 말하면서 이따가표 야채죽 두 개를 몽땅 혼자 먹어치웠다. 나는 또 결심했다. 한번만 더 이러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이 결심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계속 만나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문자 한 줄을 그로부터 받았다.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두고두고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두고두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오십한번째 신호등 신호대중이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너처럼 천박한 놈은 처음 본다”


 그러자 며칠 있다가 그 거지같은 아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처럼 아찔한 놈은 처음이었다고? ㅋ 누나는 누나가 고상한 줄 알지? 누나 같은 여자를 제일 밥맛 없어한다, 남자들은. 나도 밥맛없었다. 잘 지내라, 누나야~~”


 나는 그제서야 내가 그 거지같은 놈에게 제대로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참말로 아찔했다.



『벼랑끝 고약한 위치에 자란 나무가 균형을 잡기 위해 뒤로 뻗어야 하는것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모욕이 그녀 몸을 똑바로 펴게 하는 것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글귀였다. 그 무렵 나는 프루스트에 빠져있었는데 그런 아찔한 문자를 받은 뒤 한달 가량 이 문장을 하루에도 수십번 외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위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는 견디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그의 코는 정말 비뚤어졌는데 어릴 때 다쳤다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지?”


 라고 내가 묻자 그는 웃으면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니 들어봐라”


 라고 했다.


 “누나야, 내가 달 목욕하는 목욕탕에 때밀이 아저씨가 있는데 그 아저씨가 내보고 때밀기 좋은 몸이라는기라”


  “ 왜?” 


라고 내가 묻자,


 “그는 알면서...”
 

라 말하며 괜히 몸을 배배 꼬았다.


 “뭘?” 


 “에이, 와그라노. 내가 딱 보믄 좋잖아.” 


했다.


그러면서 때를 정말 잘 미는 아저씨라고 칭찬했다. 나는 웃겼지만 그런 셈 치고 넘어갔다. 그는 때밀이 아저씨와 있었던 일을 내게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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