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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나는 그렇게 허술한 여자가 아니니까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10)



그러면서 그는 시간 날 때마다 포르노그라피를 즐겨본다고 했다. 


“아직도 야동을 본다고? 그런 건 20대 때 졸업하는 거 아이가?”


“누나는 몰라도 진짜 남자를 너무 모른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거를 생각한다.”


“글나? ”


나는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애는 계속해서 야만인지, 야애인지 그런 말들을 했다.


“야애? 그게 뭔데?”


“그것도 모르나? 야한 만화, 야만. 야한 애니메이션, 야애”


그러면서 그 천박한 놈이 휴대폰을 꺼내서 뭔가를 보여줬다. 그는 그런 야만을 보여주며 낄낄거렸다. 내 존재가 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듯 했다. 나는 다시는 이런 놈을 만나지 않겠다 결심했다. 


“누나야, 내가 시디 사줬으니까 누나도 내한테 선물 하나 해라”


그가 말했다. 


“필요한 거 있나”


“어, 혁대 하나 사도. ”


“알았다.”


나는 바로 다음 날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려 벨트를 샀다. 손수건도 골랐다. 받는 사람의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내 취향대로 골랐다. 선물이란 내가 받고 싶은 거를 하는 게 좋을 듯 했다. 역시 그는 매우 좋아라 했다.


“누나야. 혁대가 좀 있어 보인다.”


“손수건도 있다.” 


“메이커 있는 거네? 비싸제?”


“싸구려는 아니지.”


“어쨌든 고맙다, 누나야.”


나는 얘를 만나면 갑자기 시궁창 같은 데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날도 내 존재가 어디론가 곤두박질 치는 것 같았다. 벨트를 전해 준 다음날 그는 이런 문자를 내게 보냈다. 


 “누나야,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낫겠다.”    




칠십일곱번째 신호등 앞이다.


법원쪽으로 가려면 이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 우리는 가정법원엘 갔었다. 가정법원으로 들어가는 현관출입문 앞에서도 우리는 으르렁거렸다. 난 짐승이 된 내가 너무 수치스러웠다.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현기증이 났고 구토를 할 것 같았고 내 주위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신호등을 지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앞을 지날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다시 내 소설 속으로 숨는다. 이십여년전 앳된 새색시가 장롱 속으로 숨어 들었듯이.    



나는 남은 내 생애에 이런 인간을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음이 너무 상한 나머지 철학관을 찾았다. 아는 언니가 알려준 용하다는 철학관이었다. 철학관 아저씨는 내가 남자 복이 없으니 평생 남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남자들이 나를 가까이 하면은요?”


나는 물었다. 단발파마를 한 그 아저씨는 따분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깊은 숨을 쉬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내뱉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남자 복이 없다고요. 사람이 말을 하면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배운 사람 같아 보이는데 왜 그래요 아줌마.”


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오늘 따라 차가 많이 막힌다. 비오는 탓이다. 얼마 전에는 출근하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아흔 아홉 번째 신호등을 지나면 내 근무지가 있다. 이 십 여 년 만에 다시 발령받은 곳이다. 이곳에 처음 근무할 때 나는 그 청년과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이 십년이 지나 다시 오니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겠지 했던 것들이 변하기도 했고, 변했겠지 싶은 것들이 변하지 않기도 했다. 도무지 알 수 없다. 내일 내가 아흔 아홉 개의 신호등을 지나게 될지조차.

    

이제 나는 화장을 시작해야 된다. 여러분께만 살짝 말하는 거지만, 아까는 소설퇴고 얘기만 했는데 사실은 화장까지 한다. 하지만 염려마시라. 아직 한 번도 사고 난 적은 없으니까. 난 그렇게 허술한 여자가 아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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