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모란이 남편과 별거한 지 8개월째로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 얘기는 엄마에게도 언니들에게도 입조차 뗄 수 없었다. 엄마와 언니들은 모란이 혼자 지낸다는 짐작은 했지만, 모른 체 했다. 말로 내뱉어버리는 순간, 모란의 불행을 돌이킬 수 없을것만 같아서였다. 엄마와 언니들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모란은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수 없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동료들에게 하소연해봤지만 슬픔이나 고통이 줄어들기는 커녕 난데없는 소문만 무성해진다는 걸 모란은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래서 모란은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말은 거짓말을 일삼는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라 생각했다.
슬픔이란 것은 돌멩이로 묶어 우물같은 마음속 저 깊은 바닥에 가라앉도록 해야 더이상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은 자가분열하는 습성까지 있는지 수백수천수만 개의 유사슬픔 알갱이로 쪼개어져 모란을 괴롭혔다. 그 무렵 모란의 몸과 마음은 가지각색의 슬픔으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굼벵이처럼 몸을 오그리고 슬픔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어느 날, 얇싹한 요 위에 두었던 휴대폰이 모란의 몸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모란! 나다.
-누구시더라?
-가시나야. 나다, 시향.
-아, 시향아. 어쩐 일이고? 지금 어딘데?
-근데 니 목소리가 와 그래 다 죽어가노. 뭔 일 있나.
-아니다. 누워 있어서 그런거지. 근데 어디고? 중국에서는 완전히 온 거가?
-그라모, 왔지, 왔으니까 전화했지. 모란아. 명자 이모한테 니 소식은 들었다. 남편 하고는 같이 안산다매? 축하한다야.
모란의 언니와 시향의 이모는 동창이었다. 아마도 모란의 언니가 말한 모양이었다.
-가시나야, 그기 뭔 소리고. 남의 불행이 니 행복이가.
-내 진심을 그런식으로 곡해하지 마라. 그라지 말고 얼굴 함 보자. 나 인자 완전히 부산 왔다.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 받은거가?
-아니, 남편 하고 아들은 아직 중국에 있고 혼자 왔지. 말하자면 휴혼이다, 휴혼.
-휴혼이 뭐고?
-문디야, 아직 그것도 모르나. 졸혼을 앞둔 사람들의 사전 절차지. 됐고, 우리 허심청 앞에서 만나자.
-그라지모
그녀들이 만난 곳은 클럽 앞이었다. 시향은 모란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 야, 아무 생각 말고 들어가자. 부킹 하면서 다 잊고 한바탕 놀아 보자
- 그래도 우리가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밥 묵으면서 얘기나 하자. 그라고 나는 대학 1학년 때 클럽 가보고 30년 동안 한 번도 안 가봤다야.
- 와그리 살았노. 잠자코 이 언니만 따라오니라.
그리하여 모란은 30년 만에 클럽이란 곳엘 갔다.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무어라 말을 나누고 있었고 나름의 방식대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만큼 커다란 소음을 뚫고 말이, 마음이 오간다는게.
-모란아,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한 거 아니드라이가. 오늘은 맘 내려놓고 몸을 흔들어봐라, 미쳤다 생각하고. 미친년이라고 하든 말든 뭐가 겁나노.
머뭇거리는 모란의 팔을 잡아끌며 시향이 스테이지로 나갔다. 사이키 조명 아래 모란의 얼굴이 번개가 지나가는 하늘처럼 쩍쩍 갈라지며 번쩍거렸다.
-나쁘지 않제?
시향이 소리를 질렀다.
-그래, 기분 좋다아아.
모란도 목청껏 소리 질렀다. 이렇게 크게 고함을 지르는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까짓것. 나도 모를 것이 인생인데.
끝까지 가보는 거야~~~가즈아~~~
모란도 가슴이 뻥 뚫려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 달려보자아아~~~
그리하여 다음날 모란은, 그녀의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던 50이라는 나이에 10센티 하이힐을 신고 비틀거리면서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에어로빅 한번 배워 본적 없었던 모란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