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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0. 2019

부자 때밀이 아저씨가 그랬거든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9)


“누나야, 알고 봤드만 그 때밀이 아저씨가 억수로 부자라는기라, 다 자기 말이지만.” 


 “근데 와 때밀이를 하는고? ” 


 “심심풀이로 한다카데. 이상하기는 했지. 목욕탕에서 잠을 잔다 하더라고....”


 “그 아저씨 희한하네. 내 같으믄 돈 있으믄 그래 안 산다.”


 그는 내 말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그 아저씨가 돈을 투자하라는기라” 


 “어디에?”
 

“노름하는데 꽁짓돈 천만 원 투자하믄 일주일 있다가 천백만원을 준다믄서.”


 “그래 짭짤하믄 그 아저씨가 하지 와 니한테 투자 하라라노. 근데 단위가 쫌 크네.” 


 “에이....돈이 되니깐 내 한테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이지. 그런데 그 사기꾼 같은 놈이 돈을 투자하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나도 안 돌리주드라꼬” 


 “뜯깄는가베? 얼마나 뜯깄노” 


 “그 새끼 그거 그라고 난 뒤 목욕탕에도 안 나타난다이가. 나쁜 놈이제?”


 “그래서 얼마 뜯깄노?” 

 “처음에는 오백을 투자하라하드만 내가 싫다고 하니깐 삼백, 삼백도 없다카이 백만 원을 투자하라드라. 그래도 쪼매 미심쩍어서 안 한다캤드만 오십만원이라도 투자하라고 어찌나 졸라대는지 내가 오십만원 없다고는 몬 한다이가. 그래서 투자했지. 일주일 있다가 오십오만 원 주겠다카드만 목욕탕에서 사라짔다. 그 자슥.
 누나야, 이런 어두운 세계 이야기는 첨 듣제? 재미난 얘기 더 해 주까?“ 


 라며 그가 눈웃음을 쳤다.


 “해봐라.”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내게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했다.


 “누나는 세수 얼마나 자주 하노?”


 “하루에 두 번은 하지. 아침하고 저녁”
 

“그리 말할 줄 알았다. 세수가 뭔지 알기나 하나? 누나야, 세수가 뭔지 생각해봐봐. 어두운 세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다”


라는 것이다.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누나야. ‘세수’ 라고 말할 때 맨 처음 발음 되는거 있제, 그거를 힌트로 생각해 봐라”


“초성 말하나?”


“맞다. 초성”


“시옷 시옷이네”


“맞다, 시옷 시옷.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 하는 거다”
 

그러면서 그는 또 배시시 웃었다.


“알겠다. sex. 맞제?”


“누나 천재네. 진짜 빨리 맞추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했제?” 


그러면서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혼자서 노래방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거든. 거기에 도우미 아줌마들이 있거든. 나는 그 아줌마들하고 세수한다.”


“옴마야, 니는 그런 얘기를 내한테 뭐 때메 하는데? 나는 나름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뭔데? 나는 그런 거는 잘 모르겠고 일단 재밌다이가. 재미없나? 누나가 모르는 어두운 세계니깐 소설 쓰는데 도움도 될끼고. 그라고 남자들 다 내처럼 한다. 내만 이런 거 아니거든. 나는 아주 평범한 싸나이 입니다요. 누나는 몰라도 너무 뭘 모르네”


나는 그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어야할지 대놓고 경멸을 해야 할지를 한참동안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또 내게 물었다.


“누나야, 그러면 카드가 뭔지 아나”


그를 경멸할 타이밍을 놓친 듯 했다.


“그건 또 뭔데”


“남자하고 여자하고 할 때 있제... 그거...”


“그것도 초성을 말해봐라” 


“키엌 디귿”


나는 눈치 챘지만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 했다. 그도 입 밖에 내지 않기를 바랬지만


“콘돔” 


이라고 그 거지같은 놈이 말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웃어버렸다. 이런 놈하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내가 경멸스러울 지경이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돈이 많았기에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많은 것과 돈만 많은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계속 내 앞에서 신호가 바뀐다. 이러다가 지각할 수도 있겠다.


육십다섯번째 신호등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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