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안 팔려서 엘리베이터에서 10층 아주머니를 만나도 눈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지낼 때 10층이 먼저 이사를 나갔다. 그 뒤론 개구쟁이들이 뛰는 소리가 아침마다 들렸다. 이젠 새로 이사 온 윗층 새댁의 눈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새댁을 만나면 명랑하게 인사를 했다.
그 집을 먼저 떠나고 싶었던 나는 괜히 의사네가 원망스러웠다. 낭패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먼저 떠나야 폼이 사는 거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의사네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집이 팔리지 않아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았다. 어느 날 집을 보러 오겠다며 내 나이또래의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았다. 우리 집은 거실 한쪽 벽이 모두 책이었는데 여자가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책을 좋아하시나봅니다. 제 남편이 소설가거든요.”
함께 온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그리고 남자는 말했다.
“제자 중에 등단한 사람도 있지요...허허허...”
나는 친절한 사람은 아니므로 못들은 체 해버렸다. 게다가 젠체하는 사람은 일단 내 마음의 괄호 밖으로 밀어두는 성격이라 쎄한 눈빛을 감출 수 없어 베란다 밖 먼 산만 바라보았다. 분명히 이름도 없는 잡지에서 돈 받고 등단시켜주는 그런 곳이려니 했다. 그땐 내 마음이 괜히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럴듯한 소설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고 있을 때 그 남자가 제법 알려진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6월 민주 항쟁 때 맹활약을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부부가 입주한 뒤 두어달 후, 세면기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이 와서 그를 만났을 때 남자는 소설가적인 아우라 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아우라가 없는 사람은 가짜라고 쉬이 판단해버리므로, 민주항쟁 이후 그의 삶을 내 맘대로 속단했다. 별 볼일 없이 교수로 편안하게 살았구나 라고. 그의 아내가 이이는 물물대학교 국문과 교수지요, 라고 우리 집을 보러 오던 날 자랑했었다. 정말이지 남자는 아무리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치약처럼 후광이라고는 없었다.
나는 내 소설이 어느 정도의 깜냥이 되는지 궁금해서 소설을 봐 주십사고, 아우라는 없지만 유명한 그 소설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주인인데요, 집 때문은 아니고요, 제가 소설습작을 하고 있는데 제 소설을 봐주실 수 있는가 해서요.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남자에게서는 아무 답이 없다. 어쩌면 나를 꽃뱀류의 여자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소설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주인공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지, 불행으로 밀어 넣을 건지가 고민스럽다.
인생은 행복한 게 최고인데 소설의 행복한 결말은 어쩐지 후져 보인다. 난 후진 소설은 쓰기 싫으니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