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답했다> - 준가의 글 2
물에서 살았다. 몸이 약해 운동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엄마의 생각에, 오빠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처음 수영장에 갔다. 물을 좋아하던 6살의 아이는 처음 수영을 배우고는 곧바로 선수반에 던져졌다. 선생님이 정말로 나를 들어서 선수반으로 던져버렸고, 그렇게 선수반 1 레인 물속은 몇 년 동안이나 내 세상이 되었다. 분명 체력 기를 때까지만 하는 거라고 분명히 엄마랑 약속했었는데, 잘 못하면 맞아야 하는 것이 싫어서 덜컥 잘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oo오빠 배영 할 때는 네가 이겨야 돼'
'ㅇㅇ오빠 자유형 하는 거 끝까지 따라가 봐'
나보다 3-4살이나 많고 키는 30cm나 더 큰 오빠들을 따라가라고? 어이가 없지만 해야 했다. 안 하는 선택지는 딱히 없었으니까. 그렇게 하고 대회에서 또래 아이들과 싸워 이겨 메달을 따면 또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저 열심히 오늘의 훈련량을 마치고 또 열심히 나보다 몇 살이나 더 많은 오빠들을 따라가며 눈물을 흘렸다. 수경이 눈물로 찰랑찰랑하게 차서 눈을 질끈 감을 때도 있었고, 너무 힘들고 하기 싫어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수영한 적도 많았다. 물속이라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레인이 그어져 있는 수영장 물속에서는 옆사람이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앞으로 나간다. 뒤처져 있다면 열심히 따라가면 된다. 가까워진다 싶을 때 힘을 더 써 앞질러 나가면 이긴다. 나에게 수영이란 생각과 감정을 모두 버리고 그저 남을 보며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그리고 결국엔 이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물속이, 아니 끊임없는 경쟁이 참 지독하게도 싫었다.
선수같이 살았지만 수영선수로 살고 싶지는 않아, 선수생활을 끝내고는 10년 넘게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물속에서 보낸 삶이 억울하다며 보복이라도 하듯 두 발로 땅만 딛고 지냈다. 몸에 흠뻑 밴 습기를 빼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너 수영 선수면 수영 엄청 잘하겠네?'라는 질문에는 '어, 근데 난 수영 별로 안 좋아해' 라며 얼버무렸다. 어쩌다 들어오는 대회나 강사 제의도 모두 거절했다. 레인 앞에만 서면 그때의 그 수영장 물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물이 너무 좋은데 왜 물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 졌을까.'
불현듯 아쉬운 마음이 스칠 때쯤 후배들이 수영을 가르쳐 달라며 졸랐다. 평소의 나였다면 '다른 데서 강습이나 받으라'며 거절했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호흡조차 모르는 애들이랑 그냥 놀다 오는 거니까. 물속에서 우선 숨만 좀 쉬어봐야겠다'며 함께 수영장에 갔다.
익숙한 소독약 냄새는 여기가 원래 내가 있던 곳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큰 수영장에 나와 친구들 단 세 명만이 있었다. 따라가야 할 사람도, 이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마음이 둥실 떴다. 친구들에게 호흡을 가르쳐주고 연습을 시킨 뒤 가벼워진 마음과 몸을 물속으로 밀어 보냈다.
수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앞도 보고, 옆도 보고, 뒤도, 위도 보며 열 바퀴 남짓을 유영했다. 예전에 6분이면 할 수 있었던 정도의 양을 30분에 걸쳐 헤엄쳤다.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왔다가 등을 수면에 대고 누워 패들을 하고. 영법에 맞지도 않는 것들을 내 멋대로 펼쳐나갔다. 두 눈을 부릅떠 물이 바뀌는 것을 보고, 귀를 열어 물안의 소리를 들었다.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유영의 즐거움이었다.
자유로웠다. 역시 물이 좋았다.
수영 대신 유영하면서, 다시 한번 물에서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