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답했다> - 섭도비의 글 1
아무것도 아니야
배영을 하면 불안해진다. 긴장을 덜어내기 위해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배영을 해내는 상상을 해본다. 1번이 출발했다. 이제 내 차례다. 수영장 벽을 세게 밀고 양 팔과 양 다리를 쭉 뻗은 뒤 최대한 길게 미끄러진다. 배영을 하는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이 나를 밀어주는 힘이 줄어드는게 느껴진다. 이제 몸을 뒤집어 상상한 대로 여유롭게 누워서 가면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켜 본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긴 했다. 다만 상상의 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미리 미리 걱정해둔 덕분에
1번과의 거리는 어느정도 벌어졌지? 3번은 어디까지 쫓아 왔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미리 미리 걱정을 해둔 덕분에 더 불안해졌다. 불안해하는 뇌를 따라 몸도 굳어버린다. 몸이 점차 가라앉고 숨이 가빠진다. 고개를 들어 앞과 뒤를 살피고 싶어진다. 고개를 드는 순간 물의 저항을 더 크게 받을 것을 알지만 요동치는 마음의 저항이 더 두렵다. 1번과 3번 사이에 껴서 불안해 하는 2번의 두려움은 1번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있을까 아니면 3번에게 따라 잡히는 것에 있을까? 나는 왜 제일 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3번이랑 비슷비슷하게 잘해서 이런 샌드위치적 불안을 느껴야 하는지. 배영을 할때면 환불 받고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도대체 16만 5천원을 내고 매일 매일 불안해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라?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수업이 끝나는 상상을 하며 배영을 견뎠다. 코치가 자유형 150미터라 외친다. 영법 중 가장 좋아하고 잘해 기다리고 기다린 자유형이다. 요란스럽게 배영을 하며 힘을 다 빼버린 덕분인지 팔과 다리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평소보다 움직임이 수월했다. 오 좀 수월한데라고 생각하며 호흡과 팔동작에 집중하다 앞을 슬쩍 봤는데, 눈 앞에 요란하게 움직이는 발이 보인다. 평소 1번과 나 사이엔 반 바퀴 정도의 격차가 있었기에 그의 발차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내 손이 1번의 발끝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기 때문에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1번이 좀 더 앞서가길 기다렸다.
그저 조금 더 앞으로
그런데 1번의 팔과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다. 뭔가 익숙하다. 다급한 손과 발의 놀림에 따른 거친 호흡. 그렇구나. 1번도 나처럼 불안을 이기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구나. 따라오는 움직임에 더 불안해져서 평소보다 몸에 힘이 더 들어갔구나. 1번도 불안해 하는구나. 1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뭔가 허탈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불안에 떠밀려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가고 있는거였나. 불안이 우리를 밀어주고 있었다니. 뭔가 더 그럴듯한 것이 선두를 밀고 있길 바랬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우리는 모두 그저 불안함에 쫒겨 몸을 자꾸만 밀고 발을 차고 팔을 돌렸나? 우릴 따라오는 불안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