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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n 25. 2021

외롭고 쓸쓸한 도시의 밤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내가 언제부터 외로움을 탔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 스무 살에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처음으로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그날 밤이었던 같기도 하고…  네가 내 옆에 있어주면 나는 평생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꼈어.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미워하고 또 사랑할 수 있을까? 외롭다는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랑하는 감정은 끝이 존재하는데 외롭다는 감정엔 왜 끝이 존재하지 않는 거지? 엄마와 아빠는 끊임없이 이야기해. '만약에'로 시작하는 문장들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한탄하는 것만 같아. 이것 역시 외롭다는 감정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생각들이 엄마 아빠를 외롭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고 내가 조금이라도 덜 외롭고 싶거나, 외로운 감정을 모른 채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야. 난 내가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난 외로울 때 살아있다고 느껴.


그러니까, 난 오히려 내가 더 외로웠으면 좋겠어. 더더욱 외로워지면 정말 나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 그렇게 온전히 나만 생각하다가 내 20대가 바람 같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브라질에서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내가 얼마만큼 외로움을 타는 사람인지 까먹었었다면 여기선 반대다. 이곳에서 나는 지독하게 혼자이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기분. 끝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저녁 다섯 시부터 잠을 잤다. 외로워서 든 잠은 또 왜 그리 빨리 깨어나는지. 일어나 보니 겨우 밤 여덟 시였다. 차가운 바람이 방으로 훅 하고 불어 들어왔다. 나는 후드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밤거리.


도시는 불빛들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는 택시와 버스로 가득 차 숨 쉴 틈 조차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느라 길게 줄을 늘어섰다.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표정엔 설렘이라고는 없다. 피곤만 가득하다.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노인은 쇼윈도 안으로 보이는 가죽 구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한 남자가 꽃을 들고 연인의 집 앞으로 찾아왔다. 여자는 남자의 방문을 예상치 못했는지 머리를 채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아파트 빌딩 앞으로 내려왔다. 환하게 웃으며.


   

맨 처음 아르헨티나에 와서 느낀 건 ,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홈리스 여성들이 꽤나 많다는 것. 그 옆에는  꼭  4-5살짜리 아이들이 동전 컵을 흔들며 엄마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많이 슬퍼 보였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화도 많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동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가슴을 아이의 입에 막연히 대고만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닌 이상 가는 길과 도시마다 이렇게 같은 모습만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까 만약 후자의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을 풀어헤칠 때, 어린 자식을 자신보다 더 앞세울 때 가장 많이 얻게 되는 '동정'과 '연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연민'이란 단어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갑자기 반대의 감정들이 치고 올라왔다. 세상이라는 곳이 너무 잔혹하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가장 큰 동정심을 가지고 다가오니 그러하겠지.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길 위에 있는 아이들, 일정한 박자를 가지고 흔들던 동전 컵, 하루 종일 사람들 앞에서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여성. 삶이 가진 고단하고도 불공평한 모습들.


음악을 들으며 느리게 길을 걸었다. 카페테리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 나는 또다시 내가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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